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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8)화 (20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8화

천족의 임무(4)

-크와아아아아앙!!!!!!

흉포한 울음소리.

그것은 듣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게 했다. 긴장을 풀고 있던 각성자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쿵! 쿵! 쿠웅!!!

커다란 발소리에 맞춰 흐릿하게 보이던 형상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잠시 후 발소리의 주인공은 균열 밖을 벗어나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르…….

두 다리로 서 있는 괴수는 전체적으로 곰을 닮아 있었다.

검은 털과 온몸을 뒤덮은 붉은 사슬. 으르렁거리는 입 사이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이빨과 모든 걸 찢어발길 듯한 날카로운 손톱. 광기에 가득 찬 붉은 눈동자.

곰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귀여움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오로지 맹수의 사나운 부분만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당황하지 마! 지금까지 했던 대로 전투에 임하면 돼!”

“모두 위치로!”

“빨리 정신 차리고 무기 들어!”

천족에게 선발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임무에 참여한 모든 각성자들은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나와 리아네, 서예린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보스급의 등장에 모두 당황스러웠겠지만, 거대 버섯 괴수를 상대하면서 부상자가 거의 없었기에 모두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을 뭉개기라도 하듯, 곧바로 또 다른 악재가 우리를 덮쳤다.

-부우우우우…….

“저…… 저건 갑자기 왜…….”

“터, 터진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거대 버섯 괴수의 몸이 부풀기 시작하더니, 가스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독 포자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퍼어엉!!

-솨아아아악…….

거대한 몸체에서 일어난 폭발은 순식간에 넓은 범위를 독 포자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독의 위력은 일반 버섯 괴수보다 훨씬 지독했다.

“숨을 멈추고 해독 포션을 복용해!”

“이미 해독 포션을 사용한 사람은 뒤로 빠져! 이런 독에서 누구도 오래 버틸 수 없어!”

누군가 빠르게 독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독 포자의 범위가 너무 넓었던 탓에 순식간에 피해자가 늘어났다.

“끄으으윽…….”

“누, 누가 포…… 포션을…….”

빠르게 독 포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임무 내내 가벼운 부상자만 있었는데, 방금 독 포자 공격으로 많은 인원이 전투 불능 상태가 돼버렸다.

[‘야쿰의 신뢰’ 효과가 발동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다행히 나는 독 포자 공격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무우…… 무…….

「으윽! 이상한 냄새 난다, 뾰!」

아이들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옆에 있던 리아네와 마찬가지로 거뜬한 모습이었다.

“끄으응…….”

“예린아, 이거 받아.”

나는 힘들어하는 서예린에게 내 몫의 해독 포션을 건넸다.

“너, 너는?”

“나는 괜찮으니까. 잔말 말고 빨리 마셔.”

서예린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해독 포션을 받아 복용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금방 얼굴이 편안해졌다.

약간의 여유를 되찾은 그녀는 빠르게 주변을 파악하며 우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가 많아. 곧바로 주력 본대에 합류해서 저 곰같이 생긴 놈을 상대…….”

-촤르르르르륵!

서예린이 말을 이어나가던 도중, 균열에서 나온 붉은 사슬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슬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버섯 괴수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끄어억!

-그으으으…….

버섯 괴수들은 눈동자에 붉은 광기를 번들거리며, 하나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런 씨……!”

지시를 내리던 서예린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지금 버티고 있는 모두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 모를 거대 괴수, 지독한 독 포자 공격에 되살아난 버섯 괴수들까지…….

혹시 이 상황이 누군가 파놓은 함정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떠오른 그 생각을 이어나갈 정도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되살아난 버섯 괴수와 거대 곰 괴수가 점점 압박을 시작해왔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긴 했지만, 독에 중독된 인원들이 워낙 많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금방 전투는 난전으로 흘러갔다.

“이런…….”

난전에서는 서예린도 별다른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 적을 빠르게 해치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

“시현 님.”

리아네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짧은 눈빛 교환만으로도 그녀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나는 잠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리아네 씨의 힘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절대 무리하시면 안 돼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대답을 들은 리아네는 내 주변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일렁일 때마다 적들은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나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교감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버섯 괴수들의 정신 제어를 시도했다.

“으음…….”

붉은 사슬의 영향 때문인지 놈들의 정신 제어가 쉽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그때, 내 손목에서 붉은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나에게서 뻗어 나온 붉은 사슬이 재빨리 주변 괴수들을 감쌌다. 그러자 힘들었던 정신 제어가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졌다.

이전에 이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와 리아네의 활약 덕분에 주변의 버섯 괴수들은 빠르게 정리됐다. 그 사이 서예린은 소환수 뽀삐를 앞세워 쓰러진 부상자들을 챙겼다.

“끄으윽…….”

“가, 감사합니다…….”

“어서…… 어서 해독 포션을…….”

안타깝게도 부상자들에게 줄 해독 포션은 없었다.

당장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원들이 사용할 포션도 부족했다. 그나마 독 포자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주는 게 최선이었다.

우리가 부상자들을 챙기는 사이.

윤대호와 남진혁이 포함된 주요 인원들은 힘겹게 곰 괴수와 전투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크와아아아앙!!!

