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59화
혼돈의 용마족(2)
-두두두두!
-두두두두!
야쿰 무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지진이 일어난 듯한 진동이 발밑에서 느껴졌다. 몇몇은 그 숨 막히는 압박감에 자세가 흔들릴 정도였다.
“하르간! 하르간! 정신 차려라.”
“…….”
디우르의 다급한 부름에도 하르간은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게 허공을 바라봤다.
“가스트라 님…… 어째서…… 어째서 저희를…….”
“큭큭. 애초에 너희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저 나의 목적을 이뤄주기 위한 도구였을 뿐.”
“마왕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일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말도 거짓이었던 겁니까?”
“일족? 푸하하핫! 내가 왜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 써야 하느냐? 붉은 비늘 일족의 일 따위는 나의 위대한 목표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좌절하는 하르간의 모습에 가스트라는 더없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저 멍청한 녀석…….”
완전히 의지를 잃어버린 하르간.
디우르는 그에게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돌려 뒤의 전사들을 바라봤다.
“너희들도 얼른 대형을 갖춰라!”
“하, 하지만…….”
“무단으로 마을을 벗어난 죄는 나중 문제다. 일단은 저 야쿰들이 마을로 향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아직 전사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면, 마을의 안전을 위해 힘을 보태라!”
“아, 알겠습니다!”
디우르는 하르간의 전사들까지 지휘하며 빠르게 대열을 갖췄다. 순식간에 많은 인원이 합류해 대열이 더욱 단단해졌지만, 야쿰 무리는 여전히 거침없이 돌진해왔다.
잠시 후.
야쿰과 용마족 전사들이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콰아앙!!
-부우우우우!!
-으아아악!
엄청난 충돌음들이 터져 나오고.
곳곳에서 야쿰의 울음과 전사들의 비명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난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세는 점점 야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저희도 합류해야겠습니다.”
발레리안은 용마족 전사들을 돕기 위해, 마왕성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합류했다.
“오랜만에 힘 좀 쓰겠군요.”
발레리안의 주변에서 수십 개의 황금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그 빛무리들은 빠르게 야쿰 쪽으로 쇄도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가앙!!
-부우우우…….
빛무리의 폭발과 함께 거대한 덩치의 야쿰이 몸을 비틀거렸다. 난폭한 돌진을 주춤거리게 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리안 씨…… 엄청 강하시네요?”
아무래도 항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에, 이런 강한 면모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발레리안은 내 반응이 조금 부끄러운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괴물 같은 단원들과 비교하면 약한 편이지만, 저도 한때는 검은수리단의 단원이었으니까요.”
나는 발레리안이 검은수리 단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도대체 ‘검은수리’라는 단체는 어떤 곳이었을까……?
내가 잠시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치열한 전투는 계속됐다.
야쿰의 압도적인 힘에 전사들은 크게 다치면서도 악착같이 버텨냈다.
처절하게 버티는 모습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끝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때.
-무우우우우!!!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요 며칠 동안 나를 졸졸 따라다녔던 작은 야쿰이었다.
녀석은 평소에 보여주던 겁 많고 순진한 모습이 아니라, 광기에 물든 눈동자로 무작정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 안돼! 잠깐만!”
나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등 뒤에서 당황한 발레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시현 씨? 이런…… 마왕성의 병사들은 들어라! 지금 당장 카디스 영주님을 엄호해라!”
“예!”
“예!”
멀리서 디우르가 작은 야쿰을 공격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디우르 씨! 잠시만! 공격하면 안 돼요!”
“예?”
나는 디우르를 말리면서 작은 야쿰을 감싸듯 껴안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인데, 지금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강하게 몸부림쳤다.
-무우우! 무우우우!
-콱!
작은 야쿰은 내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나의 팔을 강하게 깨물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윽!!”
“시현 씨!”
“카디스 영주님!”
발레리안과 디우르가 깜짝 놀라며 나를 불렀다. 나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면서, 나머지 팔을 흔들어 두 사람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무으으…….
계속 팔을 물고 늘어지는 작은 야쿰.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녀석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금방 원래대로 고쳐줄게.”
나는 오히려 작은 야쿰을 안심시키며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교감 능력을 사용해 녀석의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촤르르르륵.
순순함이 가득한 마음속에 불길한 붉은 사슬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 마리의 뱀처럼 내면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어린 야쿰의 내면을 광기로 물들게 했다.
광기에 물든 야쿰들을 되돌리려면.
저 붉은 사슬을 없애야 해!
붉은 사슬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양쪽 팔에서 또 다른 붉은 사슬이 생겨났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작은 야쿰 내면의 붉은 사슬과 내가 소환한 붉은 사슬이 서로 얽히더니,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서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두 사슬의 치열한 싸움 끝에.
