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3)화 (24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3화

슈나르페 가문의 초대(5)

식사는 정말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원래 귀족의 식사 예절은 까다로운 편인데, 슈나르페 가문의 마족들은 굉장히 편하게 행동했다. 아마도 손님인 우리가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배려한 것 같았다.

“예쁘게 정말 잘 먹네. 이것도 먹어 볼래?”

“응.”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먹기 좋게 잘라줄게.”

자이나는 정말 은율이의 엄마가 된 것처럼, 옆에서 식사를 정성스럽게 챙겼다. 은율이도 그녀의 관심이 싫지 않은지, 자연스럽게 응석을 부렸다.

덕분에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은율이가 편안히 식사를 즐길 수 있고, 나도 은율이를 챙기지 않아도 돼서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에스베른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 정말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정말 많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네요. 가능하면 배워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예요.”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에스베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손님이 찾아온다고 해서 요리사들이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거든요.”

“아주 많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군요.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호호! 제가 꼭 전해드릴게요. 카디스 영주님께서 만족하셨다는 걸 알면 요리사들이 꽤 기뻐할 거예요. 혹시 요리법도 필요하시면 따로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이나 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와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자이나는 아기 새처럼 음식을 받아먹는 은율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여보, 은율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노래도 어찌나 잘 부르는지. 당신도 아까 들어봤어야 했는데…….”

많이 들떠있는 자이나의 모습에 에스베른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여보, 이참에 우리 아기 하나 더 낳을까요?”

“커헉, 컥!”

“크흠…….”

그녀의 폭탄 발언에 당황한 에스베른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당황한 안드라스도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눈치 없는 릴리아는 흥분한 모습으로 자이나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아앗! 나도 여동생이 생기는 거야? 나는 찬성, 무조건 찬성!”

빠르게 정신을 차린 에스베른은 일단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당황하는 바람에 실례를…….”

“괜찮습니다, 가주님.”

그리고 시선을 돌려 아직도 눈을 반짝이는 자이나를 바라봤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내를 진정시켰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왜요? 카네프 오라버니나, 카디스 영주님은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럼 오늘 바로 준비할까요?”

“……?!”

연이어 터져 나오는 수위 높은 발언.

그 때문에 당사자인 에스베른은 물론이고, 나도 순간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카네프는 남일 구경하듯 킬킬거리며 자신의 식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랜 결혼 생활로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것일까? 에스베른은 침착하게 지금의 상황을 돌파해나갔다.

“흐음. 귀여운 아기가 보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안드라스나 릴리아에게 기대하는 게 더 빠르지 않겠소? 이미 아이 한, 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니까 말이요.”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주제의 대상을 두 사람에게 돌려놨다.

갑자기 이 난감의 주제를 떠안은 안드라스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고, 조금 전까지 신나서 떠들던 릴리아는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확실히 당신 말이 맞네요. 슈나르페 가문의 새로운 아이는 아들과 딸의 몫이겠죠. 두 사람도 이제 슬슬 자기 짝을 찾아야 할 텐데…….”

자이나의 시선이 두 자식들에게로 향했다.

안드라스와 릴리아는 어떻게든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휴…… 언제까지 저렇게 피하기만 하려고 그러는 건지. 누굴 닮았는지 둘 다 매일 작업실에만 틀려 박혀 있고.”

“…….”

“…….”

“…….”

자이나의 한숨 섞인 말에 세 사람 모두 불편한 표정이 됐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도 겪어본 적이 있는 터라, 나도 편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시현 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으음…… 저요?”

“네. 원래는 시현 님을 이곳에 모시는 김에 큰 파티를 열려고 했었거든요.”

아아.

그러고 보니 안드라스 씨가 초대장을 전해주면서 비슷한 말을 했었지.

“시현 님은 귀족들, 특히 젊은 귀족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으시잖아요.”

“제, 제가요?”

“모르셨나요? 마왕님께 에스테르 지위, 카디스 영지까지 하사받으시면서 많은 주목을 받으신 데다가. 요즘 귀족들이 환장하는 카디스 딸기잼을 만드신 분이시잖아요.”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한 건 어느 정도 알았는데, 젊은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처음 들어본 이야기였다.

