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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6)화 (24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6화

새로운 바람(2)

나를 딸기밭 쪽으로 못 가게 말리던 로커스는 돌연 다른 주제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영주님, 저번에 내가 말한 건 생각해 봤어?”

“뭘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되묻자,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뭐긴 뭐야. 마을에 영주 저택을 짓자는 제안 말이야.”

“아…….”

“설마 아직도 결정 못 내린 거야?”

“결정을 못 내렸다기보다는…… 그게 꼭 필요한가 싶어서요.”

내 대답을 들은 로커스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 올랐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려치는 모습에 나는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아니! 영주가 자기 영지 안에 집 한 채 없다는 게 말이 돼?”

“뭐…… 꼭 자기 소유의 집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잖아요. 거기다 농장 건물도 있는데…….”

“농장 건물은 영주 개인 소유가 아닌데 뭔 소리야! 거기다 영주로서 지내는 게 아니라, 사실상 농장 일꾼으로 지내는 거잖아.”

“쩝…….”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진 로커스.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기에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로커스, 흥분을 좀 가라앉히게.”

라구스는 주변을 살피며 격양된 로커스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로커스는 오히려 라구스의 팔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얘도 안 불쌍해?”

“나, 나는 왜?”

“엘든 마을뿐만 아니라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다 이 녀석이 처리하는데, 제대로 된 집무실 하나 없잖아. 아직도 자기 집 식탁 테이블을 끌어다가 일하고 있다고.”

로커스는 라구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지적했다.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고 얼굴이 굳어졌다.

엘든 마을의 촌장으로 나와 인연을 맺고, 지금은 영지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 주는 라구스.

이 사슴 수인이 아니었다면 카디스 영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의 일을 할 때와 비슷하게 대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봉급이야 넉넉하게 챙겨줬지만, 업무 환경이라던가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다.

굳어진 내 얼굴을 보고 라구스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여, 영주님. 저는 지금의 환경에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분한 대우는 개뿔…… 너는 괜찮아도 나는 안 괜찮아. 언제까지 좁은 사슴 수인의 집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 거야? 나도 제대로 된 집무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자네 진짜 왜 이러는가? 어제도 내가 만들어준 차를 맛있게 마셨으면서.”

“으으! 네가 만들어주는 차도 질렸어. 이제 예쁜 메이드가 가져다주는 차 마실 거야.”

같이 업무를 보며 친해진 라구스와 로커스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이 좋은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갑자기 내게 던져진 여러 가지 문제로 생각이 깊어졌다.

금발 마족과 사슴 수인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커다란 덩치의 용혈족 크록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

크록은 두 손으로 수화를 사용했다. 간단한 인사의 내용이었기에 금방 알아들었다.

“네, 오랜만이에요 크록 씨. 일은 다 끝나셨나요?”

-끄덕끄덕.

딸기밭 쪽을 바라보니 다른 수인들도 수확을 다 끝내고 일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크록은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손을 움직여 수화를 사용했다.

“아…… 별일 아니에요. 영주 저택이랑, 지금 두 분이 일하는 업무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

“그런데 크록 씨도 영주 저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 물음에 크록은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단호한 뜻을 담아 수화로 대답했다.

-당연히 영주 저택은 있어야 합니다.

“거봐, 크록도 똑같은 의견이잖아. 영주 저택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니까. 이제 중요한 손님들도 많이 찾아올 건데, 아무 데서나 맞이할 거야?”

“끄응…….”

“커다란 성을 짓자는 것도 아니고, 겨우 저택을 짓는다는데 왜 이렇게 망설여.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네 저택을 짓는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걸?”

“그건 라구스의 말이 맞습니다. 만약에 저택을 지으신다면 마을 주민 모두가 기뻐하며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려고 할 겁니다.”

흐음…….

원래는 영주 저택을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택을 지어도 대부분 농장에서만 지낼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실용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영지의 재산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의 말을 들을수록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단순히 내가 지내는 용도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영주 저택 건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 볼게요.”

긍정적인 답변에 세 사람의 얼굴이 밝아졌다.

