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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3)화 (23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3화

마계로 돌아가는 길(5)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고민은 계속됐지만, 딱히 그럴듯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통화로 목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제한적이기도 했다.

-아빠……?

대화가 끊긴 탓에 은율이가 살짝 불안해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목소리와 분위기로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달은듯했다.

더는 은율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없었다.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은율아. 지금 아빠가 어떤 곳에 갇혀서 길을 잃었거든?”

-아빠가 길을 잃었어?

은율이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어린 딸에게 길을 잃었다고 말하는 건 꽤 민망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은율이가 아빠를 도와줄 방법이 있을까?”

-할머니한테 말할까? 아빠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아, 아니! 할머니한테 말하지 말고. 은율이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직접 말하고서도 어이가 없다고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은율이는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다.

-으음…… 할머니는 혹시 길을 잃어버리면 절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서 경찰 아저씨를 부르라고 했어.

은율이는 길을 잃었을 때 해야 할 아주 정석적인 방법을 내게 말했다.

역시 내 딸!

아주 그냥 똑 부러지네!

잠시 흐뭇해하던 나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되돌렸다.

“은율아, 여기는 경찰 아저씨가 없는 곳이라서.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른 방법? 으음…… 아! 동화책에서 봤는데. 오는 길에 작은 돌멩이나 과자를 조금씩 떨어뜨려 놓으면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어.

혹시 헨젤과 그레텔……?

은율이는 동화책에서 본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우리에겐 쓸모없는 해결법이었다. 아니, 애초에 해결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하아…… 역시 이건 무리였나?

은율이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열심히 대답하고 있지만, 오히려 답답함만 계속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은율이를 더 재촉하거나 다그칠 수 없었다. 지금 부탁하는 게 무리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더는 소득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그때. 은율이는 또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럼 내가 노래 불러줄까?

“노래……?”

-응. 그럼 아빠가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농장에서는 내가 노래를 부르면 아빠랑 리아네 언니, 사장님, 엘린 오빠, 선생님도 모두 찾아오잖아.

뮤레인의 가르침을 받은 은율이가 가끔 노래연습을 할 때면, 농장 식구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노랫소리를 따라 모여들었다.

모두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찾아가기 일쑤였고, 항상 방에 나오기 귀찮아하는 카네프도 은율이의 노래라면 부지런히 찾아와 감상했다.

은율이의 노래가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까?

그런 의문이 막 떠오르던 그때, 휴대폰을 통해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이 노래는?!”

“와아…….”

“…….”

안드라스는 금방 은율이의 노래를 알아들었고. 처음 노래를 듣는 릴리아와 벨리온은 감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위에 있던 마수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얌전히 노래에 집중했다.

뮤레인이 인정한 재능, 그리고 꾸준한 노래 연습 덕분에 은율이의 노래 실력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청아한 음색과 안정적인 음정.

목소리 하나만으로 귀를 꽉 채우는 듯한 만족감.

은율이의 노래는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시, 시현 님?! 저기 좀 보십시오.”

모두가 노래에 흠뻑 빠져 있던 와중에 뭔가를 발견한 안드라스가 놀라 소리쳤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가 손가락질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이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우우웅…….

공간을 울리는 작은 파장이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그 크기가 커졌다. 그 모습은 마치 균열이 열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노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빠?

뭔가 이상했는지 은율이가 노래를 멈추고 나를 불렀다.

그러자 하늘을 울리던 파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확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벨리온의 말이 사실이었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이 세상은 은율이의 영향을 받아 반응하고 있었다.

드디어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 흥분한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은율아, 정말 노래 잘 들었어. 여기 있는 아빠 스승님, 안드라스 씨랑 동생도 너무 노래가 좋았데.”

-정말? 헤헤!

은율이는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귀여운 웃음소리를 냈다.

“은율아. 괜찮다면 한 번만 더 노래 불러줄 수 있을까?”

-한번더? 으으. 어쩌지? 아까 할머니한테도 노래 불러줬는데…… 노래 선생님이 너무 자주 노래 부르지 말라고 그랬거든.

은율이는 뮤레인이 말해준 규칙을 떠올리며 곤란해 했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설득했다.

“딱 한 곡만 더 불러줘. 여기 계신 분들은 은율이의 노래 처음 듣는데, 너무나도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꼭 다시 듣고 싶데.”

-알았어. 아빠가 부탁하니까 한 번 더 부를게. 대신 노래 선생님한테는 말하면 안 돼?

기특하게도 은율이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한 번 더 노래 부를 준비했다.

“은율아!”

-응?

“혹시 가능하면 노래 부를 때, 농장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불러줄래?”

-농장?

“그래. 리아네 씨, 엘린, 사장님이 계신 농장. 빨리 농장에 있는 식구들 보고 싶어서.”

-알았어.

조금 난해한 부탁에도 은율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곧바로 휴대폰을 통해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농장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러 달라 부탁한 것 때문일까?

은율이의 노래는 아까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을 줬다.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신기하게도 농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우우우웅!

다시 한번 공간을 울리는 파장이 생겨났다.

처음 생겨났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울림을 유지하더니. 천천히 한 점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후.

은율이의 노래가 끝나고. 동시에 파장이 모여들던 곳에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차, 차원문입니다!”

“진짜로 차원문이 열렸어요!”

안드라스와 릴리아는 차원문을 보며 흥분해 소리쳤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나는 금방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휴대폰을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댔다.

“잘했어 은율아!”

-헤헤. 나 잘했어?

“응! 정말 잘했어. 역시 내 딸이 최고야!”

팔불출 같은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은율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랑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여기 일 후딱 끝내고 금방 돌아갈게. 알았지?”

-알았어. 아빠, 빨리 와야 해?

빨리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은율이와 통화를 종료했다.

우리는 빠르게 차원문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차원문을 살피며 안드라스에게 물었다.

“이 차원문이 꼭 마계로 향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죠?”

“지금으로써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으음. 조금 불안하네요.”

“그래도 저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눈앞의 차원문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모르고. 다시 차원문을 열 수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으니까요.”

은율이의 노래로 연 차원문이라고 해서 불안함을 지울 순 없었다. 하지만 안드라스의 말대로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문으로 향하기 전, 한걸음 뒤에 물러나 있던 벨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도 저희랑 같이 가세요.”

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답했다.

“됐어. 나는 신경 안 써도 돼.”

“…….”

“나도 같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이렇게 존재하는 것도 비정상적인 일이니까. 아마도 너희들처럼 간단히 나갈 수는 없을 거야.”

아쉬운 마음에 내가 머뭇거리자 벨리온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서 네 활약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다음에는 꼭 함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요.”

“그래, 그거면 됐다.”

안드라스, 릴리아와 함께 작별인사를 남겼다.

“벨리온 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었어요.”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우리는 차원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벨리온은 마수들과 함께 우리를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아! 다음에 올 때는 벌꿀 맥주? 그것도 같이 가지고 와. 여기서 지켜보니까 엄청 맛있어 보이더라.”

“네! 그렇게 할게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완전히 차원문을 넘어섰다. 뒤쪽에서 들리던 벨리온의 목소리가 아득해지더니,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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