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0화
이세계의 용마족(3)
다음 날.
어제저녁에 서예린인 말했던 대로, 리아네와 함께 온 가족이 외출을 나섰다. 목적지는 지난번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시내의 쇼핑몰.
“와아…… 이렇게 큰 건물이 통째로 시장인 건가요?”
리아네는 쇼핑몰의 커다란 규모에 감탄을 터뜨렸다.
쇼핑몰의 내부에 들어가서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느라 쉴 새 없이 고개가 돌아갔다. 구경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걸음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녀는 구경하는 데 집중하느라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메이드 복이 아닌 서예린이 빌려준 커다란 티셔츠와 편안한 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는 가릴 수 없었고.
쇼핑몰 내의 손님, 직원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빼앗았다.
거기다 옆에 은율이 까지 함께하다 보니 그 효과가 배로 강력해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메이드 복을 입고 왔으면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주변에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재빨리 움직였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여성 의류 매장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서예린은 리아네의 팔을 이끌며 물었다.
“리아네 씨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세요?”
“보통 메이드 복 밖에 안 입어서요. 다른 옷은 잘 모르겠어요.”
“에이∼! 메이드 복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예쁜데 그것만 입으면 아깝잖아요.”
“음…….”
“걱정 마세요, 리아네 씨! 오늘 제가 제대로 코디해 드릴 테니까.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서예린은 눈동자에 사명감을 불태우며, 리아네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며 이끌었다.
리아네는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린이가 잘 골라줄 거예요.”
나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도움의 눈빛에 대답했다. 그녀는 얼굴이 울상으로 변한 채, 서예린에 의해 속절없이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리아네의 옷 쇼핑은 아주 바쁘게 진행됐다.
서예린은 가게에 진열된 옷들을 빠르게 살피더니, 휙휙 옷들을 꺼내 리아네에게 건네주며 탈의실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탈의실에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리아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와 어머니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어머! 정말 잘 어울린다.”
평범한 반발 티셔츠에 깔끔한 바지만 맞춰 입었을 뿐인데. 평소에 워낙 메이드 복장만 계속 봐서 그런지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 났다.
리아네의 살짝 붉어진 얼굴에서 어색함과 쑥스러움 느껴졌다. 그래도 옷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닌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한편, 직접 코디를 했던 서예린은 살짝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나쁘지 않긴 한데. 너무 무난한 느낌이네. 리아네 씨의 매력이 안 살아나는 것 같아. 잠시만…….”
그리고 다시 옷 가게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새로운 옷들을 가져와 리아네와 함께 탈의실로 밀어 넣었다.
그 뒤에도 서예린은 계속 여러 가지 옷의 조합을 리아네에게 가져다줬다. 새로운 옷을 가져다줄 때마다 리아네가 찰떡같이 옷을 소화해 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옷 가게의 점원도 근질근질한 손을 참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코디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옷을 고르는 걸 번거롭게 생각하는 편인데.
워낙 리아네가 잘 어울려서 그런지 전혀 지루하거나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몇 부분에서는 살짝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여러 매장을 돌면서 신중히 고른 끝에 리아네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양손 가득 구매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시현 님. 너무 옷을 많이 산 거 아닌가요? 나중에 농장에 돌아가면 돈을 돌려드릴게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래도…….”
“제가 선물로 드리는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부담스러워하는 리아네에게 나는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서예린이 딱 달라붙으며 말했다.
“시현이 말대로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리아네 씨. 그러면 우리는 이제 다음 쇼핑을 하러 가볼까요?”
“예? 옷은 벌써 다 샀는데요?”
“어허! 아직 사야 할 물건이 한참 남아 있다고요. 얼른 가요.”
* * *
서예린은 최근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던 모양인지, 폭주하듯이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나는 짐을 들고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리타이어를 선언하고, 아이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자 서예린은…….
“그럴래? 안 그래도 이 앞에는 남자랑 같이 가기 민망한 곳이었거든. 잠깐 쉬고 있어. 끝나면 연락할게.”
서예린은 어머니와 리아네를 데리고 빠르게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는 쇼핑몰 한쪽에 마련된 휴식 공간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남자들이 이미 먼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확실히 여자의 쇼핑을 따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꾸욱! 꾸욱!
옆에서 옷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은율이가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은율아, 왜?”
“으응…….”
은율이는 내 물음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귀여운 여우 소녀를 살핀 보호자의 감으로 금방 그 속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은율이를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사고 싶은 게 있구나?”
내가 속내를 정확히 짐작하자, 은율이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피곤한 기색을 내비쳐서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하더라 해도 이렇게 귀여운 딸이 부탁하는데 움직이지 않을 아빠가 세상에 있을까?
