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24화
슈나르페의 문제아(1)
“푸하하하핫!”
카네프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까지 격하게 웃는 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우, 웃지 마세요, 사장님!”
나의 민망함이 담긴 외침에도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서 숨을 헐떡거렸다.
“끅끅…… 그러니까. 저 녀석이 슈나르페 가주인 줄 모르고 저장고 수리일을 맡겼다는 거지?”
“……네.”
“잘했어. 그러게 누가 연락도 안 하고 마음대로 찾아오래? 가주 대접을 받고 싶었으면 자기가 먼저 똑바로 했어야지. 자업자득인 거지 뭐. 큭큭!”
카네프의 거침없는 막말에도 슈나르페 가주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도 간접적으로 언급이 나왔었지만,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가 안목이 부족해 가주님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농장에 방문하시자마자 저장고 수리 같은 일을…….”
슈나르페 가주는 정말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카네프 님의 말이 맞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은 제 잘못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쉽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농장에 찾아온 손님, 그것도 한 가문의 가주를 다짜고짜 심부름시켜 버렸으니까.
“그리고 저장고의 문제를 살펴보니, 제 아들이 회로 설계에 기초적인 실수를 저질렀더군요. 아버지인 제가 당연히 뒷수습을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슈나르페 가주가 저장고의 문제를 기초적인 실수라 언급하자, 옆에 있던 안드라스는 몸을 크게 움찔거리더니 불안한 듯 눈치를 살폈다.
“가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슈나르페 가문의 ‘에스베른 하란 슈나르페’라고 합니다.”
“저는 이계에서 온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시현 레프미어 카디스’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나는 슈나르페 가주와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모습을 살피는데.
안드라스 씨는 정말 아버지를 많이 닮으셨구나…….
보면 볼수록 안드라스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일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둘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말투, 체격, 분위기, 옷차림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그나마 뿔의 모양이나, 목소리, 얼굴에 남아 있는 잔주름 정도가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날 뿐이었다.
슈나르펙 가주와 인사를 끝낼 때쯤, 옆으로 안드라스가 다가와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저랑 아버지를 헷갈리시다니. 시현 님 조금 실망했습니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솔직히 어떻게 구분하라는 거에요? 가주님의 뒷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안드라스 씨라고 생각한다고요!”
“…….”
“알았어요. 다음에는 꼭 실수 안 하도록 할게요.”
다음에는 꼭 구분하겠다고 다짐하며 서운한 표정의 안드라스를 달랬다.
그렇게 분위기가 정리되고.
삐딱하게 앉아 있던 카네프가 슈나르페 가주, 에스베른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정말로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거야?”
“…….”
“연락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오는 건 네 성격상 잘 안 하는 짓이잖아. 거기다 가주라는 놈이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뭐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카네프는 번거로운 안부 인사 따위는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을 캐물었다. 에스베른도 그의 대화 방식에 익숙하게 반응했다.
“카네프 님의 말대로 평소였다면 미리 연락을 드렸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서 미리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정?”
“네. 가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저의 힘만으로는 수습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카네프뿐만 아니라 안드라스의 얼굴도 살짝 굳어졌다.
슈나르페 가문은 마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다.
내가 귀족 사회에 대해 모르는 게 많긴 하지만, 슈나르페 가문이 가진 위상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영향력만으로 따진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 그런 곳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슈나르페 가주가 해결하지 못할 일이라고? 내가 아는 슈나르페 가문이 마계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을 텐데?”
카네프는 내가 가진 의문을 그대로 에스베른에게 물었다. 그는 약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카네프 님의 말대로 마계에서 슈나르페 가문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
“마계에서는…… 말이죠.”
“……!”
의미심장한 대답에 카네프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삐딱했던 자세도 살짝 중심을 되찾았다.
“자세히 설명해 봐.”
에스베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혹시 제 둘째 아이 기억하십니까?”
“둘째?”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네프는 금방 뭔가를 기억해냈다.
“아, 기억났다! 너 뜬금없이 늦둥이 가졌었지?”
“…….”
“너랑 안드라스 둘이 어찌나 아기 자랑을 하던지. 그때 팔불출 짓 보기 싫어서 한동안 너희들 피해 다녔잖아.”
“크흠…….”
에스베른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카네프가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곧바로 말을 이었다.
“흠흠. 아무튼, 그 둘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가 왜? 사고라도 쳤어?”
“사고를 쳤다기보다는 갑자기 행방불명됐습니다.”
“……?”
“몇 달 전쯤에 분명 가문의 저택에 있었는데. 최근에 사라진 걸 확인했습니다.”
으응?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둘째 자제분이 가문의 저택에 있었다면, 어떻게 사라진 걸 몇 달 만에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아무리 늦어도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 걸 알 수 있지 않나요?”
