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7화
비 오는 날의 대결(4)
세 번째로 준비한 게임은.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보드게임 ‘부X마불’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출시되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지금은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해본 추억의 보드게임이 됐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환경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나에게는 종이 재질의 보드게임이 더욱 익숙했다.
워낙 간단한 규칙이라 배우기 쉬운 데다가. 여럿이서 간단히 즐기자면 또 이만한 게임이 없었다.
참가자들에게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한 뒤, 각자의 게임 말을 정했다.
빨간색 말은 카네프, 엘프리드 팀.
파란색 말은 리아네, 안드라스 팀.
노란색 말은 나와 은율이 팀.
팀마다 시작에 필요한 돈을 나눠 갖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카네프, 엘프리드 팀이 주사위를 던졌다.
-도르르륵.
-도르르륵.
두 개의 주사위에서 나온 숫자의 합은 8.
빨간색 말은 이집트 카이로 칸에 도착했다.
“선배, 우리가 이 땅에 제일 먼저 도착했으니까. 살 수 있는 거죠?”
“네.”
엘프리드가 카네프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할까요, 카네프 님?”
“일단 살 수 있으면 다 사!”
“알겠습니다. 저희 여기 살게요!”
엘프리드, 카네프 팀은 곧바로 이집트 카이로의 땅을 사들였다.
이 팀의 플레이 방식은 그 뒤로도 똑같았다.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주인이 없는 땅은 무조건 구매했다. 건물도 최고로 비싸게 팍팍 지었다.
물론 그에 비례해서 가지고 있는 돈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반면에 리아네, 안드라스 팀은…….
“안드라스 님,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흐음…… 일단 땅 구매 비용과 건물 건설 비용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통행료의 효율을 생각해 보면…….”
땅과 건물 구매의 효율을 조심스럽게 계산하며 플레이를 이어나갔다.
카네프, 엘프리드 팀과 비교하면 땅의 개수는 적지만, 가지고 있는 현금은 훨씬 여유가 있는 상황.
마지막으로 나와 은율이 팀은……
“아빠, 저 땅 사고 싶어.”
“응? 왜?”
“땅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예뻐.”
은율이는 그려진 국기가 예쁘면 땅을 사고 싶어 했다.
“그럼 살까?”
“응!”
딱히 효율이나 승리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은율이의 흥미를 더욱 중요시해서 게임을 플레이했다.
물론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정말 세계 여행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초반부가 진행됐다. 주사위가 수차례 던져지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비어 있는 땅은 점점 줄어들었다.
안전한 땅이 계속 사라지면서 이제 주사위 한 번 던지는 것도 은근 부담스럽게 변해갔다.
그렇게 서로 통행료도 주고받으며 게임이 진행된 결과. 세 팀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승리에 가까운 팀은 카네프, 엘프리드 팀였다.
“오오! 안드라스 또 걸렸다!”
“여긴 호텔이 지어져 있으니까. 통행료는 90만 원이에요.”
“끄으응…….”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많은 땅을 선점한 두 사람은 통행료로 많은 이익을 거뒀다.
특히 안드라스, 리아네 팀이 주사위 운이 나쁜 탓에 계속 다른 팀의 땅에 걸려들었고. 가지고 있던 돈 대부분을 통행료로 헌납했다.
다행히 나와 은율이는 주사위 운이 좋아서 그런지 통행료를 거의 내지 않았다.
안드라스, 리아네 팀의 얼굴이 굳어질수록 카네프, 엘프리드 팀의 얼굴은 밝아졌다.
카네프는 풍족한 돈과 증서들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겼다.
“너무 땅이 많아서 그런지 게임이 쉽다 쉬워! 어디 보자…… 하핫! 안드라스랑 리아네는 돈이 하나도 안 남았네?”
“아직 땅은 남아 있거든요?”
리아네가 살짝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카네프는 평소답지 않은 털털한 웃음을 보이며 그녀를 약 올렸다.
“허허, 어떻게 하나? 안드라스랑 리아네는 그리핀들 씻길 준비해야겠어?”
“으으…….”
“아직 안 끝났습니다. 분명 역전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안드라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눈빛으로 역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여유를 부리는 카네프를 보며, 나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사장님, 저렇게 계속 업보를 쌓으시면 안 될 텐데…….
이 ‘부X마불’ 보드게임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무난해 보이는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가끔은 악의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무시무시한 것들이 숨어 있는 게임…….
내가 걱정했던 상황이 점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나와 은율이의 차례로부터 시작되었다.
-또르르륵.
주사위를 굴린 은율이는 나온 숫자를 확인하고 노란색 말을 움직였다.
-타, 타, 탓!
“히잉……. 무인도에 걸렸어.”
우리 말이 도착한 곳은 무인도 칸.
이곳에 도착한 플레이어는 3턴 동안 말을 움직일 수 없다.
은율이는 무인도가 벌칙이라고 생각해 울상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은율이를 달래주었다.
“은율아. 무인도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여기 걸리면 못 움직이잖아?”
“괜찮아, 괜찮아.”
초반에 무인도 칸에 걸리게 되면 굉장히 불이익일 수밖에 없다. 무려 3턴 동안이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게임이 중후반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3턴을 가만히 있다는 건, 바꿔 말해 3턴 동안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안드라스는 무인도 칸에 놓여 있는 노란색 말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이제 안드라스의 차례인가? 잘못하면 이번에 파산할 수도 있겠는데?”
