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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9)화 (20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09화

천족의 임무(5)

리아네의 180도 달라진 분위기.

나는 그녀의 또 다른 인격이 등장했음을 금방 눈치챘다.

“오랜만이네요. 누님.”

“큭큭, 그러게.”

리아네 누님과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묘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눈빛과 말투에서 반가움이 살짝살짝 느껴졌다.

짧게 인사를 끝낸 리아네 누님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나오자마자 이렇게 재미있는 상황이라니! 이번에는 운이 좋은걸?”

“그, 그런가요?”

리아네 누님은 야유회 때 서열 정하기를 주장할 때처럼. 지금도 새로운 놀이터에 도착한 어린이같이 신난 표정을 지었다.

“리, 리아네 씨……?”

“그 모습은…….”

뒤늦게 이쪽으로 다가온 서예린과 윤대호는 달라진 리아네의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외형뿐만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마저 크게 바뀌었으니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나마 사정을 알고 있었던 서예린은 대충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이었지만, 윤대호는 조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시현 씨. 설마 리아네 씨는…….”

“네. 아마도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으음…….”

내가 너무 쉽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를 지켜보던 리아네 누님이 불쑥 끼어들었다.

“어이, 이봐!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닐 텐데?”

그녀는 붉은 비늘이 뒤덮인 손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쓰러졌던 괴수가 다시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상처 입은 맹수가 가장 무섭다고 했던가?

울음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진득한 살기와 분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반면에 리아네 누님은 괴수의 울음소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일단 저 녀석을 없애면 되는 거지? 오랜만에 제대로 몸풀기하기에 딱 적당하겠어.”

투쟁심을 불태우는 그녀의 옆으로 윤대호가 나란히 섰다.

“저도 돕겠습니다.”

“흐음. 괜찮겠어? 협력해서 싸우는 일에는 관심 없어서. 나는 내 마음대로 싸울 거야. 어중간한 실력이라면 그냥 빠져 있는 게 좋을걸.”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윤대호는 대검을 꺼내 들며 진한 기세를 내뿜었다.

“방해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호오?”

그의 강력한 기세에 리아네 누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쪽 세계의 실력자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밌겠네.”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거대 괴수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놈의 시선은 마지막에 일격을 가했던 리아네 누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순식간에 기세를 끌어올린 리아네는 빠르게 거대 괴수를 향해 쇄도했다. 윤대호는 그녀를 뒤따르기 전, 나와 서예린에게 지시를 내렸다.

“두 분은 계속 부상자들을 도와주십시오. 저분과 제가 괴수를 막고 있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부상자 수습이 완료되는 대로 다시 합류할게요.”

그는 등 뒤로 응원을 받으며 거대 괴수에게로 달려들었다. 우리도 곧바로 부상자들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크와아아아앙!!!

-꽝∼!!

거대 괴수는 포효와 함께 무지막지한 앞발 공격을 사방에 휘둘렀다. 하지만 리아네 누님과 윤대호는 요리조리 회피하며 놈의 빈틈을 공격했다.

두 사람이 거대 괴수를 막아내는 동안, 나와 서예린은 버섯 괴수들을 처치하며 부상자를 수습했다.

많은 부상자로 전체적인 전력은 크게 떨어졌지만, 아직 전투가 가능한 각성자들이 전력을 다해 전투를 이어나갔다.

-콰아앙!!

“곰탱아! 겨우 이 정도가 끝이냐?”

리아네 누님은 무지막지한 공격에도 전혀 물러섬 없이 거대 괴수를 압박했다. 그녀의 활약 덕분에 적의 온몸에는 상처가 하나둘씩 쌓여갔다.

모두의 머릿속에 조금씩 승리가 그려지려던 그 순간.

-크허어어어엉!!!

괴수는 다시 한번 커다란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노나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동료를 부르는 늑대의 하울링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이 들렸다.

그 울음소리의 결과는 금방 눈앞에 드러났다.

-쩌저저저적!

-촤르르르륵!

균열에서 공간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붉은 사슬이 튀어나왔다. 버섯 괴수들에게 스며들었던 사슬들도 춤추듯 허공으로 빠져나왔다.

엄청나게 많은 붉은 사슬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흘러나오더니. 일제히 거대 곰 괴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저 붉은 사슬은 도대체?!”

“…….”

녀석은 사슬을 흡수하면서 온몸에 생겼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순식간에 치료됐다.

동시에 지금까지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광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앙!!!!

위험하다!

단순히 적의 강력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거대 괴수는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빨리 처리해야 할 시한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놈을 상대했던 리아네와 윤대호는 물론이고, 잠시나마 머릿속에서 승리를 그렸던 사람들도 얼굴이 핼쑥해졌다.

모두 본능적으로 놈의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고 있었다.

말 그대로 폭주!

거대 괴수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걸 파괴할 생각밖에 없었다.

-후우우욱!!

곰의 앞발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리아네 누님과 윤대호를 덮쳤다.

리아네 누님은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지만, 너무나도 빨라진 공격에 윤대호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충격을 받아내야 했다.