거대 괴수는 포효와 함께 커다란 앞발을 휘둘렀다. 대부분 공격을 피하거나 버텨냈지만, 몇몇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독 포자 공격의 영향 때문인지, 임무 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조차 밀려 버리자. 모든 이들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서예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그녀가 지금 전투의 흐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그녀의 얼굴에 나도 불안감을 느끼던 그때.

“으윽?!”

누군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 사람이 남진혁이라는 걸 깨달았다. 언뜻 보이는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마력 탈진 현상.

과도하게 마법을 쏟아낸 그가 가끔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잠시 휴식을 취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것.

거기다 하필이면 곰 괴수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남진혁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거다.

“진혁아!”

순간적으로 그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앙!!!

다시 한번 놈은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시현 님!!!”

“시현아!!!”

등 뒤로 들려오는 리아네와 서예린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멀게 느껴졌다. 동시에 앞에서 다가오는 곰 발바닥이 하늘을 뒤덮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콰아아아아앙!!

곰의 앞발이 내려 찍히며 엄청난 충격음을 만들어냈다.

“허억…… 허억…….”

“…….”

“진혁아…… 허억…… 괜찮아?”

“으…… 응. 괜찮아.”

남진혁의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쪽에 펼쳐진 방어막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뒤덮은 곰 발바닥 때문에 주변은 어두웠지만, 새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은 꽤 선명하게 보였다.

“형…… 이건?”

“자세한 설명은 힘들고…… 그냥 안드라스라는 분한테 신세를 졌다는 것만 알고 있어.”

“안드라스…… 그게 누구…….”

이 와중에도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남진혁이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어두웠던 주변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르르르…….

거두어진 곰 발바닥 너머로 분노에 찬 괴수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다시 한번 공격을 준비하는 녀석.

붉은 사슬의 영향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오기가 생겨 놈에게 한 방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다.

안드라스가 전해줬던 아티팩트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장착한 팔에서 마력의 파동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우웅…… 우우우웅!!

나는 안드라스와 연습했던 대로 공격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녀석이 다시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엄청난 마력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화르르르륵!!

마력을 집어삼키듯 거대한 불덩이가 나타났다. 그 불덩이는 곧장 괴수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화아아악!!

-콰아아아아앙!!

불덩이는 땅을 진동시킬 만큼 커다란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그 후폭풍에 휘말리지 않게 다시 한번 아티팩트로 방어 마법을 펼쳐냈다.

주변에 휘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넘어지는 괴수가 보였다. 공격이 제대로 통했는지 완전히 균형을 잃은 모습이었다.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파직…… 파지직!

괴수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고, 연달아 마법을 사용한 탓에 아티팩트 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안드라스가 공들여 만든 아티팩트를 부숴 먹은 것 같았다.

쩝…… 죄송합니다. 안드라스 씨.

돌아갈 때 꼭 맛있는 거 잔뜩 사 갈게요.

잠시 마음속으로 안드라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사이. 걱정스러운 표정의 일행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둘 다 괜찮아?”

“시현 님,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차례로 서예린, 리아네, 윤대호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살짝 미소 짓는 여유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진혁은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의 상태를 확인한 세 사람은 동시에 안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대 곰이 쓰러진 탓에 아주 오랜만에 전장에 여유가 생겨났다. 이 황금 같은 기회에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지만, 워낙 부상자가 많은 탓에 전력의 구심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서예린이 소리쳤다.

“일단 부상자들을 수습하면서 전열을 갖춰야 해.”

곧바로 윤대호도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각성자를 잃게 된다면, 여러 길드뿐만 아니라 나라에도 큰 어려움이 될 겁니다.”

여기에 모인 각성자들은 수많은 길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소속 길드뿐만 아니라, 나라의 시스템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서예린과 윤대호는 우왕좌왕하는 이들에게 부상자들의 수습을 지시했고.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탈진한 남진혁도 소환수 뽀삐의 도움으로 위험한 전장에서 벗어났다.

잠시 후.

-그으으으…….

쓰러졌던 거대 괴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일어나는 놈의 모습을 보고 서예린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큰 피해를 받았는데 벌써……?”

다시 엄습해 오는 좌절감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전장의 남겨진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다시 전투가 시작된다면 커다란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항상 빠르게 지시를 내리던 서예린과 윤대호도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려운 상황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그때.

-파앗!

옆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무언가 혜성처럼 길게 꼬리를 남기며 거대 괴수에게 쇄도했다.

-끼이이익…… 콰아아아앙!!

괴수의 가슴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아아아악!!

-쿠웅!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던 놈은 다시 한번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그 상황을 지켜봤다.

쓰러진 괴수 앞에 붉은 섬광의 주인이 사뿐히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쳇! 곰탱이 주제에 가죽은 더럽게 두껍네. 한방에 심장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머리에 솟아난 커다란 마족의 뿔.

바지를 뚫고 나와 흔들리는 꼬리.

붉은 비늘로 뒤덮인 손. 그리고 그 끝에는 괴수의 피로 흥건한 날카로운 손톱까지!

“리아네 씨……?”

내 부름에 그녀가 휙 몸을 돌렸다.

나를 발견한 그녀의 입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갔다. 살짝 얼굴에 튄 피가 묘하게 어울리는 아주 시원한 미소였다.

“잘 지냈어. 동생?”

“……리아네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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