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51화
용마족의 마을(1)
‘페스투나.’
농장을 떠나 이틀에 걸쳐 도착한 마을의 이름이었다.
엘든 마을과 비교하면 규모도 훨씬 크고,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역사도 짧지 않아 보였다.
마계에 존재하는 용마족 대부분이 ‘페스투나’라는 마을에 살고 있으며, 리아네 역시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가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외부인의 방문이 많지 않은지, 입구 근처에 주민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구경하듯 바라봤다.
확실히 리아네 씨와 비슷한 분들이 많네.
머리에 커다랗고 우람한 뿔, 붉은 눈동자, 페스투나 마을 주민들은 전체적으로 리아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중간중간에 용마족 꼬맹이들이 어른들 다리를 비집고 나왔다. 마차를 구경하는 꼬맹이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내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어주니, 용마족 꼬맹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순진한 모습에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이 아이들을 말리며 뒤로 숨겨버렸다.
아이들과 반대로 어른들의 경계심 가득한 반응에 나는 뻘쭘하게 손을 내렸다.
“…….”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우리를 반기는 이들도 있었고, 눈살을 찌푸리며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발레리안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옆에 있는 리아네의 눈치가 보여 그럴 수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는 재빨리 땅에 내려 마차의 문을 열었다. 함께하던 병사들도 대열을 갖춰 우리를 호위하듯 자리 잡았다.
마차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차례차례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은율이까지 내 손을 잡고 내려서자,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마족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용마족들은 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장식품과 무늬가 새겨진 것이 이곳의 전통 의상 같아 보였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용마족이 나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촌장의 아들 ‘디우르’라고 합니다.”
‘디우르’라는 이름의 용마족은 굉장히 정중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선이 굵은 외모와 짙은 눈썹, 그리고 차분한 눈동자와 인상적인 남자였다.
우리 쪽에서는 내가 대표로 나서서 그 인사에 답했다.
“안녕하세요. 카디스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시현 레프미어 카디스’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카디스 영주님이셨군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디우르는 다른 일행들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에 남은 리아네와는 짧게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했다.
“따라오시죠. 몸을 녹일 수 있게 미리 따뜻한 방과 차를 준비해놓았습니다.”
디우르는 우리를 직접 건물 쪽으로 앞장섰다. 나는 은율이의 손을 잡고 디우르의 뒤를 따랐다.
건물의 내부에 들어서자 훈훈한 기운이 뺨에서 느껴졌다. 은율이는 건물 내부가 신기한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디우르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한쪽에는 커다란 벽난로,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따뜻한 차와 간식이 제공됐다.
“중요한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이곳에서 편히 쉬고 계십시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럼…….”
디우르는 친절하게 안내를 끝내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방을 나서기 전, 리아네에게 잠시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시선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현 님. 저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와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저희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세요.”
“죄송합니다. 금방 다녀올게요.”
리아네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다른 일행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네프는 얼른 다녀오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고, 발레리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은율이는 가져다준 간식을 우물거리며 귀엽게 손을 흔들었다.
디우르와 함께 리아네가 떠나가고.
방 안에는 은율이가 간식을 먹는 소리만 들려올 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빠…….”
“은율아, 졸려?”
“우웅…….”
마차로 이동하느라 생긴 피로함과 방 안의 따뜻한 기운 때문에 은율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품에 안고 몇 번 등을 두드려주자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은율이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발레리안에게 아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리안 씨. 아까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요? 분명 우리는 도와주러 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뭔가 탐탁지 않아 보이던데요?”
“아아…… 시현 씨도 눈치채셨군요. 거기에는 깊은 사정이 있습니다.”
“……?”
발레리안은 은율이가 깨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페스투나 마을을 포함한 이 지역 전체가 지금은 마왕님의 통치를 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용마족들이 다스리던 곳입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건 전대 마왕님이 통치하시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전대 마왕님이 용마족 세력을 편입했다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물론 충성을 맹세한 대가로 용마족들에게 이곳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마왕성의 간섭도 거의 없는 편이고요.”
