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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3)화 (21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3화

농장의 새로운 사업(2)

금발의 곱상한 외모를 지닌 로커스가 가져온 서류를 확인하며 영지의 중요한 일을 보고해나갔다.

“엘든 마을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개 마을도 식량 사정이 많이 안정화됐어. 농기구 보급도 충분히 되고 있으니까, 따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입에 풀칠하는 데는 지장 없을 거야.”

평소에 보여주는 껄렁거리는 태도와는 상반되게 아주 진지한 모습이었다.

엘든 마을의 라구스와 레빌도 처음에는 로커스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의 실력과 경험을 완전히 인정했다.

나도 카디스 영지에 관한 일은 거의 다 그에게 맡길 정도로 많이 신뢰하는 중이었다.

“며칠 뒤에 상인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은 들었지? 판매하기로 한 딸기와 딸기잼은 오늘 아침에 확인을 끝냈어. 특별히 지시하고 싶은 게 없으면 거래는 평소처럼 진행할게. 더 필요한 거 있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로커스 씨.”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고생은 뭘…….”

“아뇨. 로커스 씨가 여기 온 뒤로 영지 일이 수월해졌거든요. 크록 씨랑 더불어서 진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크흠, 큼.”

로커스는 내 칭찬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작은 마을 세 개만 있는 영지인데. 그것 좀 관리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훈훈한 분위기를 다 부숴 버리는 중얼거림.

나와 로커스는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림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카네프가 몸을 뒤로 젖히고 의자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사장님. 왜 갑자기 초를 치고 그러세요?”

“왜? 내 말이 틀렸어?”

“틀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로커스 씨가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인데, 굳이 그런 이야기는 왜 꺼내시는 거예요?”

“…….”

카네프는 내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심통 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로커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시현. 그런데 갑자기 여기로 오라고 그런 거야? 평소에는 엘든 마을에서 보고를 받았잖아?”

그의 말대로 영지에 대한 보고는 내가 직접 엘든 마을로 가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로커스가 농장에 직접 찾아와 보고를 하게 됐다.

그것도 카네프의 방에서.

“쩝.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요. 사장님이 꼭 여기로 로커스 씨를 불러서 보고를 받으라고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단장님이 갑자기 왜?”

“뭐 때문에 그러겠어요?”

“아…….”

내가 한숨을 쉬며 되묻자, 로커스는 금방 무언가를 짐작하고 힘 빠지는 소리를 냈다. 최근에 카네프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설마 벌꿀 맥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

카네프는 침묵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로커스는 살짝 감정이 격해져서 목소리를 높였다.

“벌꿀 맥주가 완성되면 우리가 설마 그걸 가지고 도망가겠습니까? 왜 이렇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씨이! 너희들이 먼저 상인들에게 벌꿀 맥주를 팔려고 했잖아!”

“저희가 먼저 팔려고 한 게 아닙니다. 상인들이 귀신같이 정보를 수집하고 찾아오는 거지.”

“그게 그거잖아! 정보가 안 새어나가게 미리 막았어야지!”

“아니, 마을 근처에 떡하니 양조장을 만들었는데. 소문이 어떻게 안 납니까? 비밀 군사기지를 만든 것도 아니잖습니까?”

“벌꿀 맥주 양조장은 비밀 군사기지보다 더 중요해!”

“허허…….”

카네프의 밑도 끝도 없는 억지에 로커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상대방이 억지를 부리면 화가 나는 게 정상인데, 너무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니까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내가 부끄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할 말을 잃은 로커스를 대신해서 내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장님, 뭐가 그렇게 불만이신 거예요?”

“…….”

“……?”

“……벌꿀 맥주가 언제 완성되는지 계속 물어봤는데도 안 알려주잖아. 나 몰래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숨긴 게 아니라. 저희도 잘 모르는 거예요. 양조장에서 일하는 너구리 영감님이 혹시 부담감을 가지실까 봐 일부러 맥주에 대해서는 안 물어보거든요.”

너구리 영감도 지하실에서 조금씩 맥주를 만들어봤을 뿐. 이렇게 양조장 규모로 맥주를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실패에 대해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일부러 맥주 생산에 관한 질문은 자제했다. 곧 성과가 나올 것 같다는 소식도 너구리 영감이 먼저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내가 자세히 너구리 영감의 사정을 설명하자, 카네프는 약간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그럼…… 벌꿀 맥주는 상인들에게 안 팔 거야?”

“양조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자연스럽게 맥주도 상인에게 팔게 될 거예요.”

“역시?!”

“아아! 오해하지 마세요. 사장님에게 드릴 벌꿀 맥주는 충분히 확보해 드릴게요. 저도 농장 식구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벌꿀 맥주를 충분히 즐기길 바라거든요.”

너구리 영감이 맥주 양조장 일을 수락했을 때, 여기서 생산되는 벌꿀 맥주가 영지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상인들에게 맥주를 비싸게 파는 것 보다. 주변 사람들과 맛있는 맥주를 즐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야?”

“제가 사장님께 뭣 하러 거짓말하겠어요. 저 돈 욕심 많이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으음.”

벌꿀 맥주에 관한 생각을 진실하게 이야기하자 카네프는 일그러졌던 표정을 풀고 평상시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뭐…….”

그리고 조금 전에 억지 쓴 게 미안했는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은 마치 잘못하고 눈치를 보는 은율이를 보는 듯했다.

얼마나 벌꿀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나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카네프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툭. 툭.

옆에 있던 로커스가 내 팔을 살짝 두드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내게 속삭였다.

“억지 부리는 단장님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한 거야?”

“예? 옆에서 보고 계셨잖아요?”

“봐도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뭐. 그냥 오해가 풀릴 수 있도록 차분하게 설명한 것 말고는 딱히…….”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자 로커스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끄응. 그렇게 쉽게 설득될 사람이었으면 우리가 그렇게 개고생 안 했지.”

“…….”

“네가 검은수리 단원이었어야 했는데…….”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눈빛에서 아련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과거에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둘이 뭘 그렇게 속닥거려?”

“에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장님.”

어떻게든 좋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던 그때.

누군가 방문을 아주 세게 열며 들어왔다.

-벌컥!

“시현 님, 시현 님!”

“안드라스 씨?”

갑자기 방문을 여는 소리에 한 번 놀라고, 방문을 연 사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더 놀랐다.

평소에 예의를 중시하는 안드라스가 이렇게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히다니…….

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안드라스 씨,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바, 방금 엘든 마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혹시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안드라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을 이어나갔다.

“벌꿀 맥주가…… 벌꿀 맥주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쿠당탕!

흥분한 카네프가 벌떡 일어서자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이 방에서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정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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