나는 일부러 활기찬 모습으로 일어나며 은율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자! 그럼 아빠는 이제 은율이랑 오붓하게 쇼핑을 즐겨볼까?”
“응, 헤헤!”
은율이는 기쁨에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있다, 뾰!」
-무우우! 무우우!
“알았어, 알았어. 너희들도 필요한 게 있나 같이 천천히 둘러보자.”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향한 곳은 애완동물 용품이 있는 곳이었다. 은율이가 갖고 싶다고 한 첫 번째가 새끼 그리핀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라서였다.
지난번에 사줬던 고양이 낚싯대 장난감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장난감을 선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최근에 새끼 그리핀들의 솜털이 거의 사라지고, 조금씩 빳빳한 깃털이 자라나더니 엄청 활발해졌다.
요즘에는 그 활동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 장난감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뛰어놀았다가는 하루도 못가서 뻗어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나는 은율이와 의논해서 던지고 놀 수 있는 고무공 장난감과 입질을 막아줄 봉제 인형을 챙겼다.
추가로 아기 야쿰들의 털을 빗겨줄 브러쉬도 하나 구매했다. 아꿍이는 브러쉬를 보자마자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눈치채고 눈을 반짝였다.
-무우! 무우!
“알았어. 나중에 집에 가면 이걸로 빗질해 줄게. 조금만 참아.”
다음으로 향한 곳은 문구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안드라스 선생님과 공부하는데 필요한 학용품과 스케치북, 색연필, 크레파스 같은 것들을 잔뜩 카트에 담았다.
으음…….
그러고 보니 미루에게 학용품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해 놓고 깜빡하고 있었네.
나를 돕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는 미루를 떠올리며 노트와 필기구를 넉넉하게 챙겼다.
기뻐할 고양이 소녀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흐뭇해지는 기분이었다.
* * *
아이들과 필요한 물건을 거의 다 챙겼을 때쯤, 다행히 리아네 일행 쪽에서도 쇼핑을 마쳤다.
나뉘어 있던 두 일행이 합류를 마치고, 약간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변에서 맛있는 냄새가 가득해지자.
리아네는 옷을 살 때와는 달리,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적극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시현 님, 저 빨간 음식은 뭐예요?”
“저것도 치킨인 건가요?”
“앗! 저건 예전에 시현님이 만들어 준 음식이에요.”
음식 앞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아이 같은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하게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잠시 메뉴를 고민하던 우리는 은율이도 부담 없이 먹을 만한 돈까스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돈까스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메뉴 주문을 끝내고 잠시 기다리자. 금방 따끈따끈한 돈까스가 우리 앞에 차려졌다.
내가 자연스럽게 은율이의 식사를 챙기는 사이, 어느새 리아네와 친해진 서예린이 살갑게 식사 준비를 챙겼다.
먹기 좋게 자른 돈가스를 뜨겁지 않게 호호 불어준 뒤, 소스에 찍어 은율이의 입게 가져가 주었다. 은율이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생에 첫 돈까스를 맛봤다.
“은율아, 맛있어?”
“응. 맛있어.”
“안쪽은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은율이에게 작은 조각들을 챙겨주는 틈틈이, 나도 돈까스를 한 조각씩 집어먹었다.
엄청 특별한 맛이 있는 돈까스는 아니었지만, 바삭한 튀김과 고기 육즙의 맛이 잘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리아네도 돈까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큰 크기의 돈가스를 주문했음에도 빠르게 접시를 비워 나갔다.
어머니는 ‘참 복스럽게 잘 먹네.’라며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돈가스를 리아네에게 나눠줬다.
모두 맛있게 돈가스를 맛보던 그때.
-♪♬∼♩♬♪
누군가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나와 어머니의 벨 소리가 아니었기에 금방 서예린의 핸드폰이라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연결했다.
“잠시만 실례 좀…… 네, 여보세요?”
-…….
“아! 부길드장님? 저 오늘 휴일인데 무슨 일이세요?”
-…….
“예? 으음, 마침 옆에 있긴 한데…… 아, 아니라니까요. 진짜 그 소문은 완전 헛소문이에요.”
통화 내용으로 짐작하기를 가디언즈 길드 쪽에서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았다.
서예린이 워낙 길드 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당연히 그런 종류의 전화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지금요? 음…… 알았어요. 잠시만요.”
서예린은 통화 자세를 풀더니 대뜸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뭐, 뭐야?”
“받아. 부길드장님이 너 바꿔 달래.”
“으응?? 가디언즈 길드의 부길드장님?”
“응. 맞아. 나 팔 아프니까 빨리 받아.”
“…….”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