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8화
이세계의 용마족(1)
나와 리아네, 은율이.
그리고 아꿍이와 규리.
이렇게 다섯은 농장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저쪽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차원문으로 향했다.
차원문 앞에 도착하자. 리아네는 굉장히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리아네 씨, 괜찮으세요?”
“으읏! 괜찮아요. 막상 마계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간다고 하니 떨리네요.”
살짝 떨고 있는 리아네를 향해 아이들이 다가왔다.
「괜찮다, 뾰! 우리만 믿고 있으면 된다, 뾰!」
-무우우. 무우우.
차원문에 익숙해진 규리와 아꿍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우쭐한 태도를 보였다. 아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에 슬쩍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은율이는 조용히 리아네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은율이는 방긋 웃어 보였다.
그 덕분인지 리아네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맴돌며, 온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그럼 이제 넘어가 볼까요?”
“저, 저기!”
“네?”
“괜찮으시다면…… 시현 님도 손을 잡아주실래요?”
리아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멍하게 그 손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다. 나와 손이 이어지자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나도! 나도 손잡고 싶다, 뾰!」
-무우우! 무우우!
아이고! 이 어리광쟁이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아꿍이를 안아 들었고, 규리는 은율이가 대신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사이좋게 손을 잡고 나서야 모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짜 가볼까요?”
“네, 시현 님.”
“응!”
「빨리 가자, 뾰!」
-무우우!
모두의 힘찬 대답과 함께 우리는 차원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차원문을 건너자마자 발레리안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작은 친구들, 그리고 리아네 양도 반갑습니다.”
그의 인사에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리아네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해요, 발레리안 님.”
“하하!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그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문을 열고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아슈미르와 이기석 본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나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곧바로 리아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살피던 아슈미르가 그녀에게 다가섰다.
“이분이 시현 씨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실 분입니까?”
“네, 마계에서 저를 도와주시고 있는 리아네 씨예요.”
“으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아슈미르의 표정에 리아네는 물론이고, 내 뒤에 딱 붙어 있는 아이들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 손을 내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
리아네는 허둥지둥하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아슈미르가 그녀의 손등에 손을 홀리자 그곳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나왔다.
-파아앗!!
잠시 후, 빛이 사라진 리아네의 손등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문양이 생겨났다.
“이 문양은 약속된 기간만큼 유지될 겁니다. 이것이 존재하는 한 당신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등의 문양이 사라지는 순간 감시관들의 추적이 시작될 테니 주의해 주십시오.”
아슈미르는 마치 기계처럼 문양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의 리아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 뒤쪽에 숨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움찔!
아직 그녀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살짝 떨면서 더욱 내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제가 할 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저번에 드렸던 연락처로 연락해 주십시오. 그럼…….”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던 아슈미르는 이번에도 일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이곳을 떠나갔다.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인물이라 저렇게 행동해 주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아슈미르가 훌쩍 떠나고 난 뒤, 이번에는 이기석 본부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리아네에게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차원관리본부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기석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에 리아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시현 님. 이분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저에게 인사를 하고 계신 건가요?”
“아! 깜빡하고 있었군요. 시현 씨, 지금 가지고 계신 통역 반지를 리아네 양에게 전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리아네 씨.”
나는 재빨리 손에 끼고 있던 통역 반지를 리아네에게 건네줬다. 통역 반지를 착용하고 나서야 그녀는 이기석 본부장과 원활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리아네 씨, 이걸 먼저 받아주십시오.”
“이건……?”
“임시로 만든 외국인등록증입니다. 이곳에 체류하시는 동안에 사용하시다가 나중에 반납해 주시면 됩니다.”
리아네는 신분증을 보며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다.
“시현 님! 시현 님! 이것 좀 보세요. 여기에 제 얼굴이 그려져 있어요.”
리아네가 한국으로 오는 게 확정됐을 때, 이기석 본부장의 요청에 따라 그녀가 찍힌 사진을 미리 보내줬었다.
신분증의 사진에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그녀의 머리에 자라 있던 커다란 뿔이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뿔이 없으니 평범한 외국인처럼 보였다.
“아마 시현 씨가 알아서 잘 설명해 주시겠지만, 노파심에 몇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웬만하면 리아네 씨의 정체는 최대한 숨겨주십시오. 당연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 능력을 사용하시는 일도 자제해 주시고요. 또…….”
이기석 본부장은 리아네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에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내게 설명했다.
그동안에 리아네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자랑했다.
“방금 말씀한 것만 주의해 주시면 별일 없을 겁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바로 연락해주십시오. 바로 조치를 취해드릴 테니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건 그렇고…….”
