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0화
마계로 돌아가는 길(2)
차를 타고 한 시간.
멀리서 연구소 건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기석 본부장과 함께 방문했던 ‘마력핵에너지 연구소’였다.
미리 이야기해 둔 덕분에 입구에서 별다른 신원확인 절차 없이 연구소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 연구소 주차장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발레리안이 다가와 우리를 맞이했다.
“일찍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뒷좌석에서 내린 릴리아는 발레리안을 발견하자마자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와아! 리안 오라버니!”
“오랜만이야. 릴리아.”
그녀는 스스럼없이 발레리안과 인사를 나눴다. 아마도 안드라스를 통해 따로 친분을 쌓은 모양이었다.
“이 말괄량이를 찾아다니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시현 씨.”
“운이 아주 좋았죠. 릴리아를 돌아주신 분들도 정말 좋은 분들이었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는 거로 하죠. 연구소 소장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장님이 저희를 왜……?”
“하하. 직접 가보시면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우리는 발레리안과 함께 주차장을 벗어나 연구소 입구로 향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구소 입구에 낯익은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현 씨.”
“안녕하세요. 그…….”
“허영섭 연구소장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때 이기석 본부장님이랑 뵀었는데…….”
“하하! 괜찮습니다. 여기에 방문하신 지 시간이 꽤 흘렀지요.”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허영섭 소장은 손을 내저으며 소탈하게 웃었다. 간단히 인사를 끝낸 연구소장의 시선이 안드라스와 릴리아 쪽으로 향했다.
“그럼 이쪽에 계신분들은…….”
“으음…….”
두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해 내가 망설이자, 발레리안이 슬쩍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연구소장님에게는 이미 사정을 다 설명해놓았습니다.”
“아! 그런가요?”
“이기석 본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빠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곳의 연구소장님의 도움이 꼭 필요했습니다.”
마계로 돌아가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장비와 특별한 재료가 필요했다. 그 준비물들을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이 나라에 많지 않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마력핵에너지 연구소’의 허영섭 소장이라고 합니다.”
“슈나르페 가문의 안드라스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 ‘릴리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저, 정말 슈나르페 가문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오!”
허영섭 소장의 과장된 반응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발레리안에게 물었다.
“소장님이 왜 저러시죠?”
“후후. 슈나르페 가문의 일원을 만났으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지요.”
“……?”
발레리안은 작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법적 지식, 특히 아티팩트 제작에 관한 내용은 슈나르페 가문이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계에서도 비교할 만한 곳이 없는 실정인데, 지구의 기준으로 따지면 정말 엄청난 격차가 있는 거죠.”
“아…….”
“실제로 슈나르페 가문에서 만든 간단한 아티팩트도 지구에서는 연구가치가 높을 정도니까요. 아티팩트 연구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반응일 겁니다.”
그제야 나는 눈을 반짝이고 있는 연구소장의 모습을 이해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최고 실력자를 만난다는 건 당연히 설레는 일이었다.
허영섭 연구소장은 아주 극진한 태도로 우리를 직접 안내했다. 그리고 안내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안드라스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허영섭 소장을 따라 연구소 건물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커다란 공간 안에는 여러 장비와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입니다. 이기석 본부장에게 전달받은 장비와 재료를 최대한으로 구해놨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감사합니다, 소장님.”
“고마워요.”
안드라스와 릴리아는 곧바로 준비한 것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장은 혹시 부족한 게 있을까 봐, 굉장히 초조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조금 부족한 장비가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의 충분하다는 말에 연구소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부러 다른 연구원들은 이 작업실 근처에 올 수 없게 해뒀습니다. 마음껏 작업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럼 저희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호, 혹시 제가 작업하시는 모습을 멀리서라도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불편하시다면 바로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연구소장의 부탁에 안드라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혹시 궁금한 부분이 있으시면 작업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설명도 해드리겠습니다.”
“헉?! 그, 그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저희가 소장님에게 신세를 지는 쪽입니다. 부담 없이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안드라스의 말에 연구소장은 크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을 보니 정말로 감동한 모양이었다.
장비와 재료를 확인한 안드라스는 릴리아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연구소장도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살피면서, 가끔 간단한 작업을 직접 돕기도 했다.
이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나와 발레리안은 근처에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리안 씨는 여기 계속 있으셔도 괜찮아요? 평소에 굉장히 바쁘시잖아요?”
“일이 조금 쌓여 있긴 하지만, 지금은 릴리아를 돌려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 있어야 곧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고요.”
발레리안은 친구로서 안드라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에 훈훈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다시 한창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장난스러운 모습만 보여왔던 릴리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약간의 놀라운 감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런데 릴리아는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달라 보이네요.”
“하하! 약간 그런 면이 없지 않죠. 평소에는 그냥 장난기와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 같은데. 저렇게 작업에 몰두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니까요.”
평소에는 전혀 닮은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작업에 집중한 모습과 진지한 분위기는 안드라스와 굉장히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