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6화
천족의 임무(2)
두 번째 공격대 대장 윤대호.
굵은 턱선과 눈매 그리고 짧게 깎은 머리카락. 옆에 선 강희섭 못지않은 덩치와 단단한 체격. 한눈에 봐도 남성미가 물씬 풍겨 나오는 인물이었다.
이전에 회식 자리에서 서예린과 남진혁에게 윤대호에 대해서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를 강희섭 길드장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대외적으로는 강희섭 길드장이 맡은 첫 번째 공격대가 길드의 최고전력이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첫 번째, 두 번째 공격대 모두 전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거기다 길드에 잠재력 있는 인재가 많이 소속되어 있어서, 미래의 성장 가능성까지 본다면 사실상 길드의 최고전력이라고…….
나와 인연이 깊은 윤세희와 정태호도 두 번째 공격대에 후보로 뽑혔다고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를 돕기 위해서 찾아온 리아네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시현 씨. 옆에 계신 리아네 씨와 함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길드 대표 회의 때 엄청난 활약을 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뭐…… 엄청날 것까지야…….”
내가 민망한 표정을 짓자 윤대호의 입꼬리가 아주 잠시 미세하게 올라갔다. 금방 진지한 표정으로 되돌아온 그는 앞으로 시작될 임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후방에서 화력지원과 보조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여기 경험 많은 두 분의 지시에 따라만 주신다면 어렵지 않게 임무를 끝내실 수 있을 겁니다.”
윤대호는 이런 임무가 처음인 나와 리아네에게 후방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그의 말투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저는 다른 길드 분들과 이야기해야 할 게 조금 남아 있어서 잠시 가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길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굉장히 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네…….”
내 중얼거림을 들은 서예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 아저씨가 언젠가 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나면, 아마도 윤대호 대장이 새로운 길드장이 될 거야.”
가디언즈 길드의 차기 길드장이라…….
겨우 몇 분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확실히 윤대호 대장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로 보였다.
“길드 내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은 대부분 편하게 대하는데. 윤대호 대장만큼은 못 그러겠더라고. 신기하지?”
“……어? 어리다고? 윤대호 대장이?”
“응? 회식 때 이야기 안 했었나? 윤대호 대장 우리보다 한 살 어려.”
“……???”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에 저절로 입이 벌려지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살 어리다고? 느껴지는 분위기나 겉모습은 당연히 나보다 몇 살 위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20대??
내가 충격받은 걸 이해한다는 듯, 남진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윤대호 대장이 나이에 비해 조금 성숙해 보이시긴 하죠.”
“에잉! 성숙은 개뿔. 그냥 나이 들어 보이는 거지.”
남진혁이 포장하려는 듯 말하자. 강희섭은 투덜거리며 말을 끊어 버렸다.
“너무 젊어서 공격대 대장 자리를 맡아서 그런 거야.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많이 받는 자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겉늙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아저씨도 윤대호 대장이랑 비슷하게 공격대 대장 자리를 맡지 않았어요?”
“맞아. 내가 조금만 늦게 맡았으면, 잘생긴 얼굴이 조금 더 오래 남았을 텐데…….”
“에이…… 거짓말! 그거랑 상관없이 옛날부터 그냥 노안이었잖아요.”
“무, 무슨 소리! 지금은 길드 운영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지. 옛날에는 장난 아니었어. 여자들이 줄지어서 따라다녔다고!”
“아닌데. 내가 옛날 사진 봤을 때는 지금이나 그때나…….”
“수, 수염을 좀 길러서 그래. 멀끔하게 깎으면 달라져!”
강희섭이 자존심이 걸린 외모 문제로 서예린과 아웅다웅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균열 발생 시간에 가까워졌다.
-우우우웅…….
-쩌저저적! 쩌억!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뭔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윽고 커다란 공간이 쩍하고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깥쪽에 구경하던 사람들 쪽에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왔지만, 소집된 인원들과 길드 관계자들은 모두 담담하게 균열 현상을 지켜봤다.
균열이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그때.
“저, 저기!”