에스베른은 담담하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저희 가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구성원들 모두가 뭔가 연구하고, 제작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특히 저와 제 자식들은 저택에 작업실이 따로 존재하는데. 뭔가 영감이 떠오르면 작업실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밖으로 안 나온다고요? 그럼 식사는요?”
“작업실 안에 필요한 식량을 따로 쌓아놓습니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는 식사마저도 방해가 될 때가 많으니까요.”
“허…….”
그렇게 안드라스가 작업실 타령을 하더니.
이게 안드라스만 그런 게 아니라 슈나르페 가문의 특징이었구나?
“이번에도 둘째의 작업이 조금 길어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작업실을 확인해 보니 아예 가문의 저택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것도 꽤 오래전에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안드라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몰래 저택을 빠져나간 게 아닙니까?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그랬다면 내가 여기에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둘째가 저택을 탈출하는 것 정도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니까.”
그 둘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만 따져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완전히 똑바로 자세를 잡은 카네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뭔가 단서를 찾은 거지? 네 녀석이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대뜸 도와달라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 아냐?”
에스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직접 둘째의 작업실을 조사했습니다. 남아 있는 자료와 장치들을 살펴봤더니, 둘째는 차원 마법에 관해서 연구했던 모양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에게도 차원 마법과 관련해서 조언을 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꽤 높은 수준의 질문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안드라스의 말대로 둘째는 꽤 높은 수준의 연구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남아 있는 연구 자료를 보고 당황했을 정도입니다.”
“흐음…… 그럼 둘째라는 녀석이 차원 마법을 연구해서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말이야?”
“예. 그리고 남겨진 자료들을 종합해봤을 때, 둘째는…….”
에스베른은 말을 길게 끌면서 내 쪽을 바라봤다.
“카디스 영주님.”
“……?”
“아무래도 둘째는 카디스 영주님이 오신 세계로 향한 것 같습니다.”
“……예에??”
나는 깜짝 놀라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카네프는 찌푸린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고, 안드라스는 동생이 걱정되는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자, 잠깐만요. 차원을 넘는 문은 천족만 사용 가능한 게 아니었나요?”
내 질문에 안드라스가 대답했다.
“천족만큼 안정적으로 차원문을 운영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차원을 넘는 일은 마족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복잡한 이론과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지만요.”
“그럼 정말로 안드라스 씨의 동생분이 지구로 넘어갔다는 말이에요?”
“솔직히 저도 믿을 수 없습니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들 말고도 도착하는 곳의 좌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 아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좌표는 오히려 손쉽게 구한 것 같더구나.”
에스베른은 안드라스와 비슷하게 널찍한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어……? 저건 안드라스 씨가 제게 줬던 아티팩트잖아요?”
“이걸 왜 아버님이…….”
“둘째의 작업실에서 발견했다.”
그는 꺼낸 아티팩트의 외부 덮개를 뜯어냈다. 아티팩트 내부의 복잡한 마력회로가 드러났다. 그리고 손으로 내부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당연히 나와 카네프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안드라스는 집중해서 구석의 회로를 살폈다.
잠시 후.
한참 동안 회로를 살피던 안드라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 이런 걸…….”
“나도 깜짝 놀랐다. 둘째가 이 정도로 교묘한 수법을 사용할 줄이야…….”
“안드라스 씨,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내 물음에 안드라스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시현 님의 아티팩트를 준비할 때. 동생에게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에 저 몰래 아티팩트에 마법 회로를 추가한 것 같습니다.”
“설마?”
“차원의 좌표를 특정하는 마법입니다. 아마도 동생은 이걸 이용해서 지구라는 곳의 좌표를 얻어낸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와 에스베른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 둘째의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부모와 형제를 속이는 주도면밀함에 감탄하던 도중, 나는 뭔가를 생각해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잠깐만요. 그 둘째라는 분이 정말로 지구에 도착했다면, 천족들이 말하는 차원의 균형을 어지럽히는 행동 아닌가요? 그 사람들은 이런 거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잖아요.”
“맞아. 천족들이 알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겠지. 그리고 어떻게든 잡아서 규칙대로 처벌하려 할걸?”
카네프의 무신경한 말에 안드라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나마 에스베른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제 발레리안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천족 쪽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지구라는 곳에 도착했다면, 지금까지는 잘 숨어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간 건 아닌가 보네?”
“괴짜 같은 구석이 있긴 해도. 재능과 실력만큼은 제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아이니까요.”
“그래서 그 집 나간 망아지를 어떻게 잡아 올 생각인데?”
에스베른과 안드라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했다.
“카디스 영주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시현 님!”
아…….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