-휘이익!

허공으로 튕겨 나간 윤대호가 심하게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윤대호 대장!”

“윤대호 대장!”

나와 서예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름을 불렀다.

다행히 그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마에는 붉은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딱 봐도 가볍지 않아 보이는 상처였다.

윤대호가 크게 다치고 전투에서 이탈하자. 리아네 누님도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주변 각성자들의 공격을 지원에도 윤대호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다시 한번 최대출력으로 아티팩트의 마법을 시전했다.

“리아네 누님! 조심하세요!”

“으읏……!”

내 외침을 들은 그녀는 빠르게 괴수와 거리를 벌렸다.

-우우웅…… 우우우웅!!

-화르르르륵!!

이번에도 거대한 불덩이는 정확하게 괴수의 가슴을 강타했다. 강렬한 폭발음과 후폭풍이 일어났다. 타격을 입혔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괴수가 있던 곳을 확인했다.

-크르르르…….

“이, 이럴 수가!”

분명 제대로 마법이 먹혔는데?!

폭발이 일어났던 가슴에 폭발 흔적만 살짝 남아 있을 뿐. 놈은 피해를 전혀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가슴에 남은 흔적마저도 빠르게 치유됐다.

뒤쪽으로 물러선 리아네 누님은 찡그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조금 있으면 저 녀석 완전히 폭주할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

서예린의 물음에 리아네 누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서예린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히 폭주하기 전에 저 거대 곰 괴수를 막아야 했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무우우!

“으응? 아꿍아?”

심각한 상황에 갑자기 아꿍이가 바지를 붙잡고 늘어졌다.

“아꿍아. 지금은 바빠서…….”

-무우우!

“……?”

계속 바지를 잡아당기는 아꿍이.

옆에 있던 서예린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시현아. 아꿍이가 왜 이러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아꿍이는 나에게 뭔가 말하려는 듯 보였지만, 교감 능력을 사용해도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한 표정을 짓던 아꿍이는 결국…….

-무우우…… 무우!!

크게 울음소리를 내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 아꿍아?!”

아기 야쿰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나는 기겁하며 뒤를 쫓았다.

-타타타탓!!

다리도 짧은 녀석이 어찌나 빠른지…….

죽어라 달리는데도 겨우 뒤를 쫓을 정도였다.

-그르르르르…….

이미 아티팩트 공격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분노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지 거대 괴수의 시선이 나를 쫓기 시작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어느새 괴수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휘이이익!!

-콰앙!

나를 향한 괴수의 공격을 막아낸 건 서예린의 소환수 뽀삐와 리아네 누님이었다.

“어서 가!”

공격을 막아낸 리아네 누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네?”

“뭔진 몰라도. 저 새끼 마수가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냐?”

“…….”

“이제 버티는 것도 잠시야. 빨리 뭐라도 해봐.”

“맞아. 여긴 나랑 리아네 씨가 막을 테니까. 어서 가봐!”

걸음을 멈추고 리아네 누님과 서예린을 바라봤다. 반대쪽에서는 아꿍이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금방 결정을 내리고 외쳤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다시 아꿍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등 뒤로 들려오는 포효와 충돌음을 무시하며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아꿍이가 향한 곳은 거대 버섯 괴수의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근처에는 안개처럼 가득한 독 포자의 영향으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에엑! 머리가 어지럽다, 뾰!」

내 상의 주머니에서 쉬고 있던 규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야쿰의 신뢰’ 효과를 받는 나도 순간 의식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갔다.

거대 버섯 괴수의 시체에 도착한 아꿍이는 그 위로 날렵하게 몸을 움직였다.

-무우우.

“따라오라는 거지?”

-무우! 무우!

거친 숨을 한번 가다듬은 뒤, 끙끙대며 시체에 위쪽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걸린 끝에 아꿍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아까 부풀어 오르며 폭발했던 여파로 시체의 중심부는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시체의 움푹 파인 구덩이 안쪽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보스급 괴수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영혼석이었다. 아꿍이는 그 영혼석 주위를 맴돌며 계속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영혼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무우우.

“그게 정말이야?”

이제야 아꿍이가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하지만 너무나도 놀라운 이야기였기에 쉽게 믿기 힘들었다.

-무우! 무우!

아꿍이는 확신에 찬 울음소리를 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천천히 영혼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에 닿은 영혼석이 조금씩 떨리더니, 이윽고 주변의 공간을 울릴 정도로 크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나도 모르는 사이 손목에서 붉은 사슬이 튀어나와 영혼석을 휘감았다. 사슬을 통해서 엄청난 영혼의 힘이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온몸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 최대한 의식을 집중했다.

아꿍이를 처음 소환했을 때 느꼈던 감각을 되살리며, 나와 영혼으로 이어진 강력한 존재를 떠올렸다.

-우우우우웅!!!

-파아아앗!!!

엄청난 진동음과 빛이 영혼석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존재감이 점점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존재감만으로도 마음에 긴장이 풀리면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정말…… 와 줬구나…….”

-부우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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