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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6)화 (19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6화

누구를 보낼까(2)

점심 식사가 끝난 오후.

농장 건물의 거실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전에 제르무어 부단장 업무를 끝낸 안드라스를 시작으로, 엘프리드와 발레리안, 리아네도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리아네는 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은율이는 혹시 낮잠을 자는 중인가요?”

“네. 그리, 피니랑 신나게 뛰어놀더니 지금 제 방에서 자고 있어요. 아마 1시간 정도는 재충전해야 할 거예요.”

움직임이 활발해진 새끼 그리핀들을 위해 낚싯대 모양의 고양이 장난감을 사줬는데. 은율이가 더욱 신나서 장난감을 가지고 엄청 뛰어다녔다.

장난감을 구매하는 데 쓴 비용을 오늘 하루 만에 전부 회수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이렇게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도 생겼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리안, 그런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중요한 일이 있다고 불러모으다니.”

“조금만 기다려 줘. 카네프 님이 오시면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할게.”

안드라스의 질문에 발레리안은 잠시 대답을 미뤘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는 대충 어떤 일인지 예상됐지만,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있기로 했다.

“흐아아암∼! 귀찮게 왜 불러모으고 난리야.”

긴 하품 소리와 함께 카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점심 식사 뒤에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지. 이마에는 캐릭터 안대를 하고 아주 편안한 옷차림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카네프 님. 중요한 일이라서…….”

“흐으음. 무슨 일인데?”

카네프는 편안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물었다. 발레리안은 짧게 내 쪽을 바라본 뒤, 농장 식구들에게 불러모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시현 씨에게 천족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말만 도움 요청이지,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는 일인데…….”

발레리안은 얼마 전, 사무실에서 아슈미르, 이기석 본부장과 나눴던 이야기를 짧게 간추려 설명했다.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돼서, 시현 씨가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리아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건 위험한 일 아닌가요? 굳이 시현 님이 가셔야 하는 건가요?”

“저도 왜 굳이 시현 씨를 데려가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다지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하는데. 천족이 직접 나선 일인 만큼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엘프리드와 안드라스도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쪽 세계의 기준은 잘 모르는데. 전투력 적인 측면만 보자면 시현 선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많지 않나요?”

“엘린 군의 말이 맞을 겁니다. 각성이라는 단계를 거쳐 능력을 얻으면 꽤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시현 님도 각성자이긴 하지만, 전투 쪽에 특화되진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는 저도 의문이 들긴 합니다. 굳이 시현 님을…….”

카네프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자기의 생각을 툭툭 내뱉었다.

“원래 천족이 그런 놈들이야. 항상 깨끗한 척, 공정한 척해도.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은 꼭꼭 숨기고 안 알려주거든. 아마 저 녀석을 데려가려는 것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걸지도 몰라.”

그는 천족의 이중성을 강조하며 불만을 표했다. 발레리안은 손뼉을 한 번 치며 다시 주의를 집중시켰다.

“천족의 의문스러운 행동은 저도 불만이긴 합니다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어찌 됐든 시현 씨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에 휘말렸다는 겁니다.”

“상황은 대충 알겠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거 아냐? 해봤자 예전에 카엘 영감이 그랬던 것처럼, 수련으로 실전 감각이나 키워주는 거?”

카네프의 회의적인 말에 안드라스와 리아네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엘프리드만이 수련이라는 말에 반응해 눈을 반짝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카네프의 말이 맞았다. 저쪽 세계의 일에 마족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반적일 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었다면 제가 여러분들을 모으지도 않았겠죠.”

“뭐가 다르단 말이야?”

“시현 씨의 귀족 신분을 이용해 임무에서 제외하는 건 실패했지만, 대신 다른 조건을 제안했습니다. 천족도 받아들였고요.”

“다른 조건?”

발레리안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시현 씨의 안전을 위해서 호위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현 씨의 호위는 마계에서 직접 정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설마……?”

안드라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호위 역할을 마족에게 맡긴다는 건가?”

“……?!”

“……?!”

“……?!”

엘프리드, 리아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을 보였다. 카네프 역시 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내밀며 관심을 드러냈다.

“안드라스의 말이 맞습니다. 오전에 마왕님 그리고 여기서 시현 씨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실력과 신원이 보장되어 있고, 또 시현 씨가 익숙한 마족으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꿀꺽……!

누군가의 침을 넘기는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 그만큼 모두가 숨죽이고 발레리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조건을 바탕으로 호위를 맡길만한 마족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 계신 분들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오오! 그러면 저희가 시현 선배의 호위로 저쪽 세상에 가는 건가요?”

