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7화
새로운 바람(3)
“은율아, 언제 왔어?”
“그리랑 피니가 안 보여서 찾으러 왔어.”
“그런데 놀이터라니?”
“아빠가 저번에 놀이터 만들어준다고 해놓고 안 만들어줬잖아.”
“으음, 내가 그랬었나……?”
내가 잘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말끝을 흐리자, 은율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던 베베토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아저씨가 만들어준다고 약속했었는데 안 만들어줬어. 저 아저씨 거짓말쟁이야.”
“오, 오해입니다, 은율 아가씨. 거짓말쟁이라뇨?!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베베토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황급히 양손을 내저으며 은율이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알렸다.
“그럼 이번에는 만들어줄 거야?”
“영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마계에서 제일 멋있는 놀이터를 만들겠습니다.”
“정말?”
“물론이죠, 은율 아가씨. 저 베베토, 이쪽 업계에서 나름 신용 있는 사람입니다. 한번 믿어주십시오.”
그는 업계의 신용까지 들먹이며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탕탕 쳤다. 덕분에 삐죽 나와 있던 은율이의 입이 슬며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은율이는 베베토에게 확실한 약속을 받아낸 뒤, 이번에는 내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렸다.
“아빠∼! 이번에는 놀이터 만들어주면 안 돼? 아저씨가 제일 멋있는 놀이터 만들어준대. 응?”
“하하. 이것 참…….”
은율이의 애교에 녹아내리려는 표정을 겨우 붙잡았다. ‘놀이터’가 갖고 싶어서 부리는 애교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딸바보가 된다는 게 아마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택 근처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마을의 아이들도 함께 놀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럼 저택 설계에 놀이터에 대한 부분도 포함해 두겠습니다.”
“아까 화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놀이터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튼튼하고 멋지게 만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꼭 참고하겠습니다.”
나에게 쓰는 돈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더라도. 은율이에게 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가성비나 효율성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와아! 놀이터! 놀이터!”
은율이는 엄청나게 기뻐하며 내 품에 쏙 안겨들었다.
“그렇게 좋아?”
“응! 아빠 너무 좋아.”
“하하하!”
복슬복슬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만족스러운 고양이 미소를 짓는 은율이.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 안이 울리도록 시원하게 웃었다. 베베토도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 피니! 아빠가 놀이터를 만들어준대.”
-삐이익?
-삐이익?
“놀이터가 있으면 엄청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거야. 나랑 매일 놀러 갈 거지?”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그리핀들은 ‘놀러 간다’는 말은 귀신같이 알아듣고 신나서 주변을 뛰어다녔다. 은율이도 덩달아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베베토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베베토. 아이들이 많이 신났나 봐요.”
“하하. 괜찮습니다. 오히려 보기 좋습니다. 이제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를 시작하겠습니다.”
은율이가 원했던 ‘놀이터’ 말고는 딱히 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커다란 그림자가 내 옆쪽으로 드리웠다.
“흠흠. 작업실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나타나서 작업실 타령을 하는 커다란 덩치의 마족. 그쪽을 직접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하아…… 안드라스 씨는 왜 또 작업실 타령이에요? 농장에 벌써 작업실 만들어 드렸잖아요.”
“그건 농장의 작업실이고. 새로운 영주 저택에도 작업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계획에 저를 빼놓고 이야기하다니…… 정말 섭섭합니다.”
안드라스는 은근슬쩍 내 옆에 앉더니 곧바로 베베토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어질 저택의 안전을 위한 결계와 마법 장치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농장 식구들도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저는 다른 건 필요 없고. 부엌이랑 식당이 예뻤으면 좋겠어요.”
리아네의 요구는 아주 적당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시현 선배, 당연히 수련장을 만들어야죠.”
“수련장은 왜 또…….”
“엘든 마을에 저랑 같이 수련하는 친구들이 많다고요. 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만들어야죠.”
수련장을 만들어달라는 엘프리드부터.
“영주 저택을 짓는다고? 그럼 가장 전망 좋은 방 하나만 내놔. 별장 느낌으로 가끔 쉬러 가면 되겠네.”
벌써 가장 좋은 방을 노리는 카네프까지.
순식간에 몰려든 농장 식구들로 방 안이 어지러워졌다. 나는 한동안 욕망에 가득 찬 식구들을 중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