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99화
이세계의 용마족(2)
나는 다가오는 서예린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왜 그래?”
“으응? 아…… 그게…….”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답답함을 참지 못한 은율이가 먼저 차 문을 열어버렸다.
“아빠. 내려줘.”
“어. 잠깐만. 금방 내려줄게.”
“뭐야? 아이들 데리고 온 거야?”
은율이의 목소리를 들은 서예린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녀는 아이들이 타고 있는 뒷좌석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 얘들아. 예린이 언니가…… 어라?”
서예린은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에 있던 리아네를 발견하고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에…… 안녕하세요.”
서예린과 시선이 마주친 리아네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은 서예린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내 팔을 툭툭 치면서 속삭였다.
“뭐, 뭐야? 저 외국인은 누군데?”
“사정이 좀 있어서 같이 농장에서 일하시는 분을 모시고 온 거야.”
“농장? 음…… 잠깐만! 네가 일하는 농장은 마계에 있잖아?”
“…….”
“그럼 저 사람은?!”
눈치 빠른 서예린이 금방 리아네의 정체를 짐작해 냈다.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나와 리아네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 마족과 천족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직접 마주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많은 숫자가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대부분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가디언즈 길드원으로 활동이 짧지 않은 서예린일지라도, 마족을 처음 봤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
-무우우! 무우우!
「답답하다, 뾰! 빨리 내리고 싶다, 뾰!」
“으응. 알았어. 금방 내리게 해줄게.”
답답해하는 아이들의 재촉에 나는 일단 아이들을 먼저 차에서 내려줬다. 자연스레 리아네도 내 손을 잡고 차에서 몸을 내렸다. 그녀는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시현 님이 사시는 곳인가요?”
“네. 저 건물에서 어머니랑 함께 지내고 있어요.”
“헉! 집이 엄청나게 크네요. 저렇게 큰 건물에서 두 분이…….”
“하하! 아뇨. 저기서 저랑 어머니만 사는 게 아니라요. 다른 분들과 구역을 나눠서 함께 사는 거예요. 여기 예린이도 옆집에서 살 거든요.”
“아∼! 그렇군요. 신기한 집 구조네요.”
리아네에게 집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는 사이, 성미가 급한 아이들이 다시 한번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빠. 빨리 가자. 나 할머니 보고 싶어.”
-무우우.
「빨리 가자, 뾰!」
“알았어. 가죠, 리아네 씨.”
“네.”
밖에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의 눈길만 끌 게 분명했다. 아이들의 말대로 일단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예린은 묻고 싶은 말이 잔뜩 있다는 표정이었지만, 조금만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내며 모두와 함께 건물 입구로 향했다.
* * *
“어서 와, 우리 똥강아지들.”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최근에 이렇게 환하게 웃는 경우는 아이들이 찾아올 때뿐이다.
아이들의 어리광을 받아주던 어머니는 뒤에 따라 들어오던 리아네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얼굴에 손님을 맞이하는 반가움이 가득해졌다.
“어서 와, 리아네!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시현 님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중간에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사주셨고요.”
“호호! 그거 참 다행이네. 어서 들어와.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도 돼.”
“실례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리아네를 손수 집 안으로 이끌며 환영했다.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드시는지 입가에 계속 미소가 머물렀다.
리아네를 아무렇지 않게 환영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서예린이 다시 한번 더 놀란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도 리아네…… 씨를 알고 계신 거야?”
“어. 농장에 몇 번 갔을 때 만났으니까.”
“대단하시네. 아무렇지 않게 마족을 받아들이시다니…… 나는 아직도 느낌이 이상하거든.”
그녀의 말에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머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편이셨으니까.
이미 집에 익숙해져 편안한 아이들과는 달리, 리아네는 아직 새로운 환경이 불편한 듯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포근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려 말을 걸었다.
“리아네 씨, 혹시 불편한 점 있으세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직 다른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에 긴장이 덜 풀렸나 봐요.”
“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많은 곳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정말 편하게 있으셔도 돼요. 그 뿔에 걸어놓은 목걸이 불편하시면 빼 드릴까요?”
“그, 그래 주실래요?”
리아네는 내 쪽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나는 원래 뿔이 있던 자리로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약간 더듬거린 끝에 그녀의 뿔을 가리고 있던 두 개의 목걸이를 빼냈다. 그러자 스윽하고 커다란 두 개의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맙습니다, 시현 님.”
“별말씀을요. 이건 제가 따로 챙겨놓을게요.”
리아네는 한결 편안해진 듯 미소를 지었다. 나도 마주 웃어보이며 두 개의 목걸이를 챙겨 들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리아네의 뿔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서예린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내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저, 정말 마족이었잖아?”
“아야! 그럼 정말 마족이지, 가짜 마족이겠어?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도 없잖아.”
내 대답에 서예린은 샐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 너무 리아네 씨한테만 친절한 거 아냐? 나한테는 한 번도 편하게 있으라고 말하거나, 자상하게 챙겨준 적 없잖아.”