“저, 정말요? 정말 시현 님이 사는 세상에 갈 수 있는 거예요?”

“흠, 흠! 언젠가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엘프리드, 리아네, 안드라스가 차례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카네프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얼굴에 남아 있던 나른한 기운이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살짝 어수선해지려던 그때.

발레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

“……?”

“시현 씨의 호위를 맡으실 분은 딱 한 사람입니다.”

“……!!”

“좀 더 많은 인원을 호위로 보내고 싶었지만, 천족 측에서 절대 한 명 이상은 안 된다고 강경하게 나오더군요.”

호위 임무를 맡을 수 있는 건 한 명!

네 마족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중, 세 명의 눈동자가 한 마족에게 몰렸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카네프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농장의 최고 실력자. ‘농장’이라는 말 대신 ‘마계’라는 말을 넣는다고 해도, 그것을 쉽게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존재였다.

호위를 맡길 후보 중에 가장 유력한…….

“아! 참고로 카네프 님은 호위 후보가 아닙니다.”

“왜?!”

그 말에 카네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렬한 기세에 발레리안은 약간 기가 죽은 표정으로 변명했다.

“카네프 님이 강하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현 씨의 호위가 중요해도 카네프 님을 다른 차원의 세계로 보내는 건 좀…….”

“내가 뭐가 어때서?”

“…….”

발레리안은 차마 자신의 입으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서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다급한 눈빛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네프를 달래기 위해 나섰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사장님. 솔직히 사장님에게 제 호위를 맡기는 건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격이잖아요.”

“…….”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꼭 사장님에게도 기회가 있을 거예요.”

“……쳇!”

카네프는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아무래도 그 짧은 사이에 기대가 컸는지, 제대로 심통이 난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솔직히 나도 카네프를 데리고 가는 건 조금 부담스러웠다.

단순히 나 혼자 균열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많은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다. 그곳에서 카네프가 마음대로 행동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력했던 후보가 탈락하고 세 마족만이 남았다. 모두의 가능성이 높아진 이때,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건 안드라스였다.

“크흠! 시현 님. 카네프 님을 제외하면 이곳에서는 저만큼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운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들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호위 임무를 맡는 데에는 제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만…….”

안드라스가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자, 이에 질세라 리아네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순수한 전투력이라면 저도 밀리지 않아요. 굳이 아티팩트 같은 거 없어도 안전하게 지켜드릴 수 있어요. 거기다 이 농장에서 가장 시현 님을 오래 보살핀 건 바로 저라고요. 당연히 제가 호위 임무에 가장 어울려요.”

마지막으로 엘프리드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저는 시현 선배랑 함께한 시간은 이 중에서 가장 짧을지 몰라도. 같이 합을 맞추고 수련한 시간은 가장 길 거예요. 전투에서 서로의 합을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 잘 아시죠? 그리고 애초에 제가 이 농장에 온 이유가 선배의 호위 때문이었으니, 이 임무에는 제가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

각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한 장밖에 없는 티켓을 얻기 위한 그들의 경쟁은 나와 발레리안의 예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어떤 위험에도 대처하려면 제 아티팩트만 한 게 없습니다. 이번에 새로 부품을 교체해서 성능 상향이…….”

“이건 단순히 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라고요. 저는 메이드로서 언제든지 시현 님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비록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지만, 제가 태어난 베르딕 가문은 마왕님의 호위를 맡아오던 가문입니다. 그만큼 호위에 관해서라면 유서 깊은…….”

세 사람이 호위 임무를 맡기 위해 점점 열을 올렸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리안 씨, 어떻게 하죠?”

“으음…… 제 생각에는 세 사람 모두 호위 임무를 맡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물론이고, 시현 씨와 함께 한 시간도 기니까요.”

“그럼……?”

“시현 씨의 호위 임무니까, 직접 정하셔야 세 사람도 납득하지 않을까요?”

나보고 직접 정하라고? 아니…… 저렇게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데. 누구 한 명을 딱 정하라고?.

세 사람 모두 소중한 농장 식구고. 그들의 능력과 이어진 신뢰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누구를 데려가더라도 전혀 상관없는 상황.

그래서 더더욱 선택하기 어려웠다. 뽑히지 않은 나머지 두 사람은 얼마나 나를…….

“야! 빨리 정해! 나 들어가서 낮잠 잘 거니까!”

크흠…….

사장님까지 더해서 세 사람은 당연히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모두에게 공평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입을 열었다.

“저기…….”

“……?”

“……?”

“……?”

“그럼 제비뽑기로 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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