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2화
너구리 영감의 보은(4)
갑자기 나타난 요정은 딸기밭에서 지내는 요정들과는 외향이 조금 달랐다.
딸기밭에 규리와 친구들이 더 길쭉길쭉한 느낌이라면, 손등 위에 이 요정은 조금 작고 동글동글한 느낌이었다.
“너는……?”
「커다란 요정님! 저희를 도와주세요, 뾰롱!」
“커다란 요정?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이야?”
「네! 날개는 없지만, 요정의 기운이 느껴져요, 뾰롱!」
아무래도 이 작은 요정은 나를 요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나는 요정이 아닌데.”
「……뾰롱?」
“진짜야. 요정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야.”
「으앗! 시, 실수를 하다니…… 큰일이에요, 뾰롱!」
작은 요정은 날개와 손을 버둥거리면서 ‘큰일이에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요정이 아니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작은 요정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던 그때, 또 다른 요정이 불쑥 내 옆에서 나타났다.
「어? 이 요정은 어디서 데려왔냐, 뾰?」
“내가 데려온 게 아니야.”
나는 숲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도 갑자기 나타난 요정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로커스와 크록은 굉장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규리야. 이 요정이 누구인지 알아?”
「우리랑 다르게 숲에서 지내는 요정이다, 뾰!」
“숲에서 지내는 요정이라고?”
「숲속의 버섯이나 약초에 마을을 짓고 사는 요정이야, 뾰!」
오…… 친척 같은 건가?
손등 위의 작은 요정도 내가 아는 요정들과 크게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여긴 뭐 하러 온거냐, 뾰?」
「저 마족한테서 요정의 흔적이 느껴져서 따라왔어요, 뾰롱!」
작은 요정은 엘프리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목당한 엘프리드는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아까 도와달라고 했었지? 혹시 숲속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맞아요, 뾰롱! 숲속의 나쁜 마수들 때문에 저희 마을이 무너지게 생겼어요, 뾰롱!」
“나쁜 마수……?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래?”
「그게…….」
작은 요정은 앙증맞은 팔을 허공에 휘적거리면서 설명을 늘어놨다. 중간에 숨을 헐떡일 정도로 긴 설명이었지만,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나쁜 마수들이 숲속의 약초와 버섯을 갑자기 닥치는 대로 쓸어가는 중이고, 그 때문에 숲에서 지내는 요정들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규리와 친구들이 꿀벌 때문에 고생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잠깐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너구리 영감이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그 나쁜 마수들이 ‘정령의 숨결’도 다 가져간 거냐?”
요정은 몸을 살짝 움츠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의 숨결’이 뭔지 모르겠어요, 뾰롱!」
너구리 영감은 ‘정령의 숨결’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며 요정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요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뾰롱! 나쁜 마수들이 그 약초도 전부 가져갔어요, 뾰롱!」
“어쩐지 약초의 흔적만 남아 있더라니…….”
약초를 찾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자 너구리 영감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 나쁜 마수라는 놈들을 때려잡으러 갈 기세였다.
화가 난 너구리 영감을 작은 요정이 더 무서워하기 전에 내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마수들은 왜 갑자기 약초랑 버섯을 다 가져가 버리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뾰롱…….」
“흐음…….”
「커다란 요정님,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뾰롱!」
나는 요정이 아니래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작은 요정에게 규리가 스윽 다가섰다.
「걱정하지 마, 뾰!」
「뾰롱?」
「시현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거야, 뾰! 우리 마을도 그렇게 구해줬다, 뾰!」
「뾰롱…….」
작은 요정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초롱초롱해졌다. 부담스러운 그 눈빛에 조금 난감해졌다. 나는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며 의견을 구했다.
“뭐 어쩌겠어. 요정의 부탁이랑 상관없이, 그 나쁜 마수가 ‘정령의 숨결’을 가지고 있다면 찾으러 가야지. 우리가 필요한 약초를 오히려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로커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고, 옆에 있던 크록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 마수를 찾으러 가야지! 그놈들 때문에 며칠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나도 영감님 말에 동감이야.”
너구리 영감은 약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레빌도 동의를 표했다.
“선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엘프리드의 말대로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숲을 수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아델라의 상태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내일은 어떻게든 ‘정령의 숨결’을 구해와야 했다.
결심한 나는 작은 요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나쁜 마수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줄 수 있어?”
「물론 안내해드릴 수 있어요, 뾰롱!」
“좋아. 그러면 우리도 최대한 도와 줘볼게.”
「와아! 고마워요, 뾰롱!」
작은 요정은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일행의 목표는 ‘정령의 숨결’ 찾기에서. 작은 요정이 말한 ‘나쁜 마수’를 찾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 *
다음 날.
