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4화
비오는 날의 대결(1)
딸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아버지인 에스베른이 곧바로 농장으로 찾아왔다.
“아버지…….”
이제 막 욕실에서 씻고 나온 릴리아는 도착한 에스베른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에스베른은 릴리아에게 성큼 다가가 물었다.
“릴리아,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응. 괜찮아.”
조금은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따스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에스베른은 한참 동안 딸의 얼굴을 살핀 뒤에야 걱정을 한시름 놓는 듯 보였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딸을 양팔로 부드럽게 안아주며 등을 쓸어줬다.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다.”
“미안해, 다음에는 절대 이렇게 위험한 짓 안 할게.”
“그래. 그래야지.”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긴 릴리아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훈훈한 아버지와 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저쪽 세계에 있을 아머니와 은율이가 떠올라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흐뭇한 미소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뭐야?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거야?”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의 카네프가 불쑥 끼어들었다.
“일이 잘 풀리긴 했다만. 시현, 안드라스, 발레리안까지 꽤 고생시켰잖아. 빚은 나중에 갚는다고 쳐도, 민폐를 끼친 저 말괄량이를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는 거야? 슈나르페 가문의 규칙이 언제 이렇게 물렁해진 거야?”
가시가 담긴 말에 안드라스와 릴리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사장님, 갑자기 왜 또 뿔이 나셨어요? 남의 집안일에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되잖아요.”
“너는 짜증도 안 나? 남의 집안일 때문에 고생한 거잖아.”
“아니 뭐…… 고생까지는……. 그리고 안드라스 씨의 동생이면 남의 일도 아니고…….”
“아닙니다. 카네프 님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에스베른은 품 안의 릴리아를 놓아주며, 카네프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제 딸 때문에 많은 분에게 민폐를 끼쳤습니다. 이 빚은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갚아나갈 겁니다. 그리고 말썽을 일으킨 잘못을 묻는 것에 관해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이미 제 아내가 철저하게 준비해놓았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예절 수업부터,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서 마음가짐과 수양을 쌓는 데 도움을 줄 교사도 준비해뒀습니다. 최소 몇 달 동안은 꼼짝없이 잡혀 있어야 할 겁니다.”
“아, 아버지?”
“이 기회에 적당한 약혼 상대를 찾아 짝지어주자는 의견도 가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에스베른의 입에서 준비 중인 것들이 줄줄 흘러나오자. 릴리아의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다. 공포에 질린 그녀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 나 집에 안 갈 거야. 시현 오라버니랑 같이 있을래. 시현 오라버니, 여기 있어도 되죠?”
릴리아는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부탁했다.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릴리아. 잘못했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죠.”
“으읏!”
“가주님을 더 곤란하게 하지 말고, 순순히 가문으로 되돌아가세요.”
한 번의 잘못으로 졸지에 약혼까지 하게 된 건 너무하다는 생각했지만, 가문에서 결정한 일을 외부인이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릴리아를 타일렀다.
그제야 카네프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리아네와 엘프리드는 릴리아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릴리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하지만 안드라스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녀는 자신의 편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슈나르페 가문의 말괄량이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평소의 농장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가끔 가문의 저택에 꼼짝없이 잡혀 있는 릴리아가 지루하다고 연락이 온다는 것.
그리고.
지구 쪽에서 나에 대한 천족의 감시가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릴리아를 마계로 데려간 뒤, 한동안 처음 보는 마족들이 수시로 나를 찾아 발레리안의 사무실로 왔다.
감시관인 아슈미르는 중립적인 태도로 나를 대하는 반면, 스스로를 ‘집행관’이라고 밝힌 천족들은 아주 강압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다.
천족의 태도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발레리안의 충고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했다.
가끔 이상한 세계에서 만난 벨리온을 떠올랐다. 그곳에 대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바쁜 일상에 떠밀려 금방 잊어버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