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8화
비오는 날의 대결(5)
세 번째 게임.
‘부X마불’은 나와 은율이가 다른 두 팀을 모두 파산시키며 종료됐다.
“와아! 우리가 또 1등!”
은율이는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환호했다. 마지막 게임에서 1등을 한 게 어지간히 기뻤나 보다.
농장 식구들은 평소 같았으면 기뻐하는 은율이를 보며 흐뭇해했을 텐데, 게임이 끝난 지금은 모두 그럴 겨를이 없었다.
세 팀 중 꼴등을 한 리아네, 안드라스 팀은 아직도 ‘서울’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이었고.
카네프, 엘프리드 팀은 꼴등을 피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유리했던 게임에서 1등을 차지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나는 방긋 웃으며 꼴등 두 사람에게 내기의 벌칙을 상기시켰다.
“그럼 앞으로 한 달 동안 그리, 피니 목욕은 두 분이 맡아주시는 거죠?”
“으으…… 어쩔 수 없죠.”
“약속은 약속.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리아네와 안드라스는 겸허하게 내기의 벌칙을 받아들였다. 아마 한동안은 말썽꾸러기인 두 녀석에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아쉽게 2등을 차지한 카네프와 엘프리드를 바라봤다.
“두 분은 정말 아쉬우시겠어요?”
“쳇…… 지금 1등 했다고 놀리는 거냐?”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마지막에 그렇게 꼬이지만 않았어도…….”
카네프는 불퉁한 표정으로 대꾸했고, 엘프리드는 정말 아쉽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을 듣자마자 두 사람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원래 ‘휴가 동행권’은 1등을 차지하는 쪽이 가지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두 분이 가지시는 거로 할게요.”
“저,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선배?”
카네프와 엘프리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어차피 저는 ‘휴가 동행권’이 필요 없기도 하고. 원래 두 팀만 경쟁하는 거였잖아요. 그리고…….”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아직도 싱글벙글한 은율이를 바라봤다.
두 팀이 은율이를 많이 배려해 준 덕분에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배려해 준 것이지만, 그들이 진지하게 게임의 승리만을 원했다면 1등은 달라졌을 것이다.
나로서는 은율이가 게임을 즐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리아네와 안드라스도 내 결정을 이해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휴가 동행권’은 카네프, 엘프리드 팀이 얻게 되는 걸로 결정됐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아쉬움을 떨쳐내고 온몸으로 기쁨을 표했다.
“하하하! 좋았어!”
“드디어 나도…….”
카네프는 보기 드물게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고, 엘프리드는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렇게만 끝나면 참으로 훈훈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두 분…… 아직 정해야 할 게 남았지 않나요?”
“응? 뭐가 또 남았어?”
“……?”
“1등 상품은 누가 가지실 거죠? ‘휴가 동행권’은 한 장인데요?”
“……?!”
“……?!”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카네프와 엘프리드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리고 파밧! 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기쁨을 함께 나누던 동료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휴가 동행권’을 노리는 경쟁자가 돼버렸다.
“이봐, 베르딕 애송이. 이번에는 나에게 양보하는 게 어때?”
카네프가 사나운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엘프리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한때 존경했던 분이고, 지금은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이것만큼은 그냥 양보해드릴 수 없겠는데요.”
두 사람 강렬한 눈빛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리아네와 안드라스도 꼴등의 여운에서 빠져나와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두 분 모두 양보하실 생각은 전혀 없으신 거죠?”
“당연하지!”
“물론이에요!”
여기까지 와서 평화롭게 해결하는 건 무리일 듯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여기까지 게임으로 승부를 결정지었으니까, 마지막도 게임으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리아네는 마지막까지 게임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을 내놨고. 카네프와 엘프리드 두 사람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어떤 게임으로 결판을 내느냐인데…….
여기까지 올 줄 몰라서 네 번째 게임은 준비하지 않았다. 나의 고민이 깊어지던 와중, 옆에 있던 안드라스가 의견을 내놨다.
“마지막은 간단한 게임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간단한 게임?”
안드라스는 원카드를 할 때 사용했던 트럼프 카드를 꺼내 들며 말했다.
“두 사람이 카드를 한 장씩 뽑아 숫자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 어떻습니까?”
그가 제안한 게임은 확실히 간단하고 정확히 승부를 낼 수 있어 보였다.
이미 세 가지 게임을 진행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모됐기에, 마지막은 짧고 굵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동의를 구하는 의미에서 카네프와 엘프리드를 바라봤다.
“좋아, 마지막은 그걸로 하자.”
“저도 좋아요.”
그렇게 ‘휴가 동행권’을 건 마지막 승부가 결정됐다.
정신없이 게임을 즐기는 동안 농장에 몰아치던 비바람이 어느새 잠잠해졌다. 마지막 승자가 정해질 때쯤에는 조금이나마 햇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윽…….
-척, 척, 척.
무거운 긴장감 속에 나는 천천히 카드를 섞었다. 이 카드 뭉치에 많은 것이 걸려 있는 만큼, 카드를 섞는 손길에 진지함을 담았다.
-탁!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테이블 위에 카드 뭉치가 올려졌다.
“차례로 딱 한 장씩만 뽑으시는 겁니다. 만약에 다른 모양의 같은 숫자가 나온다면 다시 뽑을 거고요.”
-끄덕.
-끄덕.
“그럼 누가 먼저 뽑으실래요?”
“내가 먼저 뽑을게.”
카네프가 먼저 호기롭게 나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카드 뭉치의 맨 위에 있던 카드를 손으로 가져갔다. 뽑은 카드의 숫자를 혼자서 확인한 뒤에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다음은 엘프리드 차례.
마찬가지로 맨 위에 있던 카드를 한 장 가져가서 숫자를 확인했다. 자신의 숫자가 불안한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럼 셋을 세면 동시에 카드를 확인하는 거예요?”
-끄덕.
-끄덕.
테이블 위에 올려진 두 장의 카드.
모든 사람이 긴장감 가득한 눈빛으로 카드의 뒷면을 바라봤다.
“자∼ 하나, 둘…… 셋!”
카네프와 엘프리드는 동시에 자신의 카드를 앞면으로 공개했다.
한 장은 ‘다이아 10’, 또 한 장은 ‘클로버 9’.
단 1 차이로 갈려버린 마지막 승부.
승부의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지금까지 한 팀이었던 두 사람의 감정이 확연하게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