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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2)화 (24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2화

슈나르페 가문의 초대(4) 

계속 웃는 모습만 보이다가.

갑자기 저렇게 정색하니까 엄청 무섭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릴리아도 단박에 제압돼 버렸다.

“또 수업을 빼먹은 거니?”

“빼, 빼먹은 건 아니고……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니까 선생님한테 일찍 끝내달라고…….”

릴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변명했다. 자이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움찔!

불안한 표정의 릴리아가 한숨 소리에 몸을 떨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불편한 마음으로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래도 약속한 대로 수업은 빼먹지 않았구나.”

“으…… 응. 당연하지.”

조금 화색이 도는 릴리아에게 자이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잘했다는 게 아니야!”

“윽……!”

“지금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버리고, 중요한 손님분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 그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무리 반가워도. 가문의 구성원으로서 손님을 맞이할 책임을 잊어선 안 돼. 아직 어린 은율이도 손님으로서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단다.”

자이나는 옆에 있던 은율이를 언급하며, 동시에 등을 쓰다듬어줬다.

“카네프 오라버니나, 카디스 영주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 돼. 그럴수록 더욱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

어머니의 꾸지람에 릴리아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카네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라스는 여동생을 조금 안쓰러워하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조용히 지켜만 봤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은율이가 옆에 있던 자이나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이 은율이 쪽으로 향했다.

“화났어?”

“으음…… 혹시 나 때문에 놀랐니?”

은율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작은 두 손으로 자이나의 팔을 꼬옥 잡았다.

“나도 인사 잘 못 했는데. 아빠가 가르쳐줘서 금방 배웠어. 저 언니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화내지 마.”

순수한 표정의 은율이가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잠시 놀라던 자이나의 얼굴에는 금방 부드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은율이는 정말 착하구나.”

다시 미소를 되찾은 자이나는 그대로 다시 릴리아 쪽을 바라봤다.

“릴리아. 뭘 잘 못 했는지 이제 알겠지?”

“으응…….”

“그럼 빨리 손님분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렴.”

릴리아는 급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카네프 아저씨, 시현 오라버니. 버릇없게 굴어서 죄송해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제가 실수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실 수 없을까요?”

그녀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지 않은 진지한 눈동자였다.

카네프는 살짝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용서는 무슨…… 나는 됐어. 어차피 나는 남에게 예의를 지적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대신 그 말괄량이 같은 행동은 좀 고쳐. 누군가에겐 민폐가 될 수 있으니까.”

“네…….”

릴리아의 시선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자이나 님께서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꾸짖으셨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시현 오라버니…….”

“그리고 자이나 님이 저에게 가족 같다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도 릴리아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조금은 편하게 행동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게 릴리아가 가진 매력 아니겠어요?”

내 말을 들은 릴리아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 참았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흐윽…… 흑…… 으아아앙! 시현 오라버니!”

“어어어? 커헉?!”

그녀는 보디 체크를 하듯 나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나는 대비할 겨를도 없이 충격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기분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릴리아가 내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쯧쯧, 물러터졌어.”

“하하하. 그게 시현 님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은율이네 아빠는 엄청 다정한 분이시구나?”

“응, 엄청 다정해. 아빠는 멋있어!”

주변 사람들은 나와 릴리아를 훈훈하게 바라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품안의 릴리아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볍게 안아줬다.

잠시 후.

릴리아는 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조금 민망해할 법도 한데, 그녀는 조금 전까지 펑펑 울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눈 주위가 조금 빨갛게 변했다는 걸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녀가 울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을 거다.

금방 기운을 되찾은 릴리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여기 들어오기 전에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은율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해 주고 있었어.”

“어떤 노래?”

“신시아의 찬가. 너도 이 노래 좋아했었지?”

“응! 맞아. 나도 정말 좋아하는 노래야.”

릴리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제목에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지, 크게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잘됐다! 이렇게 엄마 작업실에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같이 연주해 보면 안 돼?”

“어머,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도 오랜만에 아들, 딸이랑 같이 연주해 보고 싶어졌어.”

아들, 딸?

나는 놀란 표정으로 안드라스 쪽을 바라봤다.

“안드라스 씨도 연주할 줄 아세요?”

“저는 어머니나 동생처럼 능숙한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수준입니다.”

“오오…….”

그는 보잘것없는 실력이라며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감탄을 터뜨렸다. 그다지 음악이랑은 관련 없어 보이는 안드라스였기에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호호! 오랜만에 제자들 실력확인 좀 해볼까?”

“오라버니, 얼른 이리와.”

“끄응…… 너무 오랜만이라.”

커다란 덩치의 안드라스가 릴리아에게 힘없이 끌려갔다.

슈나르페 가문의 세 사람은 각자 악기를 가져와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이나는 원래 앉아 있던 피아노.

릴리아는 바이올린, 안드라스는 첼로.

세 사람 모두 잘 어울렸지만, 특히 커다란 덩치의 안드라스가 첼로를 잡으니 은근히 세련된 멋이 났다.

악보는 안드라스만 챙기고, 나머지 두 사람은 악보 없이 악기만 조율했다.

“은율아, 너도 노래해 볼래?”

“응, 해볼래.”

자이나의 물음에 은율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평소에 연습하던 환경이랑 달라서 긴장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은율이는 기대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이나의 신호에 맞춰 연주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안드라스가 박자를 못 맞춰 허둥댔는데. 금방 안정감을 되찾더니 평범하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조화롭게 얽혀드는 세 악기의 연주.

환상적인 화모니에 나와 카네프의 얼굴에 편안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은율이의 노랫소리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이미 완벽한 것 같았던 세 악기의 조화는 은율이의 목소리와 합쳐져 또 다른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자이나는 모두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능숙하게 중심을 잡았고, 릴리아는 자신의 성격처럼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다.

안드라스는 연주를 버거워하는 와중에도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밑에서 지탱했다.

세 사람의 대단한 실력에도 은율이는 전혀 밀리지 않고 여유롭게 노래를 이어나갔다. 마치 선율 위를 뛰노는 노래의 요정을 보는 것 같았다.

두 귀뿐만 아니라 온몸이 노래에 반응하는 것 같은 오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계의 노래에서 지구 사람인 내가 이렇게 감동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방안을 가득 메우던 멜로디가 점차 줄어들더니, 강한 여운을 남기며 부드럽게 마무리됐다.

가슴을 울리게 하던 노래는 끝이 났지만,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아쉬움 정도는 금방 뒤덮을 정도로 강한 감동과 여운이 남았기 때문이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감탄과 존경의 의미를 담아 열성적으로 손뼉을 쳤다. 카네프도 나와 마찬가지로 손뼉을 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릴리아와 안드라스는 정말 열심히 쏟아낸 듯, 얼굴에서 피로함과 개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자이나는…….

-와락!

“정말!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거야? 이 큰언니는 너무 놀라서, 내가 연주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줄 알았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은율이를 와락 껴안았다.

“나 잘했어?”

“응! 너무너무 잘했어.”

“헤헤. 선생님이랑 같이 연습 많이 했어.”

은율이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자이나는 갑자기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은율아. 내 딸하자.”

“……?”

“앞으로 하루라도 은율이 노래 못 들으면 정말 못 살 것 같아. 그러니까 슈나르페 가문의 아이가 돼서 나랑 여기서 같이 사는 거야. 어때? 어때?”

아무래도 자이나는 은율이의 매력에 완전히 중독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카네프가 혀를 차며 안드라스에게 눈짓을 보냈고, 안드라스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어머니를 진정시켜야 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자이나가 나와 은율이에게 사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작업실의 환상적인 연주와 노래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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