“흐음…….”
아직 발레리안의 설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대충 이곳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혔다.
“물론 용마족 세력의 편입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뤄진 건 아닙니다. 당연히 마왕님께 편입되는 걸 반대하는 용마족들도 적지 않았고, 그때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발레리안은 ‘크고 작은 사건’이라는 부분에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분명 카네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까 ‘디우르’라는 분이 촌장의 아들이라고 했죠?”
“네.”
“예전에는 부족장이라는 호칭을 썼었습니다. 마왕님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부족장 대신 촌장이라는 호칭으로 대체된 겁니다. 용마족들 사이에는 이런 변화를 굉장히 치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확실히 내가 용마족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우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주민들은 아마 반대쪽 부류의 사람들인 듯했다.
“이번에 제가 따라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껄끄러운 관계에 영향을 받아 시현 씨가 곤란해지면 안 되니까요.”
나는 이번 임무에 발레리안이 합류한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리안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 똑.
여자 용마족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손님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촌장님과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시현 씨.”
“네. 사장님은 여기 계속 있으실 건가요?”
카네프가 푹신한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거기는 뭐하러 가. 귀찮은 일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대충 카네프의 반응을 예상하였기에 나와 발레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은율이 좀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
나는 잠든 은율이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카네프는 은율이를 안아 들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둘의 편안한 모습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갈까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발레리안과 나는 여자 용마족을 따라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건물 밖으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우리를 커다란 건물로 안내했다. 우리가 처음 안내받았던 곳은 아마도 손님들이 머무는 건물인 듯했다.
잠시 후.
“여기입니다.”
여자 용마족은 커다란 방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방문을 두드려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똑. 똑.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방문 안쪽에서 들려오던 대화 소리가 뚝 끊겼다. 곧이어 안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을 안으로 모셔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방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자연스럽게 안내하던 용마족 여자가 우리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길고 커다란 탁자였다. 그 탁자의 끝에 높고 화려한 의자에 앉은 용마족이 보였다.
대표로 보이는 그 용마족은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과 잔주름이 가득했다. 적지 않아 보이는 나이에도 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여기로 오시오. 중요한 손님들을 위해 미리 자리를 마련했소.”
나와 발레리안은 탁자 끝에 비어 있는 자리로 향했다.
“…….”
“…….”
“…….”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탁자 주변에 수많은 용마족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중에는 리아네와 우리를 맞아주었던 디우르도 있었다.
용마족들의 시선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직접 마중을 나갔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오. 나는 페스투나의 촌장을 맡고있는 ‘바단’이라고 하오.”
“시현 레프미어 카디스입니다.”
“펠린츠 가문의 발레리안입니다.”
“귀한 손님들이 미처 여독을 풀기도 전에 부르게 되어 면목이 없지만,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오. 마을의 명운이 걸려 있는 문제라…….”
“괜찮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세요.”
“사태의 심각성은 저희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예의를 차리고 있을 순 없지요.”
우리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촌장 바단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은 마왕성을 통해 전해 들었으리라 생각되오. 마을의 전사들과 마왕성의 지원 병력으로 최대한 저지하고 있지만, 문제가 되는 야쿰 무리는 이미 마을에 지척으로 다가와 있소.”
“끄응…….”
“하아…….”
야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탁자 주변에서 한숨과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들이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곧바로 체감됐다.
“주민들의 불안과 걱정이 날로 커지는 데다가, 저지선이 더 밀린다면 마을의 모든 인원을 대피시켜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오.”
바단은 나를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카디스 영지와 이곳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대에 관한 소문은 나도 몇 번이나 들었소. 모두 다 믿기 힘든 이야기들뿐이었지.”
“…….”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소. 이때를 놓치면 정말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오.”
그는 간절함을 담아 물었다.
“카디스 영주. 우리가 당신을 믿고 맡겨도 되겠소?”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촌장님, 그 소문을 진짜로 믿으시는 겁니까?”
“…….”
누군가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