“오오!”
구경꾼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족이다!”
새하얀 빛으로 물든 날개를 펼치고, 여러 명의 천족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사진을 찍기 바빴고, 일반인들도 핸드폰을 꺼내 천족의 모습을 담았다.
10명 정도 되는 천족 사이에 익숙한 아슈미르의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맨 앞에 서 있던 남자 천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렇게 모여주신 각성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페이슈타의 감시관 소속, ‘키르웬’입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천족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희는 이번에 열린 균열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뛰어난 실적을 가진 여러분들을 소집했습니다. 만약에 이 균열을 제때 제거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존재하는 차원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나는 키르웬의 말을 들으며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큰 위험인데 왜 쟤네들은 안 도와주는 거지? 차원의 균형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것처럼 그러더니…….”
“몰라. 이런 상황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나? 그게 쟤네들의 규칙이래.”
“흐음…….”
서예린의 대답에 나는 깊은 침음을 흘렸다.
천족은 차원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규칙을 따른다고 하지만, 가끔은 그들의 행동이 비논리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차원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느낌이랄까?
천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키르웬의 일장 연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들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말을 끝마친 그는 다른 천족들과 함께 균열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각성자들은 자연스럽게 균열로 진입할 준비를 시작했다.
“무사히 잘 다녀와라.”
“아저씨,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는 강희섭의 배웅을 받으며 균열이 열려 있는 쪽으로 향했다.
50명 정도 되는 인원이 각자의 위치에 맞춰 모여들었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앞쪽부터 균열 입장이 시작됐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후방에 있던 터라 입장까지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멍하니 균열을 바라봤다.
-우우우웅…….
“…….”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까지 봤던 일반적인 균열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균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표정이 굳어가던 그때.
누군가 옆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천족 키르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것뿐일까? 아니면 내가 착각을 한 것일까? 키르웬의 눈빛에 담겨있는 오묘한 느낌은 순간 나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현아.”
“…….”
“시현아. 임시현!”
“어…… 어어?”
서예린의 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우리가 들어갈 차례라고.”
“어…… 응.”
조금 어눌하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혹시 긴장한 거야? 걱정하지 마. 이 누나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서예린은 내 긴장감을 일부러 풀어주려고, 일부러 과장된 행동과 말투를 보였다. 덕분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이상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이제 괜찮아. 우리도 들어가자.”
“그럼 힘차게 가볼까?”
우리는 균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균열 내부로 들어온 우리는 지금껏 본적 없는 강력한 적들을 연달아 만나며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계속……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균열에 들어갔을 때와 비교해 지루하다고 느낄 정도로 평화로웠다.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모은 덕분일까?
몇 차례 전투가 있긴 했지만, 후방에 있는 우리는 딱히 나설 기회가 없었다.
혹시 모를 후방에서의 습격을 방어하고, 전열의 전투를 지원하는 게 우리의 임무인데 워낙 전력이 막강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전투가 싱겁게 끝나 버렸다.
남진혁이 몇 번 마법으로 화력지원을 해준 것을 제외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호위 임무를 맡고 따라온 리아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다른 각성자들의 실력을 구경하는 재미는 나름 쏠쏠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윤대호 대장의 실력이 아주 발군이었다.
그의 무기는 커다란 대검이었는데. 그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공격해오는 괴수들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거침없는 전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적절한 전투와 휴식을 반복하며 일행은 균열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정말 순탄한 진행이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털어낼 수 없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
“시현 님.”
리아네가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속삭였다.
“네?”
“혹시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으세요? 표정이 조금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리아네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정확히 알아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걱정되는 일이 있다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계속 불안한 감정이 들어서요. 균열도 평소보다 뭔가 불길하고…….”
“그런가요? 저는 균열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와서 잘 모르겠네요. 다른 분들에게 물어볼까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조금 신경이 예민한가 봐요.”
나는 양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리아네는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괜히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랬다.
이런 내 불안한 마음과는 정반대로 임무 진행은 순탄하게 이뤄졌고. 금방 균열의 보스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