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29화
마계로 돌아가는 길(1)
겉모습만 제외하면 정말 이 집의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친근한 모습에 문득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런데 릴리아는 어떻게 여기에 머물게 된 건가요?”
내 질문에 릴리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솔직히 운이 정말 좋았어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달라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뿔이 없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돌아다니고. 길은 복잡한데 말이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그녀는 그때의 막막한 기분이 되살아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막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아티팩트들이 많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곳에서는 어떤 아티팩트를 사용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어머. 그렇게 우리 아저씨를 만난 거구나?”
“네! 아저씨가 가게에 들어온 저를 봤을 때, 엄청나게 당황하시면서도 계속 저를 도와주려고 하셨어요. 스마트폰 번역 기능으로 말을 걸다가, 안되니까 그림으로 설명을 해주셨어요.”
나는 살짝 의외라는 표정으로 아티팩트 가게 주인을 바라봤다. 엄청 무신경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었나보다.
“크흠…….”
가게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 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까. 아저씨가 이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아주머니도 처음에 저를 보고 많이 놀라셨는데. 제가 배고프다는 걸 알고 금방 식사를 준비해 주셨어요.”
“호호. 아저씨가 갑자기 외국인을 데리고 와서 깜짝 놀랐단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잔뜩 먹은 다음. 잠시 거실에서 쉰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지 뭐에요? 어두워질 때쯤 일어나서 저녁도 먹게 되고. 아주머니가 2층에 방을 내주셔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 눌러앉게 돼버렸어요.”
릴리아는 민망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가 천족에게 발각되지 않은 건 둘째치고,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선한 마음씨의 부부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안드라스도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눈앞의 부부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 동생을 보살펴주셔서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동생이 폐를 끼친 일은 어떻게든 갚도록 하겠습니다.”
“폐를 끼치다니요. 자식들이 취직하고 나간 뒤에 집이 너무 쓸쓸했는데. 릴리아가 지내면서 오랜만에 떠들썩해져서 정말 좋았거든요.”
“헤헤! 저도 아주머니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릴리아는 곁에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자.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 아저씨도 릴리아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가게에서 아티팩트 수리하는 일을 매일 도와줬거든요.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릴리아의 실력 좋다고 어찌나 칭찬하던지…….”
“크흠! 거, 왜 쓸데없는 얘기를!”
조용히 있던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며 아주머니의 말을 막았다. 괜히 나와 안드라스의 눈치를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안드라스의 동생이 고생을 했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부부에게 잔뜩 이쁨을 받으며 지낸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휴대폰으로 어머니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담긴 문자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나는 금방 아무 일도 없다는 답장을 보낸 뒤, 안드라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드라스 씨.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안드라스보다 릴리아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벌써 돌아가는 거예요?”
“저랑 안드라스 씨 말고 같이 나온 일행이 더 있어서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저녁 시간이고 하니. 슬슬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으음…… 그럼 어쩔 수 없죠. 오늘 처음 만난 시현 오라버니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다행히 안드라스가 나를 대신해서 단호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릴리아. 너도 우리와 함께 가야 해.”
“에엑! 나는 왜?”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얼른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해.”
“그,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지금처럼 조용히 지내면 아무 문제 없잖아? 나 아직 마스터 랭크도 못 찍었고, 오늘은 아주머니랑 같이 드라마도 봐야 한단 말이야.”
안드라스는 평소에 보이던 모습과 다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네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줄 아는 거야?”
“……!”
“아버님, 어머님은 물론이고 가문의 많은 사람이 너를 찾기 위해서 움직였어. 그리고 발레리안과 여기 계신 시현 님까지!”
“…….”
“너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이 쓸데없이 고생하는 거야.”
강한 꾸지람을 들은 릴리아는 꽤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안드라스의 강한 감정 표출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릴리아는 금방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와 아저씨 모두 당황해서 그녀를 살폈다.
“미, 미안해. 오라버니. 모두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 줄 몰랐어…….”
“지금 네가 저지른 일은 나와 아버님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자칫 잘못했다가는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려. 그러니까 이제 철없는 행동은 그만둬!”
“으응…….”
아주머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릴리아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릴리아 오빠분. 이 아이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줄 수 없을까요? 이렇게 갑자기 헤어지려니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안 됩니다. 더는 두 분에게 폐를 끼칠 수는…….”
안드라스가 단호하게 부탁을 거절하려고 하자. 처음으로 아저씨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네. 그래도 지금까지 지내온 정이 있는데. 하루만이라도 이 아이에게 시간을 더 줄 수 없겠는가?”
“…….”
“부탁하겠네.”
아저씨도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단호하던 안드라스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나도 슬쩍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시현 님…….”
“어차피 릴리아를 지금 당장 돌려보낼 수 없잖아요.”
아직 릴리아를 마계로 돌려보낼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그녀를 돌려보낼 준비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어차피 지금 데려가 봐야 우리 집에서 재워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이곳에서 지내는 게 더 좋아 보였다.
안드라스도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릴리아와 부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염치없지만…… 조금만 더 동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릴리아는 하루 더 이곳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이야기를 끝마친 우리는 릴리아와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빠져나왔다. 아주머니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다른 일행 핑계를 대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릴리아는 계속 눈물을 글썽이며 나와 안드라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나는 작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안드라스는 아까 동생에게 화를 냈던 게 신경 쓰이는지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골목길을 따라 주택가를 빠져나오자마자 안드라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죄송합니다, 시현 님.”
“뭐가 죄송해요. 저는 괜찮으니까 안드라스 씨도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동생도 무사히 지내고 있었느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죠.”
내가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자 안드라스도 힘없이 따라 웃었다. 나는 분위기를 약간 바꾸려고 새로운 대화 주제를 꺼냈다.
“근데 정말로 릴리아가 동생 맞는 거죠?”
“물론입니다.”
“안드라스 씨도 그렇고 저번에 뵀던 슈나르페 가주님과도 전혀 다른 느낌인데요?”
“흠흠. 릴리아는 아버님보다 어머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머니의 영향이 커도 그렇지. 남매가 저렇게 다른 느낌일 수가 있나? 문득 안드라스와 릴리아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나중에 리안 씨한테도 연락드려야겠어요.”
“이번에도 그 친구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군요. 시현 님도 감사드립니다.”
그때 내 품에 안겨있던 아꿍이가 불쑥 울음소리를 냈다.
-무우우! 무우우!
“그래, 그래! 아꿍이도 대단했어. 오늘은 집에 가면 아꿍이가 원하는 대로 맛있는 거 챙겨줄게.”
맛있는 걸 챙겨주겠다는 말에 아꿍이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하하하!”
“하하하!”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