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4화
슈나르페 가문의 초대(6)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슈나르페 가문의 사람들은 나와 릴리아를 이어주기 위해 분위기를 몰아갔다.
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해 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덜컥 약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슈나르페 가문과 릴리아가 마음에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감하네…….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도 없었다.
마계의 귀족들은 원래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나로서는 지금 상황이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나의 이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이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잠깐?! 만약에 시현 님이 우리 가문과 연을 맺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은율이도……? 은율이가 내 손녀?”
“으응? 난 은율이 엄마가 되는 거네?”
“그럼 저는 삼촌…… 삼촌…….”
“흐음.”
슈나르페 가문의 사람들은 각자 은율이와 가족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맛있는 음식에 집중하던 은율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이리저리 눈동자를 움직였다.
“은율아. 내가 은율이 할머니가 되고, 릴리아 언니가 엄마가 되면 어떨 것 같니?”
“할머니? 엄마?”
“그래. 은율이도 슈나르페 가문의 일원이 되는 거야. 아무 때나 저택에 놀러 와도 되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을 수 있단다. 아까 멋진 작업실 봤지? 은율이만 사용할 수 있는 작업실도 예쁘게 만들어 줄게. 어떠니?”
자이나는 은율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쭉 늘어놓으며 관심을 끌었다. 다른 슈나르페 사람들도 설레는 표정으로 여우 소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응…….”
은율이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응?
은율이의 눈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마주 보고 있는데. 돌연 은율이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자이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응? 괘, 괜찮다니?”
“아직은 아빠랑 농장에 있는 게 제일 좋아. 그리고 농장에는 다른 가족들도 있으니까.”
완곡한 거절.
자이나는 은율이가 거절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다른 슈나르페 사람들도 살짝 실망감을 드러냈다.
반면에 나와 카네프의 얼굴에는 미소가 생겨났다. 특히 카네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으, 은율아. 잘 생각해 봐. 오늘 먹은 음식보다 맛있는 게 훨씬 많이 있어. 그리고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지? 내가 매일 노래 부를 수 있게 연주해 줄게. 아니, 따로 악단을 고용해 줄게.”
자이나는 매달리다시피 하며 은율이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얼마나 애절한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웅…… 여기 일원이 아니면 다시 못 놀러 오는 거야? 나 미워하는 거야?”
은율이는 여우 귀를 축 늘어뜨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금세 촉촉해진 눈동자와 목소리는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아, 아냐! 누가 은율이를 미워하겠어. 절대 그런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 그럼 언제든지 놀러 와도 돼?”
“물론이지. 약속할게.”
자이나의 약속까지 받아낸 은율이는 금방 슬픈 기색을 지워내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가라앉았던 식당의 분위기가 햇빛이 드리운 것처럼 산뜻해졌다.
은율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쪼르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에 올라오더니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랑 농장에서 노는 게 제일 좋지만, 여기도 재미있으니까 가끔 놀러 올게. 헤헤.”
“…….”
멍한 표정을 짓던 자이나는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허탈해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래를 바라봤다. 품 안의 은율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다신 눈을 반짝였다. 그 의미를 깨닫자마자 입에서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이 앙큼한 여우 소녀는 곤란해 하는 아빠를 위해 이런 행동을 보여준 듯했다.
슈나르페 가문의 마족들을 순식간에 홀려 시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잡아끄는 능력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덕분에 아까와 같이 릴리아와 이어주려는 분위기는 시들해져 버렸다.
정말 여우에게 홀린다는 게 이런 걸까?
아직 어린데도 이 정도인데, 나중에 다 자라면…….
은율이의 미래 모습이 기대되는 동시에 살짝 걱정스러워졌다. 혹시 성장해서 이 능력을 나쁜 곳에 이용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다시 품 안을 내려다봤다.
은율이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두 눈동자에는 티 없이 맑은 순수함과 반짝임이 가득했다.
아직 너무 이른 걱정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순수한 눈을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딸을 열심히 보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