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1화
천족의 임무(7)
균열에서의 임무가 종료됐다.
임무에 투입됐던 각성자들은 장비와 부상자들을 챙겨 균열의 출구로 빠져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많았던 탓에 입구 주변은 곧 난장판이 되었다.
“으윽…….”
“여기 빨리 들것 가져와.”
“오랫동안 중독된 사람에게 해독 포션은 안 통해! 빨리 병원으로 이송시켜!”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은 바삐 부상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취재진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우리를 발견한 강희섭 길드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너희들 괜찮은 거냐?”
그의 물음에 가장 앞에 있던 윤대호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큰 부상은 아닙니다.”
“큰 부상이 아니긴.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는데. 너는 잔말 말고 빨리 치료나 받고 와.”
강희섭은 윤대호에게 핀잔을 준 다음, 나머지 길드원들의 상태를 직접 살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력을 급격하게 많이 소모해 조금 탈진이 왔을 뿐입니다.”
“저도 괜찮아요. 시현이가 해독 포션을 양보해 준 덕분에 중독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거든요.”
남진혁과 서예린은 차례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부상자가 많은 임무였다는 걸 생각하면 가디언즈 길드원들의 상태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자연스럽게 강희섭의 시선이 나머지 사람에게 향했다. 나는 겉으로 봐도 딱히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내 옆에 있던 리아네였다.
지금 리아네의 상태는 뿔과 꼬리, 양팔의 붉은 비늘까지 그대로인 상태였다.
서예린이 어디선가 구해온 담요로 온몸을 꽁꽁 싸매기는 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상한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으음…….”
“…….”
“평범한 외국인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쩝.”
강희섭은 금방 리아네의 정체를 눈치채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보냈다. 리아네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희섭의 얼굴이 점점 복잡해졌다.
“길드장님. 이번 임무는 시현 씨와 리아네 씨가 없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윤대호를 시작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의 활약을 열심히 설명했다.
“맞아요. 두 사람이 임무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줬거든요.”
“아마 두 분이 없었다면 부상자 대부분이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함께했던 길드원들이 모두 흥분해서 나서자. 강희섭은 두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알았어, 알았어. 나도 딱히 문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냐. 일단 길드장으로서 정확한 사정은 알아야 하니까.”
그는 길드원들을 진정시킨 뒤, 어색한 표정으로 리아네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리아네 길드원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은 건 아니겠지?”
“네. 물론이죠.”
“좋아. 조용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지금 억지로 나가려고 한다면 기자와 카메라맨들이 미친놈처럼 달려들 테니까.”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내 인사에 강희섭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체가 뭐가 됐든. 고생한 길드원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두 사람 모두 고생 많았어.”
강희섭은 우리에게 잠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에게 협조를 구해 따로 빠져나갈 길을 만들고,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차량도 미리 준비시켜 놓았다.
나와 리아네, 서예린.
이렇게 세 사람만 먼저 빠져나가기로 했다. 남은 윤대호와 남진혁은 여기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었다.
“시현 형, 오늘 정말 대단했어. 형이랑 리아네 씨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야. 예린 누나도 고생했어.”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윤대호, 남진혁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강희섭의 안내에 따라 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손을 써둔 덕분인지 주변에 달라붙는 기자와 카메라맨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구 주변을 빠져나오던 그때.
-흠칫!
나는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시현아, 갑자기 왜 그래?”
“으…… 응. 아니,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
“근처에 기자라도 숨어 있나?”
서예린은 기자가 숨어 있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내가 느낀 감각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아주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자.”
“어…… 알았어.”
그녀의 재촉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 * *
나와 리아네가 먼저 차에 올라탔다.
“…….”
“…….”
“저기…… 리아네 씨?”
“…….”
“누님?”
그제야 그녀의 고개가 슬쩍 내 쪽으로 움직였다.
“왜?”
“다른 건 아니고. 혹시 꼬리랑 손의 비늘만이라도 어떻게 숨길 수 없을까요?”
