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3화
소집(3)
강희섭의 경고에 몇몇 대표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아스토라 대표도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지금 저희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이라니!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는 것뿐이야. 치사하게 뒷조사나 해가며 우리 길드원들을 몰아세운 건 그쪽이잖아.”
“…….”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강희섭은 아스토라 대표와 그 주변의 대표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들이 발끈하며 뭔가 대답하려는 찰나. 다른 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강희섭 대표의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아스토라 대표님께서는 부실한 이력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셨지만, 제일 중요한 건 실력 아니겠습니까?”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대표 중에 한 사람이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의견을 밝혔다.
“아마 다른 대표님들도 그 부분만 확실히 증명된다면 불만 없으실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슬쩍 주변에 질문을 던지면서 동의를 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나머지 대표들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가온 길드 대표님 말이 맞습니다. 실력만 확실하다면야 우리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겠죠.”
“애초에 천족이 선발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이력만 가지고 포기를 강요하는 것도 꺼림칙하긴 했습니다.”
“저도 가온 길드 대표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가온 길드 대표를 중심으로 강희섭을 지지하는 의견이 모여졌다.
“큭큭. 아무래도 저쪽은 내 말에 동의한 것 같은데?”
“윽…….”
한결 여유로워진 강희섭의 표정. 그와 대비되게 아스토라 대표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 듯한 모양새였다.
강희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골적인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도발했다.
“뭐야? 아까는 자신만만해서 말하더니.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네.”
“…….”
“왜? 실력으로 하자니까 자신 없어? 아스토라 길드는 우리랑 달리 입터는 실력으로 길드원을 평가하나 봐?”
강도 높은 도발에 아스토라 대표는 새빨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
아스토라 대표는 격해진 감정을 나타내듯 약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약간의 시간 동안 다시 표정을 관리한 그는 강희섭을 죽일 듯 노려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두 사람에 대한 실력을 검증해 보도록 하죠.”
그제야 강희섭은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하고 웃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가디언즈 대표님께서 실력에 아주 자신만만하신듯하니. 아주 철저하게 검증하겠습니다. 불만은 없으시겠죠?”
“오히려 이쪽에서 바라던 바야.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 * *
쩝…….
일이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소집 임무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순식간에 나와 리아네의 실력 검증 무대가 돼버렸다. 그것도 오늘 당장 검증하기로 결정 나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이 진행되어 버리자,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을 대변해 주듯 남진혁이 강희섭에게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길드장님. 이거 괜찮은 건가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현 형이랑 리아네 씨를 검증하겠다니…….”
“준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준비 없이 해야 본래 실력이 더 잘 나오는 법이야.”
“…….”
강희섭의 그럴듯한 궤변에 남진혁은 더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 옆에 있던 서예린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길드장님…… 아니, 아저씨. 뭔가 생각이 있는 거야?”
서예린은 진지한 말투로 강희섭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와 리아네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생각이 있다기보다는…… 이기석 본부장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이기석 본부장? 설마 차원관리본부의 그 사람?”
그녀는 갑자기 예상외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와 리아네도 관심을 가지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맞아. 오늘 회의에서 이런 논란이 일어날 줄 알고, 어제저녁에 미리 연락했더라고.”
역시 이기석 본부장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 시간 업계의 사건 사고를 관리해온 사람이었기에. 그는 어렵지 않게 회의의 흐름을 예상한듯했다.
“이기석 본부장이 말하길. 리아네 씨의 실력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확실하다고 하더군.”
남진혁은 놀란 표정으로 리아네를 바라봤다. 실력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는 눈빛이었다.
반면에 서예린은 리아네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상대적으로 무덤덤했다.
강희섭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사람은 상대가 이렇게 나올지 다 예상한 모양이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조언해 주더라고.”
남진혁은 감탄을 터뜨렸다.
“그래서 길드장님이 일부러 강하게 도발을 하신 거군요?”
“아…… 그건 그냥 저놈들이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거야. 재수 없게 떽떽거리잖아.”
“…….”
강희섭의 설명에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대충 이해가 됐다.
그가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회의 내내 상대방에게 이끌려 다니며 손해를 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올바른 대응인 것과는 별개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나와 리아네는 이제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지금 저쪽에서 아스토라 대표와 몇몇 사람들이 모여 우리의 실력 검증 방법을 의논 중이었다.
