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1화
슈나르페 가문의 초대(3)
“짜잔! 여기가 제 개인 작업실이랍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작업실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안드라스의 작업실과는 달리 곳곳에 흥미로운 것들이 잔뜩 있었다.
특히 가장 눈에 띈 것은 작업실 한가운데 있는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은 정원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조각상을 바라보자 자이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건 최근에 작업을 마친 거랍니다. 제가 무엇을 표현한 건지 알아보시겠어요?”
“으음…….”
질문을 받자마자 머리가 하얘졌다. 내게는 이 조각상이 사람을 나타낸 건지, 아니면 동물이나 사물을 나타낸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난처해지기 전에 카네프가 나를 대신해서 불쑥 대답했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늙은이?”
“예에? 도대체 이 조각상의 어딜 봐서 그런 대답이 나오는 거예요?”
“딱 봐도 늙은이 같은데 뭘. 그럼 이게 뭔데?”
“저의 영원한 사랑, 우리 서방님을 생각하며 만든 거랍니다.”
자이나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녀의 반응에 카네프는 못 볼 걸 보았다는 듯 얼굴을 와락 찡그렸고, 안드라스는 민망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공허하게 웃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은율이가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빠. 아빠.”
“응?”
“저기 봐봐. 선생님이야.”
은율이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에는 화려한 예복 차림의 남자 마족이 늠름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안드라스 씨……?
순간 옆에 있는 안드라스의 그림인 줄 알았으나, 아주 미세하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호. 은율아, 이건 안드라스가 아니란다.”
“선생님 아냐?”
“응. 이 그림은 선생님의 아빠를 그린 거야. 많이 닮았지?”
은율이는 그림의 주인공이 안드라스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그림과 안드라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확실히 은율이가 헷갈릴 정도로 그림과 안드라스는 굉장히 닮아 있었다.
지금도 안드라스와 슈나르페 가주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젊었을 적 모습을 보니 완전 판박이인 수준이다.
“아들을 그린 그림도 있어.”
자이나는 다른 곳에 걸려 있던 그림 하나를 재빨리 가져왔다.
“이건 안드라스가 어렸을 적 모습을 그린 그림.”
어렸을 때도 지금과 비슷했을 것 같은데.
나는 별다른 기대감 없이 그림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으음……?
그림 속에는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키에 통통한 체형.
불만이 가득한 표정과 눈빛, 전형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겉모습만 봐서는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안하무인 성격의 도련님 같았다. 지금의 점잖고 묵직한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안드라스 씨…… 정말 많이 변하셨네요?”
“오, 오래전 모습입니다.”
안드라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으나, 이어지는 자이나의 이야기에 금방 평정심이 무너졌다.
“어휴…… 이때는 아들이 얼마나 속을 썩이던지…….”
“…….”
“매일 공부는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이상한 책이나 보고…….”
“어, 어머니?!”
생생한 어머니의 증언에 안드라스는 크게 당황하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성인이 되자마자 카네프 오라버니에게 보내버렸어요.”
카네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자이나가 다짜고짜 자기 아들을 보냈을 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지. 뺀질뺀질하게 생긴 도련님이 사나운 사냥개 같은 놈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정말 볼 만했었는데 말이야.”
“으으……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안드라스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렇게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라버니 덕분에 이렇게 늠름한 아들이 생겼잖아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과거의 안드라스가 어떻게 검은수리 단원이 되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황당한 이유라서 조금 허무하게 느껴졌다.
흐음…….
그러면 리안 씨는 어떻게 검은수리 단원이 된 걸까?
잠시 새로운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자이나의 목소리에 금방 의식 뒤편으로 사라졌다.
“아! 잘됐다. 은율아, 이리로 와볼래?”
“……?”
자이나는 은율이를 데리고 작업실 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산스럽게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햇빛이 잘 비치는 창가에 의자를 놔두고 그곳에 은율이를 앉혔다.
“조금만 가만히 앉아 있어.”
“……?”
“귀여운 은율이를 보니까, 갑자기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거든. 금방 예쁘게 그려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자이나는 순식간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오더니 천천히 은율이를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스으윽…… 스윽.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은율이를 살피며, 하얀 백지 위에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은율이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불안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은율이가 진정할 수 있도록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하얀 종이 위에는 놀라운 결과물이 완성되어 있었다.
매력 포인트인 여우 귀와 꼬리. 초롱초롱한 눈동자. 그리고 입가에 맺힌 순수한 미소까지. 자이나는 은율이의 사랑스러움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짧은 시간에 보여준 그림의 높은 완성도에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각상은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이나는 완성된 그림을 은율이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곧바로 감탄을 터져 나왔다.
“와아…….”
“은율아, 어때? 마음에 들어?”
-끄덕끄덕!
은율이는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그리는 그림이라 걱정했는데.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이건 은율이한테 선물로 줄게.”
“정말?”
“물론이지. 대신 다음에 또 은율이를 그릴 수 있도록 해줄래?”
“응, 알았어.”
자이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율이에게 그림을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