마족의 뿔을 가리는 아티팩트는 균열 안에서 고장 나 버려서 어쩔 수 없었고. 하다못해 가장 눈에 띄는 꼬리와 손의 비늘만이라도 숨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더니. 약간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못 해. 또 다른 리아네가 나와야 할 수 있어.”
“아…… 그런가요?”
“내가 빨리 들어가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리아네 누님의 말투에서 살짝 서운함이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 눈에 많이 띄어서요. 숨길 수 있으면 숨기는 게 좋다고 말씀드리려고 한 거예요.”
내 적극적인 변명에 그녀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아직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꼬리나 붉은 비늘이 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돌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웬만하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고 싶었다.
“억지로 돌아가라고 안 할 거니까. 편하게 있으셔도 돼요.”
“응…….”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
“네?”
“…….”
리아네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는 그녀에게 몸을 아주 가까이 붙이고 나서야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강희섭과 서예린이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강희섭이 뒤쪽에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옆집에 산다고 했지? 그럼 바로 집으로 데려다줄게.”
“저, 저기 길드장님. 집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서예린과 강희섭이 동시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왜? 혹시 어디 아픈 곳 있어?”
“바로 병원으로 데려다줄까?”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굉장히 민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좀…….”
“……??”
“……??”
뜬금없는 아이스크림 이야기에 서예린과 강희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네 누님은 얼굴을 붉히고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맛본 리아네 누님은 크게 만족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메이드 일을 좋아하는 본래의 인격도 함께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이어, 집 앞까지 직접 데려다준 강희섭 길드장은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금방 떠나갔다. 아무래도 곧장 윤대호와 남진혁이 있는 병원으로 간 것 같았다.
“으으으…… 아이들이랑 놀고 싶은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네. 우리는 들어가서 쉴게. 리아네 씨, 가요.”
“내일 뵐게요, 시현 님.”
피곤한 표정의 서예린은 리아네를 이끌고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짧게 인사를 끝내고 바로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다다닷!
“아빠!”
“어이구! 우리 은율이. 할머니랑 잘 놀고 있었어?”
“응. 아빠 말대로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었어. 헤헤, 잘했지?”
“우리 딸. 정말 착하네. 착해.”
은율이를 품에 안으니 집에 돌아왔다는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나른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은율이는 내 품에 안긴 채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기쁜 마음으로 들어줬겠지만, 지금은 임무의 피로함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피곤한 내 상태를 알아본 어머니가 은율이를 나에게서 떼어놓았다.
“은율아. 오늘은 아빠가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할머니랑 놀자.”
“으음…… 알았어.”
은율이는 굉장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계속 나를 기다렸을 은율이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내일은 더 많이 시간을 보내겠다 다짐하며 뒷일을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대충 몸을 씻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돌아왔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주변은 완전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으음…… 꿈속인가?
내가 잠들었던 방 안이 아니라 당연히 꿈이겠거니 생각하며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온 건 커다란 들판과 멀리 숲이 보였다.
마계 농장을 연상케 하는 풍경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무우우! 무우우!
「와아! 시현이다, 뾰!」
“아꿍이랑 규리잖아?”
익숙한 아기 야쿰과 요정의 모습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츠츠츠츳!
-츠츠츳!
“어? 너희들은…….”
오랜만에 보는 장군 독개미, 일꾼 독개미였다. 꿈이라 생각했던 공간에 차례로 소환수들이 등장하자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드디어 왔구나.”
“어……?”
전혀 예상 못 한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뭘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지어?”
“……벨리온 님?”
“큭큭. 오랜만이다, 제자야.”
걸쭉한 목소리에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
과거 나에게 검을 가르쳐줬던 벨리온이었다.
“이거…… 꿈인 거죠?”
“꿈은 무슨 꿈이야. 이곳도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다.”
“예?”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네가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그런지. 최근에 조금 변화가 생긴 것 같더라고.”
새로운 능력?
도대체 내가 무슨 능력을…….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누군가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시선을 돌려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아기곰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아기곰이었다.
아기곰에게 천천히 손을 뻗으려던 순간.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쩝.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예? 벨리온 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나중에 보자. 그리고 천족을 조심해. 이번에도 위험했어.”
“그게 무슨……?!”
나는 마지막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면서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