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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1)화 (27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1화

불청객(5)

“무슨 말씀인지 알겠으니까, 일단 고개부터 드세요.”

당황한 나는 일단 아크의 부담스러운 행동부터 저지하려 했다. 수차례 말을 건넨 끝에 내려가 있던 그의 고개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갔다.

부담스러운 행동은 멈췄어도 절박하게 호소하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아크 심판관님께서 저를 인정해 주시는 건 정말 기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런 엄청난 일을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시현계라고 불리는 곳도 우연히 만들어진 거지, 제가 원해서 만들어낸 곳이 아니거든요.”

아크는 나의 능력을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창조의 영역’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나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시현계를 이용해 용마족 마을에서 야쿰을 데려온 일도 그랬다. 나의 능력이 대단했다기보다는 릴리아가 연구한 ‘차원문 장치’의 역할이 컸다.

뒤틀린 차원의 균형? 창조의 영역?

갑자기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해봤자 나에게는 무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크는 나의 완곡한 거절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네. 갑자기 찾아온 늙은 천족이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생각하겠지.”

“아, 아뇨.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그럼 이야기를 바꿔서 한번 물어보겠네.”

“……?”

“만약에 자네가 소중히 지켜온 이 농장과 식구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면…….”

“……!”

“그때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손 놓고 있을 생각인가?”

아크의 질문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가 협박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크는 금방 내 속마음을 눈치채고 뒤에 말을 덧붙였다.

“이건 협박이 아닐세. 차원의 균형이 이대로 계속 뒤틀린다면, 정말로 자네와 그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네. 그렇지 않나?”

그는 시선을 돌려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대화를 넘겨받은 발레리안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아크 심판관님의 말대로 정말 차원의 균형이 계속 뒤틀리고 있다면, 농장은 물론이고 마계와 지구에도 분명 피해가 있을 겁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자네의 능력을 알아채고, 좋지 않은 의도로 접근하는 놈들이 생겨날걸세. 가스트라처럼 말이지. 당연히 그놈들은 자네와 그 주변을 노릴 거라네.”

내 주변을 노릴지도 모른다…….

만약에 가스트라 같은 놈들이 농장에 쳐들어온다면?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내 주변에 있는 모두가 휘말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솟구쳤다.

불안해하는 나의 머리를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카네프가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이 녀석을 노려? 오히려 잘됐네. 꼭꼭 숨어 있던 녀석들이 제 발로 찾아와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지. 가끔 무료할 때마다 찾아오면 심심풀이로 딱 알맞겠어.”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현 님. 이 농장을 건드리려면 만만찮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맞아요, 시현 선배. 저번에는 제가 함께 가지 못해서 활약을 못 했지만. 다음에는 꼭 수련의 성과를 보여드릴게요.”

-꼬옥.

옆에 있던 리아네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그녀의 푸근한 미소로 마음속의 불안함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농장 식구들은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지지해 줬다. 방금 불안함에 떨던 내 모습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든든한 모습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아크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자네는 정말로 이곳의 마족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먼.”

“저한테는 모두 과분한 인연이죠.”

“좋은 인연이란 건 단순히 이어지는 게 아니지. 자네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좋은 인연이 따라온 걸세.”

아크의 말에 쑥스러움과 함께 뭉클해지는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마계에 와서 얻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시현계, 창조의 능력 같은 게 아니었다.

농장 식구들과 맺어진 인연.

그것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아…….”

나는 심호흡하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복잡한 이야기로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시원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차원의 균형, 창조의 힘…….

나에게는 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농장 식구들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무섭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의 능력이 꼭 필요하다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한번 해볼게요.”

내가 결심한 표정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아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생겨났다.

“그거면 충분하네. 바로 내가 원하던 대답일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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