며칠 동안 숲을 들락날락했던 일행들은 다시 한번 숲의 입구로 모여들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일행에 나와 숲 요정이 포함됐다는 점이었다.
원래는 어제의 일행 그대로 숲 요정에게 안내를 받으려 했는데, 숲 요정이 너무나 일행들을 무서워하는 바람에 내가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합류한다는 소식에 카네프는 짜증을, 리아네는 염려를 표했지만, 딱히 다른 대책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일행의 앞쪽으로 레빌이 나서며 말했다.
“그럼 출발해 봅시다.”
그를 따라 일행은 천천히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숲 깊숙한 곳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따스한 햇볕이 약해지면서 점점 우중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숲 요정아. 이쪽으로 가는 거 맞아?”
「맞아요, 뾰롱!」
우리는 요정의 안내를 받으며 쭉쭉 나아갔다.
그리고.
“이 앞에는 마수 무리가 있는 것 같으니 살짝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뭐, 뭐야? 그건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교감 능력으로 멀리 있는 마수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해내자 로커스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선배의 능력이에요.”
“시현이 말한 거면 믿을 수 있으니 그렇게 움직입시다.”
로커스와 크록은 처음에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듯 보였으나, 점차 내 능력의 정확함을 눈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런 피해 없이 숲의 아주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음에도 일행 모두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나에게 꼭 달라붙어 있던 숲 요정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어요, 뾰롱!」
숲 요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교감 능력에도 무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범하지 않은 존재감의 마수들이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했다.
“마수들이 우리 쪽으로 빠르게 접근 중이에요. 금방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할 거예요.”
일행은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무기와 진형을 갖췄을 때쯤, 주변에서, 정확히는 주변의 나무 위쪽에서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슥!!
-스스슥!!
정체불명의 마수들은 눈으로도 쫓기 힘든 움직임으로 주변을 포위했다. 어두컴컴한 나뭇가지 위에서 새하얀 광채들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쀼륵! 쀼륵!
-쀼륵! 쀼륵!
숲속을 울리는 놈들의 울음소리. 확실히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음…… 어떤 놈들인가 했더니. ‘토타라’였군.”
마수의 모습을 확인한 로커스가 중얼거렸다.
“조심해. 덩치는 작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치명적인 공격을 해오는 무서운 놈들이니까.”
그의 경고에 모두가 눈동자에 경계심을 빛냈다. 그 와중에 나는 멍하니 나무 위의 마수들을 바라보았다.
무섭다거나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수의 모습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로커스가 ‘토타라’라고 부른 마수.
그 마수의 겉모습은 우리가 정말 익숙하게 생각하는…… 가끔 직접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쀼륵! 쀼륵!
‘토타라’는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큰 덩치와 손에는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것만 빼면.
겉모습은 정말로 다람쥐와 똑같았다.
저렇게 귀여운데 치명적인 공격을 한다고? 경계하는 모습에 로커스가 호들갑 떠는 게…….
-휙, 썌애애액!!
-까아앙!
토타라 한 마리가 쏜 화살이 크록의 방패에 막히며 살벌한 소리를 냈다. 막아내지 못했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만큼 매서운 공격이었다.
겉모습에 잠시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금방 반성했다.
“…….”
-…….
토타라와 우리쪽 모두 무기를 겨누며 경계를 할 뿐, 모두 섯불리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다. 아까 크록이 막아냈던 화살도 공격의 의미보다는 경고의 의미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일행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물러나길 바라는 것 같은데요?”
모두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러분. 조금만 기세를 낮춰 주실래요? 제가 한번 대화를 시도해 볼게요.”
“뭐?”
“무조건 공격해 오지 않는 걸 보면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로커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이 기세를 낮추기 시작하자, 그도 어쩔 수 없이 내 말에 따랐다.
나는 침착하게 교감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수와 교감을 시도합니다.]
[대상은 당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호기심을 보입니다.]
토타라들은 나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였다. 내 능력을 믿고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기로 했다.
“위, 위험해!”
기겁하는 로커스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고 일행들 앞으로 나섰다.
-터벅. 터벅.
토타라들 중 가장 강력한 기운을 가진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경계심을 더 내보이긴 했지만, 먼저 공격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너희들이 요정의 버섯이랑 약초들을 다 가져갔다고 들었거든?”
-…….
“굳이 싸우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계속 대화를 시도하려 하자 토타라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쮸. 쮸쮸!
-쮸우우! 쮸!
녀석들은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 대화를 나누더니. 처음 대화를 시도했던 토타라가 내 앞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쮸쮸! 쮸우우우!
뒤에 있던 일행들은 공격하는 건 줄 알고 몸을 움찔했지만, 나는 적대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