***

영주 저택 건설에 대해 언급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에 소문이 쫙 퍼졌다.

나는 분명히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는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저택이 건설되는 게 기정사실처럼 알려졌다.

범인은 마을 술집을 자주 들락거리는 금발 마족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농장에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디스 영주님.”

“오랜만이네요. 베베토.”

짙은 갈색 머리칼을 가진 중년 마족.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그리핀의 알을 가지고 왔던 베베토가 농장을 찾아왔다. 짧게 안부 인사를 전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리와 피니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데리고 와 볼게요.”

“어흠, 번거롭게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내가 데려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베베토는 내가 움직이는 게 부담스러운지 안절부절못했다.

“하하! 괜찮아요. 제가 그리핀들의 건강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서 데려오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베베토를 안심시켜준 뒤 금방 2층에 놀고 있던 그리핀들을 데리고 왔다.

-삐이익!

-삐이익!

이제 안아 들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게 성장한 그리핀들은 베베토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 반가운지, 날개를 퍼덕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오오…… 정말 몰라볼 정도로 자랐군요.”

“그렇죠? 요즘은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하면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예요.”

“허허! 조만간 이 아이들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겠습니다.”

베베토는 조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리핀들을 살폈다. 충성심이 높은 만큼, 가문의 상징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쁜 모양이었다.

“그리핀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가문에 전하겠습니다. 대부인 마님과 가주님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아! 제가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영주님께서 새로운 저택을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저택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어?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카디스 영지에 바르바토스 소속의 기술자가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소문을 듣고 급하게 본가에 연락했더군요.”

급격하게 성장하는 카디스 영지에 건설 기술자가 계속 필요하다 보니,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보내준 기술자 중 몇몇은 되돌아가지 않고 아예 이곳에 상주하는 중이었다.

아마 그 기술자들이 소문을 듣고 바르바토스 가문에 연락한 모양이었다.

“카디스 영주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번 저택 건설에 바르바토스 가문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가주님께서 최고의 기술자들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지난번에 받은 도움만으로 이미 과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현 님은 저희 가주님의 목숨을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거기다 저택 건설이야말로 바르바토스 가문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는 일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베베토는 고개를 숙이면서 허락을 구했다.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사정하는데 무작정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으니까 고개 드세요.”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허락하고 말고가 어딨겠어요.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도움을 준다면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베베토는 환하게 웃으며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그것을 쭉 펼쳐놨다.

-삐이익?

-삐이이! 삑!

호기심 넘치는 그리핀들이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빤히 바라봤다. 부쩍 날카로워진 부리를 갖다 대기 전에 얼른 두 녀석은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베베토가 올려둔 것은 지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가 엘든 마을과 주변 지형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이건 엘든 마을 지도군요?”

“맞습니다. 아앗!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이건 정확한 측량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아닙니다. 건설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임시로 지형만 표시해 둔 겁니다. 어설프더라도 영지의 지도를 무단으로 만들어서 불쾌하셨다면, 지금 당장 폐기하고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뇨, 그 정도야 뭐…….”

잠시 움찔했던 베베토가 한숨을 돌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지도를 봐주십시오. 저택을 지을만한 장소를 제가 미리 표시해뒀습니다. 추천해 드리는 곳은…….”

베베토는 표시된 곳을 손으로 짚으며 세 군데 정도를 추천했다.

추천해 준 곳 모두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은 엘든 마을과 가깝고, 농장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저도 위치상으로는 그곳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장소는 일단 이곳으로 정해놓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저택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나는 요 며칠간 저택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뒀던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일단 너무 화려하진 않았으면 좋겠고요. 저랑 도와주시는 분들을 위한 집무실이 있어야 하고. 손님들을 맞이할 공간도 필요해요. 영지에 머무르는 손님들을 위한 방도 있어야겠죠?”

베베토는 내 말을 한 글자도 흘려듣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열심히 메모했다.

“으음…… 그리고 또…….”

“놀이터! 놀이터가 있어야 해.”

“그럼 놀이터도…… 응?”

불쑥 끼어든 귀여운 목소리.

옆을 바라보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은율이가 방긋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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