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61화
혼돈의 용마족(4)
카네프는 나를 어깨에 짊어진 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빠른 속도로 인해 주변을 휘감는 바람이 따갑게 느껴졌다.
어지러움에 정신을 반쯤 놓으려던 그때, 카네프는 점차 속력을 줄여 나갔다.
“정신 차려. 곧 도착할 테니까.”
“으으으…… 리아네 씨는 괜찮겠죠?”
“아직 그녀의 기운은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가 알던 리아네의 모습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는 조금씩 불안감이 자라났다.
잠시 후, 우리는 주변 환경이 처참하게 파괴된 장소에 도착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가스트라에게 붙잡힌 리아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아네 씨~!”
나의 외침에 축 늘어져 있던 그녀가 움찔 몸을 떠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반응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카네프가 나를 내려주는 동안 우리를 발견한 가스트라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오! 이게 누구신가? 그 유명한 검은수리 단장님 아니신가?”
“재수 없게 친한 척하지 마. 그리고 단장 일은 예전에 그만뒀어.”
“단장을 그만뒀다고? 꽤 쓸 만한 부하들인 것 같았는데, 설마 전부 죽기라도 한 것인가?”
“몰라. 그 말 안 듣는 놈들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단장 일에서 완전히 손 씻고, 농장에서 느긋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 뿐이야.”
“농장? 크하하하하하!!”
가스트라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검은수리 단장님께서 농장 생활을 즐기고 있다니!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이곳의 소식에 무관심했었나 보군.”
“그렇게 마계 소식에 어두운 걸 보면, 나한테 형편없이 깨지고 도망쳐서 지금까지 숨어 있었나 보네? 내가 어지간히 무섭긴 했나 봐?”
“…….”
카네프는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와 행동으로 상대를 도발했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가스트라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단장은 그만뒀어도. 그 재수 없는 말투와 얼굴은 여전하군.”
“큭큭, 당연하지. 너처럼 잘난 척하는 놈의 썩어가는 표정을 보는 게 내 삶의 소소한 행복이거든.”
사장님…….
거참 심하게 삐뚤어진 소확행이네요.
가스트라는 넘실거리는 살기와 분노를 감추며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는 안부 인사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친한 척은 자기가 먼저 해놓고…….”
“애초에 너희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내가 아니지 않나?”
그는 붙잡고 있던 리아네를 우리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그녀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가스트라에게 붙잡혀 온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
“리아네 씨!”
나의 외침에도 리아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스트라는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의식이 없는 그녀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정도면 딸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할 관객으로 충분한 것 같군. 나 혼자서 구경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장면이라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가스트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던 리아네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리, 리아네 씨?”
“쳇…….”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을 더듬었고, 카네프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강하게 혀를 찼다.
“크르르르…….”
거의 온몸을 뒤덮은 붉은 비늘. 더욱더 날카로워진 손톱과 거대해진 뿔. 그리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매번 깔끔하고 정갈한 옷차림에 따뜻한 차향이 느껴지던 메이드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현, 예전에 야유회 때 기억나?”
“기억…… 나요.”
예전 야유회 때 리아네가 폭주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리아네 안의 또 다른 존재, 리아네 누님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때 리아네를 공격하던 나를 네가 말렸었지. 이런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카네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붉은 기운에 휩싸인 리아네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앙!!”
-까앙!!
그녀의 공격을 카네프가 사슬로 막아냈다. 그는 힘겹게 공격을 버텨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검은수리 단장이던 시절. 단원 중에 용마족이 한 명 있었다. 틈만 나면 고향에 남겨둔 귀여운 여동생을 자랑하던 실없는 놈이었지.”
“설마…….”
“그 용마족도 저 빌어먹을 놈 때문에 완전히 광기에 물들어버렸다. 그 녀석은 완전히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에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
“실없는 놈이긴 했어도 실력은 뛰어났던 녀석이라 내가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녀석을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뿐이었다.”
카네프와 리아네, 그리고 그녀의 오빠.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알게 됨과 동시에 지금 카네프가 느끼고 있을 감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녀석은 죽기 직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고향에 남겨진 동생을 부탁한다고. 그리고…… 만약에 동생도 이 저주받은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끝내 달라고.”
“아…….”
카네프는 리아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서는 평소의 나른함과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깊고 맑은 눈동자에는 올곧은 의지가 느껴졌다.
“시현,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녀석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야. 지독한 광기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여기서 끊어내는 거야.”
“크와아앙!!”
-카아앙!!
흥분한 리아네가 재차 공격을 이어나갔다. 카네프는 다급하게 내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그러니 시현! 네가 찾아내라! 나의 방법이 올바르지 않다고 한 건 네 녀석이었으니까!”
카네프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본격적으로 리아네와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