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3화
숲속의 토타라(1)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로커스.
나는 평온한 표정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네가 모르면 어떻게 해?!”
“일단 우리를 해치려는 목적은 아닌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상황에서 걱정하지 말라니…….”
로커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지금 우리는 토타라들에게 둘러싸여 숲의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적대적인 기세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게 우리를 대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경계심을 유지하면서 안내를 하는 느낌?
그래서인지 일행들은 얼굴에는 아직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토타라와 약간 어색하면서, 불편한 동행을 계속 이어나가던 중, 앞쪽에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후, 또 다른 토타라 무리가 나타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쀼륵! 쀼륵!
-쮸우우우!
-쮸우?
-쮸쮸!
우리를 안내하던 무리의 대장과 새로 나타난 무리의 대장이 서로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상 새로 나타난 녀석이 우리를 적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안내하던 녀석의 이야기가 먹혔는지, 새로 나타난 토타라들은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길만 순순히 열어줬을 뿐, 우리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경계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 설마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 아, 아니겠지?”
뜨거운 눈총 세례에 너구리 영감은 몸을 살짝 떨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를 조금 경계할 뿐이에요.”
“영감님, 일단 시현의 말을 믿어보죠.”
“지금껏 마수에 관한 일이라면 시현 선배가 전부 정답이었어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 말에 이어서 레빌과 엘프리드가 너구리 영감을 진정시켰다. 덕분에 그의 떨리던 몸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안내를 따라 계속 걷던 우리는 빽빽한 나무들에서 사이에서 벗어나 커다란 공터로 나왔다. 순간 환해진 시야에 놀라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아…….”
“여기는…….”
“허허허!”
커다란 나무들과 그사이에 보이는 집 모양의 구조물. 나무 밑에는 뭔가를 하나씩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는 토타라들의 모습이 보였다.
질서정연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한 이곳은 토타라들이 지내는 마을이 분명해 보였다.
-쮸쮸!
토타라 마을에 정신을 뺏겨 걸음이 느려지자, 안내하던 대장이 재촉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한가하게 관광을 온 게 아니었기에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러면서 마을을 구경하는 눈동자도 빠르게 움직였다.
마을을 둘러보던 내 눈에 작은 토타라들이 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인지 팔다리가 몽땅하고, 꼬리의 털도 아직 풍성하지 못했다.
네 마리의 아기 토타라들은 위태롭게 발끝을 세우며 마을의 방문자들을 열심히 살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마을 안쪽으로 이동해 아주 커다란 나무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나무 안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나무 건축물이 있었다.
-쮸우우! 쮸쮸!
대장 토타라는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앞의 나무 건축물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토타라들의 감시를 받으며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나무 건축물에 들어갔던 대장 토타라는 또 다른 토타라와 함께 우리에게 돌아왔다.
새롭게 나타난 녀석은 다른 토타라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약간 푸석푸석한 털과 힘없는 움직임으로 봐서는 나이가 많은, 촌장 역할의 토타라인 듯했다.
-쮸우우…… 쮸!
촌장 토타라는 힘없는 울음소리로 내게 대화를 시도했다. 나이 때문인지 촌장 토타라는 대장 토타라보다 훨씬 그 생각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나는 울음소리의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대답했다.
“요정들의 말로는 이곳의 토타라들이 버섯과 약초를 마구잡이로 가져갔다고 들었어. 그게 사실이야?”
-쮸우우…… 쮸쮸.
“으음…….”
너구리 영감이 내 옆으로 착 달라붙으며 물었다.
“저 녀석들이 정령의 숨결을 가져간 게 맞대?”
“정령의 숨결을 가져갔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숲의 버섯과 약초들을 싹쓸이해 간 건 자신들이 맞대요.”
나는 너구리 영감에게 짧게 대답하고, 다시 촌장 토타라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너희들 때문에 숲의 요정들이 힘들어하고 있어. 조금만 그 행동을 자제해주면 안 될까?”
지금까지 대화가 잘 통했기 때문에 요청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했는데, 예상외의 강경한 대답이 돌아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지금 뭐라 대답한 거야?”
이번에는 로커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자기들은 버섯과 약초를 싹쓸이하는 걸 멈출 생각이 없데요.”
“허허…… 이것들 머리 아픈 놈들이네.”
그의 말대로 나도 살짝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 포기하지 않고 촌장 토타라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야? 너희도 처음부터 이렇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
촌장 토타라는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며 대답을 미루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쮸우우…… 쮸우우우!
“으음…… 위험한 적이라고?”
-쮸쮸!
또 한 번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촌장 토타라는 위험한 적과 싸움을 준비해야 하므로, 버섯과 약초를 모으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위험한 적이라는 게 누구지?
촌장 토타라가 언급한 적에 대해서 궁금증을 느끼고 있던 그때.