강희섭이 강하게 도발한 탓에 그들은 칼을 갈고 있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을 때.
옆에서 리아네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시현 님. 걱정하지 마세요.”
“리아네 씨…….”
“우리 둘이서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확신에 찬 눈으로 내게 말했다. 그 위로 덕분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잠시 후.
아스토라 대표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검증 방법에 대해 다른 대표님들과 의논이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죠.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준비된 장소에 도착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할 말만 남긴 그는 쌩하고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강희섭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우리에게 따라가자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강희섭을 필두로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스토라 대표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건물 지하였다. 굉장히 넓고 커다란 공간에 아티팩트로 보이는 물건들이 여럿 보였다.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계속 두리번거리자, 남진혁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 줬다.
“여긴 아티팩트와 장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에요. 주변 벽과 구조물이 마법으로 강화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시범을 보일 수 있거든요.”
“아…….”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 공간의 용도를 이해했다.
지하 공간 안쪽에 따로 나눠진 구역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길드 대표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앞장서던 아스토라 대표가 멈춰 서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음……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지?”
“실력을 검증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2 대 2 자유 대련 방식으로 실력을 겨루는 것이죠.”
자유 대련?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아스토라 대표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아티팩트로 서로의 마력을 제한하고 대결을 펼치는 겁니다. 승리 조건은 두 가지. 유효한 공격으로 상대방의 방어 아티팩트를 먼저 파괴하거나, 또는 상대방을 몰아붙여 제한된 것보다 마력을 더 끌어올리게 만들면 승리합니다.”
아티팩트를 사용해 안전한 범위 내에서 실력을 겨루는 방식인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들어봤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니 꽤 일반적인 대결 방식인 것 같았다.
“혹시 이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진한 미소와 함께 아스토라 대표가 의중을 물었다. 강희섭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뭐, 실력을 확인하려면 이게 편하긴 하지. 근데 제일 중요한 상대방은 누구지?”
“다행히 적당한 분들이 계셔서 급하게 모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두 분 다 저희 아스토라 길드의 길드원분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천족의 소집 명단에 들지 못했지만, 앞선 소집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던 분들이죠.”
“흐음…….”
거침없던 강희섭이 처음으로 멈칫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반응에 아스토라 대표의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앞으로 나선 두 사람을 보며 서에린이 중얼거렸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남진혁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오히려 불리한 대결이라고.”
“왜? 왜 불리하다는 거야?”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자, 남진혁이 곧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얼핏 보면 공평한 대결처럼 보이지만, 각성자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는 방식이야. 예를 들면 나 같은 마법사는 빠르게 공격하는 상대에게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어.”
“아…….”
그제야 남진혁이 말하려는 바를 알 수 있었다. 괴수들을 상대할 때와 이렇게 규칙을 정해놓은 대결에서 각자의 실력이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스토라 대표는 마치 이런 상황을 준비한 듯,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결을 제안해 왔다.
“하필이면 저기 두 사람 모두 빠른 움직임과 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야. 이런 소규모 대결에서 최적의 조합을 가지고 나온 거라고.”
“거기다 시현은 직접적인 전투 능력보다 지원 능력이 강점인데…….”
“어쩌면…… 아스토라 대표는 그걸 미리 알고서 이런 방식을 제안했을지도 몰라.”
서예린과 남진혁은 차례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강희섭이 머뭇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았다.
“가디언즈 대표님, 어떻습니까? 혹시 제안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
어려운 제안에 강희섭이 망설이던 그때.
“상관없어요. 그 대결 제안, 받아들이겠어요.”
리아네가 당당히 앞으로 나서며 제안을 수락했다. 강희섭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아스토라 대표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금방 다시 여유로운 미소로 되돌아왔다.
“오! 자신만만 하시군요. 이름이 리아네 씨라고 하셨죠? 그럼 나머지 한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도 이 대결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그는 싱긋이 웃으며 내게 질문했다. 그 태도가 마치 ‘너도 자신 있어?’라며 비웃는 듯했다.
앞으로 나섰던 리아네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맞췄다. 눈빛만 봐도 그녀가 나에게 말하려는 것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남자야!
아무리 불리한 싸움이라지만, 먼저 나선 리아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결심을 굳힌 나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리아네의 옆에 서서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좋습니다. 그 대결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