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5화
농장의 새로운 사업(4)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 상인들을 이끌었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마을의 한구석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먼저 이곳에 와있던 라구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상인분들과 이야기를 끝내셨나 보군요.”
“일단은요.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했거든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맛있는 냄새를 맡고 준비가 끝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이 맞나요?”
“네, 딱 맞춰 오신 것 같습니다. 준비된 자리에 앉으시죠.”
우리는 라구스의 안내를 받아 야외에 준비된 테이블로 향했다. 세 명의 상인은 나를 따라서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음…….”
“…….”
에르긴과 알고트는 아직 새로운 경쟁자를 의식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수린은 차분한 모습으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영주님. 무얼 보여주려고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그냥 맥주만 달랑 맛보여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맥주에 곁들일 적당한 음식도 준비했거든요.”
“음식이요? 어떤 음식인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확인하실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둘러앉은 테이블 주변으로 맛있는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수린은 물론이고, 떨떠름하던 두 상인도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표정에 기대감이 가득해졌다.
요리사 복장의 한 마족이 불쑥 튀어나와 외쳤다.
“영주님! 요리가 막 완성됐습니다. 바로 가져다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요리사가 요리를 가지고 오기 전, 일을 도와주는 마을 주민이 각자의 앞에 개인 식기를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싱글벙글한 표정의 요리사가 커다란 접시에 요리를 담아왔다.
요리사가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자마자, 뜨거운 김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가득해졌다.
동그랗고 납작한 반죽에 치즈와 소스 그리고 갖가지 토핑이 듬뿍 올라간 그것.
“오…….”
“처음 보는 음식이군요?”
“고소한 냄새가 나요.”
준비한 음식은 바로 피자였다.
상인들은 처음 보는 형태의 음식에 관심을 드러냈다. 나쁘지 않은 반응에 나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요리사가 피자를 조각으로 나눠 각자의 개인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아직 중요한 주인공이 안 나왔거든요.”
바로 눈앞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냄새, 쭉쭉 늘어지는 치즈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토핑들까지.
피자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상인들의 표정에 벌써 초조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기다리는 괴로움이 더해지기 전에 딱 타이밍을 맞춰 주인공이 등장했다.
크록이 커다란 맥주잔들을 가지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에르긴과 알고트는 동시에 몸을 움찔 떨었다.
“요, 용혈족?”
“이곳에서 용혈족을 보는군요.”
놀라는 두 상인과는 상반되게, 수린은 크록의 모습을 보고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크록은 테이블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커다란 맥주잔을 각자의 자리에 올려주었다. 잔 안에는 시원한 맥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고마워요, 크록 씨.”
“…….”
크록은 작게 미소를 지어주고 테이블을 떠나갔다. 잠시 용혈족에게 향했던 상인들의 관심이 금방 맥주잔으로 옮겨갔다.
“호오!”
“이게 그 소문의 벌꿀 맥주…….”
“향이…… 향이 정말 좋군요.”
세 사람은 독특한 벌꿀 맥주의 향에 벌써 매료된 듯 보였다.
“이게 영지의 양조장에서 처음 만들어낸 벌꿀 맥주입니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해드리는 것 보다, 직접 맛보는 게 좋겠죠?”
내가 맥주잔을 집어 들자 나머지 사람들도 재빨리 맥주잔을 따라 들었다. 나는 세 사람과 짧게 시선을 맞추며 입가에 맥주잔을 가져갔다.
-꿀꺽. 꿀꺽.
테이블 위에 한동안 맥주 마시는 소리만 흘러나오더니. 이윽고 각양각색의 감탄사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하아! 이건 정말…….”
“캬하∼!”
“어머!”
말을 잇지 못하는 에르긴, 의외로 시원한 감탄을 터뜨리는 알고트,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수린까지.
그들의 반응만 보아도 벌꿀 맥주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그럼!
이 벌꿀 맥주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는 이 기세를 몰아서 접시 위에 피자로 손을 뻗었다. 옆에 포크와 나이프가 따로 있었지만, 과감하게 손으로 피자를 집어 들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려던 상인들이 멈칫했다. 가장 먼저 수린이 맨손으로 피자를 집어 들었고, 뒤이어 눈치를 보던 에르긴과 알고트가 차례로 따라 했다.
식사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 때문인지, 손으로 피자를 집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했다. 알고트는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를 따라 피자를 한입 베어 물자마자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으음?!”
쫄깃한 피자 도우와 쭉쭉 늘어지는 치즈. 매력적인 식감을 즐기는 중간중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스와 각가지 토핑들.
지난번 딸기잼 샌드위치를 만들었을 때처럼, 화덕을 이용해 피자를 만들어서 그런지 훨씬 더 독특한 느낌이 났다.
피자의 약간 기름진 느낌이 남아 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다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피자의 짭조름한 맛이 맥주의 씁쓸한 뒷맛이 깔끔하게 어우러지면서. 입안에는 커다란 만족감과 동시에 강한 여운이 몰려왔다.
평소에 이른 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도. 이 맛은 모든 것이 용서되는 맛이었다.
아니! 이걸 거부하는 게 오히려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잠시 만족감에 취해 있던 나는 뒤늦게 상인들을 살폈다. 그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폭발적이었다.
언제 맨손을 불편해했냐는 듯 피자를 집어 먹으며. 영주인 내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어버리고 맥주 맛에 홀딱 빠져 있었다.
그들은 접시와 맥주잔을 깔끔하게 비우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벌꿀 맥주와 피자 맛이 괜찮았나 보네요”
“크흠…….”
“음, 으음…….”
“…….”
세 사람은 금세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들은 슬쩍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비어 있는 맥주잔과 접시를 매만지는 아쉬운 손길. 그리고 왠지 불쌍하게 느껴지는 애처로운 눈빛까지.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크록 씨에게 벌꿀 맥주 좀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해주세요. 피자도 한 판 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