-찌르르르르…….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쫙 퍼져 나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을 때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토타라들을 의심했는데 범인은 그들이 아니었다. 뭔가 더 위협적인 존재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혹시 이게 토타라들이 말하는 위험한 적?
나는 일단 머릿속으로 추측하는 것을 멈추고.
일행과 토타라들에게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세요. 위험한 녀석들이 이 마을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너희들도 어서 준비해!”
경고를 금방 받아들이는 일행들과는 달리, 토타라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지었다. 하지만 그들도 금방 내 경고가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쀼륵! 쀼륵!
-쀼륵! 쀼륵!
마을 곳곳에서 다급한 울음소리들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대장 토타라는 곧바로 무리를 이끌고 울음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저희도 따라가죠.”
우리는 먼저 움직인 토타라를 뒤따랐다. 감시하던 토타라들은 모두 사라져버려서 아무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쀼륵! 쀼륵!
-쀼륵! 쀼륵!
경고의 뜻이 담긴 울음소리가 점점 켜졌다. 토타라 마을 주민들은 중요한 물건들을 옮기며 적을 대비했고, 전투 능력이 있는 녀석들은 모두 마을 바깥쪽으로 향했다.
마을 외곽에서는 벌써 토타라와 침입자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뒤늦게 외곽 쪽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마을을 침입한 놈들의 정체를 금방 확인했다.
8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주변에 끈적끈적한 실을 뿜어내는 침입자들. 다람쥐와 마찬가지로 익숙한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반갑지는 않은 거미였다.
로커스는 거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모두에게 소리쳤다.
“조심해! 독이 있는 거미야.”
독이 있다는 말에 우리는 섣불리 거미가 있는 쪽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토타라들은 침입자 거미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을 가졌지만, 거미가 내뿜는 실과 독 때문에 제대로 상대하기가 껄끄러워 보였다.
전투를 지켜보던 레빌에 내게 말했다.
“시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대로 놔둔다면 저 토타라들은 독거미에게 큰 피해를 볼 것 같은데.”
그의 말대로 토타라들은 독거미들에게 고전하는 중이었다. 거기다 독이라는 무기 때문에 피해는 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일단 토타라들을 도와줍시다.”
내 결정에 일행들은 곧바로 나설 준비를 했다.
“설마 내가 저 토타라들을 도와주게 될 줄이야.”
“…….”
“시현은 영감님과 뒤에 빠져있어.”
“선배, 금방 끝내고 돌아올게요.”
네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독거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합류 덕분에 불리하던 전투 흐름이 금방 뒤집혔다.
고전하던 토타라들도 지원에 힘입어 독거미들을 하나씩 처치해나갔다.
결국, 마을로 쳐들어왔던 대부분이 처치되고, 살아남은 소수의 독거미만 다시 숲속으로 도망쳤다.
-쮸우우우! 쮸우우우!
-쮸우우우! 쮸우우우!
토타라들의 입에서 승리를 알리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전투에 참여했던 네 사람은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격퇴한 독거미의 숫자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토타라들도 조금 전의 도움을 의식했는지, 쉬고 있는 우리에게 알아서 먹을 수 있는 열매와 깨끗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편안하게 쉬면서 마냥 신난 기분으로 있을 순 없었다.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은 우리와는 달리, 토타라 쪽에서는 꽤 많은 부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거미의 독에 당해서 쓰러져있는 토타라들이 아주 많았다. 너구리 영감은 독에 당한 부상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쯧쯧. 생각보다 독에 많이 당했구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할 텐데…….”
그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많이 위험한 독인가요?”
“해독제만 제때 먹으면 크게 위험한 독은 아니야. 후유증도 거의 없는 편이고. 하지만 저렇게 치료가 늦어지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토타라들도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약초와 버섯을 잔뜩 모은 걸 보면 뭔가 방법이 준비한 거겠지.”
나와 너구리 영감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토타라들은 어디선가 엄청나게 많은 약초와 버섯들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쓰러져있는 부상자들의 근처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재료는 충분해 보이네. 아마도 이제 부상자들의 치료를 시작할 모양이야.”
“다행이네요.”
예상대로 토타라들은 부상자들의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치료 방법을 본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쮸! 쮸! 쮸!
토타라들은 약초와 버섯을 부상자들의 입에 잔뜩 넣어주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의 볼은 마치 먹이를 잔뜩 머금은 다람쥐처럼 볼록 해졌다. 볼이 빵빵해져서 더는 넣어줄 수 없을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했다.
저, 저게 토타라의 치료법?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영감님? 저것도 치료 방법 중 하나인가요?”
“멍청아! 너는 저게 치료하는 거로 보여?”
너구리 영감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문에 가까워 보였다.
“저, 저, 저녀석들! 정령의 숨결도 마구 집어넣잖아! 독을 치료하는 데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 저 귀한걸!!”
토타라의 막무가내 치료 행위에 너구리 영감은 펄쩍펄쩍 뛰었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부상자들과 약초들이 쌓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