그는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더니, 주변에 잘 들리지 않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로 저분이 호위 임무로 따라오신 분이 맞습니까? 그냥 보기에는 전혀…….”
이기석 본부장은 리아네의 모습을 보고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그의 반응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리아네는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외모에, 심지어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한때는 이기석 본부장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크나큰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본부장님. 리아네 씨는 임무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시현 씨의 말대로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나와 발레리안의 대답에 이기석 본부장은 약간 찜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용건을 끝낸 그도 아슈미르처럼 먼저 사무실을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발레리안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에는 두 개의 은색 목걸이 같은 게 들려있었다.
“리아네 양, 잠시만 고개를 숙여주시겠어요?”
“이, 이렇게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발레리안은 리아네의 뿔에 은색 목걸이를 꼬아서 걸어주었다.
-스으으윽…….
그러자 그녀의 커다란 뿔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와아!”
「뿔이 사라진다, 뾰!」
-무우! 무우!
덩달아 놀란 리아네가 황급히 뿔 쪽으로 양손을 가져갔다.
“발레리안 님, 어떻게 된 거죠?”
“진짜로 뿔이 없어진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는 마족의 뿔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 감출 수 있게 해드린 거예요.”
그녀는 뿔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리고 그 옷차림도 웬만하면 바꾸셔야 할 거예요.”
“왜요? 호, 혹시 옷이 너무 촌스럽나요? 최대한 깔끔한 옷으로 가져왔는데…….”
“하하! 그런 게 아니라. 이곳에는 메이드 일을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당연히 메이드 복장을 하는 사람도 없어요.”
발레리안의 말대로 마계와는 달리 이곳은 메이드가 흔한 곳은 아니다.
아마도 저 옷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닌다면 메이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코스프레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메이드가 없다는 이야기에 리아네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어쩌죠…… 저는 메이드 옷 밖에 안 챙겨왔는데…….”
난감해하는 그녀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서 입으실 옷은 제가 사 드릴게요.”
“그, 그런…… 시현 님께 민폐를 끼칠 수는…….”
“민폐라뇨. 저를 도와주시러 이곳에 오신 건데, 당연히 해드려야죠.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이참에 메이드 복 말고 다른 옷들도 입어보세요. 리아네 씨는 미모가 워낙 뛰어나셔서 다른 옷들도 정말 잘 어울리실 거에요.”
“…….”
내 말을 들은 리아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녀의 즉각적인 반응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괜히 나도 민망해져서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리아네는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현 님 말대로 할게요…….”
“네…… 기대해 주세요.”
“…….”
“…….”
목덜미까지 붉어진 채 고개 숙인 리아네의 모습에 가슴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툭. 툭.
누군가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발레리안이 야릇한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마치 ‘제법인데요?’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민망함에 몸이 달아오르면서 방 안이 덥게 느껴졌다.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 어색한 분위기가 빨리 사라지길 빌었다.
* * *
나는 리아네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 살짝 겹쳐서 차가 많이 막혔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건가요? 이것도 아티팩트인건가요?”
“저렇게 높은 게 다 건물이에요?”
“저기 저 사람이 시현 님이랑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요.”
현대 도시의 풍경에 감탄하는 리아네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의 모습에 아이들도 신나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앗!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다, 뾰!」
-무우우! 무우우!
“아빠, 나 아이스크림!”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 사이에 귀신같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알아본 아이들.
“지금 아이스크림 먹으려고? 할머니가 저녁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이스크림도 먹고 저녁도 먹을 수 있다, 뾰!」
-무우! 무우!
“헤헤! 조금만 먹을게.”
“알았어. 대신 나중에 저녁 안 먹는다고 하면 안 된다.”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부리는 애교를 이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 가게 옆에 차를 세워야 했다. 평소에 아이들과 리아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와서 건네줬다.
시끌벅적했던 뒷좌석에는 아이스크림 덕분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리아네도 아이스크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창문에서 눈을 떼고 작은 숟가락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먹는데 집중한 귀여운 모습을 틈틈이 백미러로 흐뭇하게 바라보며 차를 운전해 나갔다.
아이들과 리아네가 아이스크림을 전부 먹었을 때쯤, 차량은 집 앞 주차장으로 접어들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내려주려고 먼저 운전석에서 빠져나오는데…….
“어? 뭐야? 너도 지금 집에 오는 거야?”
먼저 주차를 끝낸 것처럼 보이는 서예린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다, 순간 뒷좌석에 탄 용마족의 존재를 떠올렸다.
아…….
리아네 씨를 어떻게 설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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