“물론 성대한 파티를 열어 시현 님에게 보답하려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은 시현 님을 미끼로 많은 젊은 귀족들을 이곳에 불러들이려고 했었거든요.”

“……?”

“혹시 그 파티에서 자식들의 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제야 나는 자이나가 파티를 열지 못해 아쉬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로 젊은 귀족들을 끌어모아 만남의 장을 만들려 했던 거였다.

쩝, 내가 싫어해서 파티를 못 했으니 내 잘못도 있는 건가…… 어라? 잠깐만…….

“그런데 안드라스 씨는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이미…….”

“자, 잠깐! 시현 님!”

나는 무심코 뭔가를 말하려다가 재빨리 끼어든 안드라스에 의해 말을 가로막혔다. 중간에 아차 하며 말을 끊었지만, 이미 자이나의 눈매가 길게 가늘어져 있었다.

“어머나. 시현 님은 뭔가를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

그녀는 나긋나긋하게 말하면서도 눈빛에는 강한 압박을 담고 있었다. 에스베른과 릴리아도 굉장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식간에 내몰린 상황.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카네프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방긋 웃어 보였다.

어우! 저 얄미운…….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카네프마저 모른 척해 버리니. 나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슈나르페 가문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집요해지던 그때.

“모두 그만두십시오. 가문의 손님으로 오신 시현 님이 난처해 하시지 않습니까?”

안드라스가 나서며 가족들을 말렸다. 덕분에 나를 향한 슈나르페 가문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은 악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관심을 거둔 건 아니었다.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결국, 안드라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현 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드라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슈나르페 가문 사람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오오! 오라버니, 누구야? 어디서 만났어?”

“사귄 지 얼마나 된 거니?”

“어디 가문의 아가씨더냐? 약혼 계획은 세웠느냐?”

과묵한 에스베른마저 빠르게 질문하며 관심을 보였다. 쏟아지는 관심에 안드라스는 침착한 얼굴로 대응했다.

“아직 약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진지한 단계는 아니라 가족에게 알리기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관계가 확실해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안드라스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정리했었는지, 단호한 태도로 가족들의 관심을 차단했다.

슈나르페 가문 사람들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 근질근질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뜻을 존중해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말실수 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담아 안드라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괜찮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라스의 ‘그녀’에 대해 쏠렸던 관심이 흐지부지해지고.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에 자이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아들은 됐고. 이제 딸만 남았네.”

-흠칫!

조용히 묻어가려 했던 릴리아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이 주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흐려졌다.

자이나 님, 진짜 집요하시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면 원래 이런 건가?

안절부절못하는 릴리아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에스베린이 불쑥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시현 님은 정해둔 약혼자가 있으십니까?”

“네?”

“인간의 풍습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릅니다만. 시현 님도 반려자를 찾으셔야 할 시기이지 않습니까? 영주라는 직위를 생각한다면 더욱 중요한 문제고요.”

“아…… 예, 그렇긴 하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자이나가 다시 한번 눈을 빛냈다.

“어머나! 시현 님. 아직 약혼자가 없으셨어요? 워낙 인기가 많은 분이라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나 보네요.”

“하……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우리 릴리아를 가족같이 생각한다고 하셨죠?”

“오∼ 시현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에스베른은 자이나의 말에 짧게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 사이에 빠르게 신호가 오고 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고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 가족 같다는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이제 보니 시현 님과 슈나르페 가문은 인연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식들과의 인연도 깊은 데다가, 마왕님의 신임을 받는 부분도 그렇고요.”

“당신 말대로예요. 이참에 시현 님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릴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자이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릴리아의 의중을 물었다.

그러자 릴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평소 같지 않게 수줍어하던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현 오라버니는…… 나쁘지 않을지도…….”

그 반응을 본 에스베른과 자이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생겨났다. 거기다 안드라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시현 님은 정말 믿을 만한 분입니다. 옆에서 오래 지켜본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안드라스 씨!

평소에 그 말을 들었다면 굉장히 감동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점점 옥죄어오는 듯한 분위기에 등에서 식은땀이 솟아났다.

아니, 상황이 이렇게 된다고?

이, 이게 코가 꿰인다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