카네프의 말대로 파란색 말 앞에는 위험한 땅들이 쭉 이어져 있었다.
“안드라스 님! 5랑 8은 절대 나오면 안 돼요.”
“…….”
조마조마한 리아네와는 달리 안드라스는 침착하게 게임판을 바라봤다. 그는 위험한 땅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또르르륵.
안드라스의 손에서 주사위가 굴려졌다.
나온 숫자는 6.
파란색 말은 위험한 땅을 지나서 우주여행 칸에 도착했다. 안드라스는 한쪽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해냈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시현 님, 여기에 도착하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거죠?”
“맞습니다.”
“휴우……. 다행이에요.”
리아네는 안도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네프와 엘프리드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럼 어디로 가실 거에요?”
내 물음에 안드라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저희는 무인도로 가겠습니다.”
역시…….
안드라스 씨는 이걸 노리고 있었네.
무인도로 가겠다는 말에 엘프리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무인도로도 갈 수 있는 거예요?”
“응. 우주여행 칸에 도착하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
“으음……”
카네프와 엘프리드는 뒤늦게 안드라스의 전략을 알아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파란색 말은 앞으로 세 턴 동안 무인도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3턴 동안만 안전한 것일 뿐, 현재 상황은 여전히 카네프, 엘프리드가 유리했다.
“내 차례인가?”
카네프는 대충 주사위를 굴렸다. 빨간색 말이 도착한 곳은 황금열쇠 칸.
한쪽에 마련된 황금열쇠 카드들 중의 하나를 뽑아 그곳에 적힌 지시사항을 이행해야 했다.
나는 맨 위의 황금열쇠 카드를 하나 뽑아 대신 읽어주었다.
“음……. 건물 정기종합소득세…….”
“……?”
“지금 소유하고 있는 건물들의 개수에 따라 소득세를 내라는데요?”
“뭐, 뭐야?”
꽤 심한 벌칙카드가 나와버렸다.
특히 카네프, 엘프리드 팀은 가장 많은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황금열쇠의 지시로 제출해야 했다.
가장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돼버렸다.
“…….”
“괘, 괜찮아요. 아직 저희는 땅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무인도에 있던 두 팀과 엘프리드의 차례가 지나고.
다시 카네프가 주사위를 던질 순서.
엘프리드는 불안한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카네프 님. 저기 조심해야 해요.”
“윽…….”
빨간색 말 앞쪽에 놓여 있는 많은 땅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곳. 이 게임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시.
바로 서울이었다.
은율이가 태극기 모양을 마음에 들어 한 탓에 일찌감치 내가 사둔 상태였다.
빨간색 말과 서울과의 거리는 7칸.
카네프와 엘프리드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칠! 칠! 칠!”
“제발 일곱 칸, 일곱 칸!”
“아! 시끄러! 이것들이 정말…….”
카네프의 얼굴에는 아까의 여유가 완전히 사라지고, 짜증과 불안함이 가득해졌다.
천하의 그 사장님을 긴장시키다니…….
이게 서울의 위엄인가?
숨 막히는 긴장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른 침을 삼키던 카네프는 손안에 두 개의 주사위를 가볍게 던졌다.
-또르르륵.
-또르르륵.
수많은 시선이 두 개의 주사위를 쫓아 움직였다. 방정맞게 움직이던 주사위가 천천히 결과를 드러냈다.
하나는 주사위 눈이 3개.
나머지 주사위의 눈이 4개.
“……칠?”
엘프리드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기쁨의 환호성과 절규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꺄아아! 진짜 칠이 나왔어!”
“이건 말도 안 돼! 여기서 어떻게 칠이 나와?!”
리아네는 기쁨의 환호성, 카네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사위를 노려봤다. 이 와중에 안드라스는 얄밉게 빨간색 말을 서울로 옮기고 있었다.
서울의 통행료 200만 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1등을 달리고 있던 카네프, 엘프리드 팀이었는데. 황금열쇠, 서울 콤보로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됐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덕분에 파산은 피할 수 있다는 것.
물론 두 사람의 상실감을 생각하면 거의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은율이는 갑자기 두둑해진 돈뭉치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아빠! 우리 돈이 엄청 많아.”
“그러게. 사장님 덕분에 엄청 부자가 됐네?”
나도 장난감 지폐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제 제 차례죠?”
한결 표정이 밝아진 리아네가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무인도에서 3턴이 다 지나서, 이제 밖으로 나갈 차례였다.
-또르르륵.
주사위의 눈은 2와 5.
뭔가 얄궂게도 방금 카네프가 던진 주사위와 똑같은 숫자 7이 나왔다.
파란색 말이 7칸 움직여 도착한 곳은 황금열쇠 칸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대신 카드 뭉치 맨 위의 한 장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황금열쇠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순간 얼어붙었다.
“시현 님, 뭐예요?”
“……?”
리아네와 안드라스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얼어 있는 나를 대신해 은율이가 카드에 적힌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줬다.
“음……. 관광여행? 세계 중심 도시, 서울로 가세요.”
“……?!”
“……?!”
“서울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으면 통행료를 지불합니다.”
은율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이블 주변에는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번 기쁨의 환호성과 절규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역시…….
서울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