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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7)화 (21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17화

후계자 선정?(1) 

안드라스는 조금 복잡해 보이는 아티팩트 장치를 준비했다. 거실 소파에서 빈둥대고 있던 카네프가 슬쩍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시현 님께서 바르바토스 가문과 통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복잡한 아티팩트를 꺼내?”

“화상 연결까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임시로 장비를 설치하는 중입니다.”

“그냥 말로 이야기하면 되지. 귀찮게…….”

“아마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장치를 만지작거리던 안드라스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시현 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바르바토스 가문 쪽으로 신호를 보내보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카네프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사장님, 가시게요?”

“어엉. 딱 봐도 뭔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여기 있어서 뭐 하려고. 나는 방에서 낮잠이나 더 자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제가 드린 보고서는 확인하셨어요? 내일까지 마왕성에 보내야 하는 거 아시죠?”

“흐아아암∼! 한숨 자고 확인할게.”

느릿느릿 카네프가 거실에서 떠나가고, 통신 아티팩트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띠디딕! 띠익!

-파아아앗!

그리고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에 비친 남자 마족은 나와 안드라스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바르바토스 가문의 통신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으니, 금방 가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영상에서 남자 마족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르바토스 가주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지막에 보았던 야윈 모습이 아니라, 아주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이군.

“정말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는 나와 안드라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시현…… 아니. 이제는 카디스 영주라고 불러야겠지?

“편하게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우리의 관계가 여전히 끈끈하게 유지 중인 것 같아 기분이 좋구먼. 이참에 자네도 편하게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떤가?

바르바토스 가주는 나에 대한 친밀함을 굉장히 과격하게 드러냈다. 나는 최대한 난처한 표정을 숨기며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하하…… 아직은 가주님이라는 호칭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쩝. 그건 좀 아쉽구먼.

그는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금방 미소를 되찾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현의 영주 취임식 때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는데. 워낙 가문의 중요한 일들이 많이 밀려 있어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대부인께서 참석해 주신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이었습니다.”

-내가 아쉬워서 그러지. 징징대는 가신들만 아니었으면…….

거대 가문을 다스리는 마족과의 대화치고는 굉장히 일상적인 주제가 오고 갔다. 가주의 일이 힘들다고 푸념하거나, 가신들이 계속 결혼 압박을 줘서 귀찮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두 가지 주제 모두, 왠지 묘하게 공감이 가는 것들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자네의 영지에서 만든 맥주가 환상적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벌써 그렇게 소문이 퍼졌습니까? 이제 겨우 생산을 시작했을 뿐인데요.”

-카디스 딸기잼이 워낙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맥주에도 관심이 쏠리는 것 같아. 나는 술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자네가 만들어낸 맥주라면 한번 맛보고 싶을 정도니까.

“다음에 양조장에서 맥주가 완성되면 꼭 가주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커흠. 그런 의도로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닌데…….

가주는 괜히 헛기침하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곧바로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양조장을 짓는 데도 바르바토스 기술자들이 큰 역할을 해줬거든요.”

바르바토스에서 보내준 건축 기술자들은 양조장뿐만 아니라, 마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시설물 건축에 중심 역할을 해줬다. 이 정도의 실력과 경험을 가진 기술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게 고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르바토스 측에서는 이런 기술자들을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지원해 줬다. 심지어 지금도 엘든 마을에 상주하며 영지의 일을 돕고 있었다.

“아마 보내주신 기술자분들이 없었다면, 카디스 영지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가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리겠습니다.”

-하하!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자네는 나의 목숨을 살려주지 않았나?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흐음. 그런가?

내가 거듭 고마움을 표현하자, 바르바토스 가주는 턱을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빚진 입장에서 조금 염치없긴 하지만,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네,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역시 시현은 답답한 다른 귀족들이랑 달리, 뭐든 시원시원해서 믿음이 간단 말이야.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 깨어났을 때는 가문의 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가신들이 다시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네.

아…… 나도 그것 때문에 험한 꼴을 볼 뻔했지…….

가주가 건강을 되찾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후계자 문제까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낳아 후계를 잇는 게 깔끔하다고 하는데. 나는 딱히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후계 때문에 억지로 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짙게 배어들었다. 다이애나 대부인이 말했던 것처럼, 아직도 사별한 부인을 잊지 못한 것 같았다.

-언제까지 후계자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문에서 적당한 인물을 후계자로 선정하기로 마음먹었다네.

“그렇군요.”

가주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골치 아프단 말이지. 가신들은 모두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내 마음대로 정하자니 확신이 들지 않아서 고민이라네.

“당연히 그렇겠죠.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을 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대신 정해주는 건 어떤가?

“……네?”

-왠지 자네에게 맡기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

내가 잘못 들었나?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옆을 바라봤다. 대화를 듣고 있던 안드라스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가주님. 제가 헷갈려서 그러는데. 방금 저한테 후계자를 정해달라고 하신 건가요?”

-그렇다네. 자네가 직접 정해준다면 나도 확신이 설 것 같아.

뭐, 뭐지? 아직 건강을 다 회복하신 게 아닌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바르바토스 가주는 내 표정을 읽고 방긋 미소 지었다.

-내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라네. 정신도 말짱하고, 아주 진지하게 하는 부탁이라네.

“죄, 죄송합니다.”

-아닐세. 확실히 평범한 부탁은 아니니, 충분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하지.

너무나 당황스러워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그때. 작은 발걸음 소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와아! 아빠, TV야. TV!”

어느새 옆으로 온 은율이가 통신 장치를 보고 소리쳤다. 할머니 집에서 본 TV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빠, 저 사람은 누구야?”

“은, 은율아. 잠시만. 아빠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 나중에 이야기해 주면 안 될까?”

내가 은율이를 타일러 돌려보내기 전에, 바르바토스 가주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

-오오. 저 아이가 자네의 딸인가?

“네, 맞습니다. 은율아, 가주님께 인사드리자.”

은율이는 잠시 허공의 화면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한 손을 흔들며 짧게 인사를 남겼다.

“안녕, 가주 아저씨!”

“그게 아니라. 가주님이라고 불러야지.”

바르바토스 가주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괜찮다네. 오히려 나는 가주 아저씨 쪽이 훨씬 마음에 들거든.

은율이는 그의 웃음을 듣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는지, 내 품에 얼굴을 폭 묻어버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모두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바르바토스 가주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시간이군. 조금 전의 부탁은 승낙한 거로 알고 있겠네.

“네?”

-준비는 우리 쪽에서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조만간 연락이 갈 거야. 잘 좀 부탁하겠네.

“가, 가주님, 잠시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또 연락하지. 그럼…….

바르바토스 가주는 자신의 할 말만 남기고 급히 통신을 끊어버렸다. 나는 화면이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며 입만 우물거렸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은율이는 내 품에서 얼굴을 슬쩍 들어 올렸다.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가주 아저씨 사라졌어?”

“으응…… 사라졌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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