“손님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친절하게 하는 거지. 너는 내가 편하게 있으라고 말하기도 전에 편하게 있었으면서.”
“내, 내가 그랬었나?”
“기억 안 나? 가끔은 네가 너무 편하게 있어서 집을 잘 못 들어왔다고 착각한다니까.”
서예린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머니는 입을 가릴 정도로 크게 웃으셨다
“아직 저녁 안 먹고 왔지? 금방 저녁 준비해 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먹고 싶은 게 있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은율이가 찰싹 달라붙으며 말했다.
“할머니. 나 치킨 먹고 싶어.”
“어구구∼! 우리 예쁜 은율이, 치킨 먹고 싶어?”
“응!”
“그럼 저녁으로 치킨 시켜 먹을까?”
은율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지만, 사랑스러운 손녀의 부탁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시킬까? 여기 근처에 치킨 잘 튀기는 집 알거든.”
“그래. 오늘은 사람이 많으니까 좀 넉넉하게 시켜. 돈은 내가 줄게.”
“오케이. 그럼 바로 시킬게.”
서예린은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서 금방 치킨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에는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치킨이 배달원의 손에 들려 도착했다. 리아네는 금방 도착한 치킨을 보며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 치킨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혹시 요리사를 따로 고용하신 건가요?”
나는 웃으면서 배달 음식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녀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배달해 준다는 사실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막 도착한 치킨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포장을 뜯었다.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거실에 모여 함께 먹기로 했다.
규리와 아꿍이는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 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옆에서 함께 먹었다.
“많이 드세요, 리아네 씨.”
“잘 먹을게요. 시현 님.”
리아네는 처음에는 긴장한 표정으로 약간 눈치를 봤다. 하지만 치킨의 마력에 조금씩 표정이 풀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속도로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은율이도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야무지게 치킨을 맛봤다. 어머니는 복스럽게 잘 먹는 은율이와 리아네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서예린은 ‘역시 치킨은 마족도 좋아하는 구나…….’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위에 치킨은 금방 깔끔하게 비워졌다. 꽤 넉넉하게 시킨 덕에 모두가 만족스럽게 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포만감에 나른해진 아꿍이와 규리는 푹신한 전용 방석에 파묻혀 휴식을 취했고, 은율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고개를 꾸벅꾸벅했다.
한편, 서예린은 이제 긴장감이 덜해진 리아네에게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리아네 씨라고 불러도 되죠?”
“저는 편하게 불러주셔도 돼요. 서예린 님.”
“으으…… 기분이 이상해.”
서예린은 리아네의 존칭과 특유의 공손한 태도가 어색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리아네 씨는 시현이랑 농장에서 같이 일하시는 거예요?”
“네. 시현 님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농장의 자질구레한 집안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은…… 메이드 복이죠?”
다시 한번 그녀의 옷이 화제로 떠오르자, 리아네는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메이드라는 게 많이 이상한 건가요?”
“아, 아뇨! 이상한 게 아니라. 여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옷이라서요. 그리고…….”
서예린은 슬쩍 내 쪽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이 녀석 개인 취향인가 싶어서.”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리아네 씨는 정말 메이드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고. 실례되는 말은 그만둬.”
“미안, 미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그녀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리아네 씨는 한동안 이쪽 세계에서 지내는 거야?”
“응. 그럴 계획이야.”
“잠은 어디서 자고?”
“어디서 자냐고? 우리 집에 잠자리를 마련해 드려야지.”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이쪽 시계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를 다른 곳에 덜렁 놔둘 순 없었으니까.
대답을 들은 서예린이 눈을 부릅떴다.
“뭐? 여기는 따로 방도 없잖아. 여자에 대한 배려도 없어?”
“으…… 응. 그런가?”
“뭐가 ‘그런가’야! 안 되겠어요. 리아네 씨는 잠은 우리 집에 와서 자요.”
“네? 그…… 저는 아무 데서나 자도 상관없는데……. 방도 따로 필요 없어요.”
리아네는 양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서예린은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강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부담스럽게 생각 안 해도 돼요. 제집에 빈 방 있으니까, 여기서 지내시는 동안에는 거길 사용하세요. 이불이랑 옷도 챙겨드릴게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도 서예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아. 예린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리아네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방 하나는 따로 내어드리는 게 좋지 않겠니?”
내가 생각이 짧았었다.
그녀를 주변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무작정 집으로 데려와 버렸다. 확실히 서예린의 말대로 리아네에게 따로 방을 마련했어야 했다.
“죄송해요, 리아네 씨.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아, 아뇨. 저는 정말 괜찮아요.”
“예린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당분간 리아네 씨 좀 부탁할게.”
“후훗!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챙겨드릴 테니까. 리아네 씨, 짐 챙기세요. 지내실 곳을 보여드릴게요.”
서예린은 순식간에 리아네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왠지 과하게 신나 보이는 모습이 조금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예린은 다시 우리 집 문을 열고, 불쑥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시현아. 리아네 씨 옷이 메이드 옷밖에 없어. 내일 당장 쇼핑가자. 아침에 바로 나갈 준비해! 어머니도 같이 가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