나의 붉은 사슬이 상대를 제압하고 흡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대를 먹어치운 붉은 사슬은 느긋하게 나의 팔로 되돌아왔다.
-무우우……?
내면에 붉은 사슬을 없애자마자 작은 야쿰은 평소의 순진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녀석은 내 팔을 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 입을 뗐다.
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물렸던 곳에는 이미 피가 흘러나와 옷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작은 야쿰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어쩔 줄 몰라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을 껴안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많이 무서웠지?”
-무우우우…… 무우우우…….
작은 야쿰은 내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면서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을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상처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계속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발레리안과 디우르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지켜봤다.
“호오? 여기에 ‘혼돈의 사슬’을 다루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
“……!”
“당신은……!”
‘가스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용마족이 어느새 다가와 나와 작은 야쿰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오늘은 운이 좋군. 원래 목표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장난감도 제 발로 굴러들어올 줄이야.”
“시현 씨, 뒤로 물러서세요!”
발레리안과 디우르가 앞으로 나서며 가스트라와 맞섰다.
“가스트라. 페스투나는 당신이 나고 자란 고향인데. 어떻게 이런 짓을?”
“바단의 아들인가?
“당장 야쿰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이곳을 떠나시오! 우리는 아직 당신이 저지른 죄악을 잊지 않았소.”
“눈치 없게 당당한 행동은 아비를 쏙 빼닮았군…… 비켜라! 지난날의 인연을 생각해서 물러날 기회를 주겠다.”
디우르는 대답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빠르게 휘둘렀다. 옆에 있던 발레리안도 빛무리를 소환해 공격했다.
-까앙!
-콰콰광!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기습 공격은 가스트라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 버러지들이…….”
눈살을 찌푸린 가스트라가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그 손길에 따라 거대한 붉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사방을 휩쓸었다.
“으으으윽?!”
“커헉!”
발레리안과 디우르가 붉은 기운에 휩쓸려 튕겨 나갔다. 주변에 있던 용마족 전사, 마왕성 병사들도 그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오로지 나와 작은 야쿰만이 붉은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가스트라는 남아 있는 우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다가왔다.
-무우우우…….
“괜찮아. 괜찮아.”
가스트라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작은 야쿰이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입으로 괜찮다는 말을 중얼거렸지만, 가스트라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두려운 감정이 담겨 사정없이 흔들렸다.
“카디스 영주? 시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상관없겠지. 저쪽 세계에서 느긋하게 놀아보자고.”
가스트라가 나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콰아앙!!
또 다른 붉은 기운이 그를 강타했다.
“시현에게 손대지 마!”
붉은 비늘로 뒤덮인 꼬리와 날카로운 손톱.
익숙한 뒷모습을 가진 용마족이 내 앞을 막아섰다. 거칠어진 말투에서 금방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다.
“리아네 씨, 아니, 리아네 누님!”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나의 안전을 확인하고,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앞쪽을 노려봤다.
가스트라는 약간 충격을 받았는지 팔을 부르르 떨면서도,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이런. 아버지가 상대해 주지 않아서 귀여운 딸이 화가 많이 났구나?”
“아버지라고 말하지 마! 나에게 가족은 어머니와 오빠뿐이니까.”
“큭큭, 부정하려고 해도 소용없단다. 세상에는 끊을 수 없는 사슬로 이어진 운명이 있지. 너와 나는 그런 운명으로 이어져 있는 거란다.”
“헛소리 집어치워! 그 질긴 악연. 오늘 내 손으로 끊어낼 거야. 너를 죽여서라도…….”
리아네 누님은 이전에 본 적 없는 거친 기운을 내뿜었다. 그것은 가스트라가 보인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마음껏 분노하고 살의를 불태워라. 네가 그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더욱 완전한 모습으로 거듭날 테니까.”
“닥쳐!”
리아네는 붉은 잔상을 만들어내며 가스트라에게 쏘아져 나갔다. 둘은 한 덩어리로 얽혀 먼 곳까지 튕겨 나갔다.
나는 두 사람이 멀어진 곳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한편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또 다른 위협이 나에게로 향했다.
-부우우우우!!!
폭주하는 야쿰 한 마리가 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주변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작은 야쿰이 내 품에서 빠져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무우우! 무우우!
녀석은 필사적으로 울음소리를 내며 폭주하는 야쿰을 막아보려 했지만, 광기에 휩싸인 야쿰은 그 울음소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야쿰을 짓밟을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위험해!”
나는 몸을 날려 작은 야쿰을 감싸 안았다. 곧 있을 충격에 대비하며 웅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
“……으음?”
한동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조용히 눈을 떠 앞을 바라봤다.
-촤르르르륵!
-화륵!
“도대체 이 녀석들은 왜 한밤중에 난리야! 온천에서 몰래 술이나 마시려고 했는데…….”
「동감이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