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6)화 (27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6화

두 번째 야유회(5) 

“그런데, 마왕님께서 갑자기 왜?”

“하하.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발레리안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는 야유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보다 빠르게 업무를 처리했는데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모습에 마왕성 쪽에서 이상함을 느끼게 됐단다.

이 소식은 곧바로 마왕의 귀까지 들어갔다.

그래서 발레리안은 마왕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설명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농장의 아유회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마왕님께서 야유회에 큰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저쪽 세계의 야유회 문화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드렸더니,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많은 선물을 준비해 두셨더군요.”

“대충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 이 선물은 야유회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왜 이런 행사가 있으면 참가자들의 적극성을 끌어올리려고 경품 같은 걸 준비하지 않습니까?”

“아아…….”

나는 그제야 이 선물들의 의미를 깨달았다.

회사 야유회가 열리면 회사 측에서 여러 가지 경품들을 준비한다. 우리 농장도 엄밀히 따지면 마왕성에 소속된 곳이었으니까, 회사의 상황을 대입하자면 이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카네프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 야유회에 마왕 회장님께서 경품을 지원해 준 느낌이랄까?

“저번 용마족 마을의 문제를 해결한 업적을 생각해서, 겸사겸사 이 선물들을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야유회 준비 비용도 전부 마왕성 쪽에서 지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마왕님이 지원해 주는 야유회라니?!

두 단어가 이어진 것만으로도 오묘한 울림을 낳았다.

“사실은 마왕님꼐서 직접 야유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말까지 하셨는데…….”

“……?!”

“워낙 바쁘신 분이라 아쉽게도 선물만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건 참 아쉬운 일이네요.”

마왕님이 직접 참석할 뻔했다는 이야기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발레리안은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말없이 미소 지었고,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리안 오라버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봐도 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릴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왕님의 선물을 기대감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모두 확인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대신 귀한 물건도 있을 수 있으니 확인할 때 조심스럽게 해주세요.”

발레리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왕 회장님께서 보내신 선물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귀금속부터, 화려한 장신구, 신기한 과일, 신비함이 느껴지는 약초까지. 선물 하나하나가 손대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응?”

나는 작은 상자 안의 내용물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후덜덜한 선물들과는 달리 상자 안에는 달랑 편지 한 장만 들어 있었다.

겉 부분에 알아볼 수 있는 글은 전혀 적혀 있지 않았고, 편지가 봉인된 부분에는 ‘큰 바늘을 문 새’ 문양이 찍혀 있었다.

“리안 씨, 이 편지는 뭐죠?”

“아! 그건 편지가 아니라 초대장입니다.”

“초대장?”

발레리안은 새 문양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문양은 마왕성 소속의 재단사들을 나타내는 문양입니다. 그 초대장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그 재단사들에게 옷 주문을 맡길 수 있습니다.”

“으음…… 귀한 건가요?”

“귀하냐고요? 시현 씨께서 그 초대장을 팔겠다고 하면 발 벗고 나설 귀족들이 최소 수백은 될 겁니다. 마왕성 재단사에게 옷을 주문한다는 것은 마계 귀족에게 최고의 영예이자 자랑거리입니다. 단순히 가치로 따지기 힘든 물건이지요.”

“리안의 말대로입니다. 슈나르페 가문에서도 마왕성 재단사에게 옷을 맡긴 사람은 제 아버지뿐입니다.”

발레리안의 뒤를 이어 안드라스도 설명을 덧붙였다. 두 사람의 설명을 들으니 이 편지의 가치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 그런가요?”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에 든 편지를 바라봤다. 가만히 들고 있기도 부담스러워 편지가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상자 안에 넣었다.

선물이 거의 다 공개됐을 때쯤.

리아네가 세로로 긴 상자 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검은색 배경에 은색 문양이 새겨진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이었다.

“으음? 이것도 술인 건가요?”

대수롭지 않게 술병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리아네. 그 모습을 발견한 누군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자, 잠깐만! 리아네, 거기 가만히 있어!!”

“예?”

커다란 외침의 주인공은 카네프였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리아네 손에 들린 술병을 가로챘다.

“이, 이건 ‘마지막 숨결’이잖아?”

마지막 숨결?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저렇게 놀란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심상치 않은 물건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이번에도 발레리안에게 물었다.

“저 술이 뭐길래 사장님이 저러는 거죠?”

“술을 좋아하는 마족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술로 불리는 물건입니다. 아주 오래전, 술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장인이 쌓아온 비법을 총동원해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듣기만 해도 굉장히 특별해 보이네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술을 만든 장인이 제작법을 남기지 않은 바람에 더욱 구하기 힘든 물건 돼버렸죠. ‘마지막 숨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엄청 귀한 물건인 거죠?”

내 질문에 발레리안은 카네프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렇게 흥분한 카네프 님은 저도 처음 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한 것 같네요.”

발레리안의 말대로 카네프는 아직도 술병을 붙잡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리안 씨?”

“예, 시현 씨.”

“야유회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준비된 것들이 너무 화려한데요?”

보통 야유회에 준비된 경품이라고 하면.

1등, 2등 상 정도만 조금 비싼 물건이고 나머지는 생필품이나 값싼 물건으로 하지 않나? 회사 로고가 박힌 기념 수건 같은 거.

“하하. 보통은 그렇지만, 마왕님의 위엄이 걸린 일이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체면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으음…….”

설명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마왕성 문양이 그려진 수건이 선물로 왔다면 좀 없어 보이일 것 같긴 해.

잔뜩 쌓인 선물들로 설레는 농장 식구들 앞으로 발레리안이 나섰다.

“여러분들. 일단 구경하신 선물들은 제자리에 놓고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그러면서 품 안에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여기 마왕님의 인장이 찍힌 서류입니다. 형식적인 서류이긴 해도 저에게는 이것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

“아! 그래서 리안 씨가 직접 마차를 몰겠다고 한 거였어요?”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선물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요.”

일단 농장 식구들은 발레리안의 말대로 선물들을 제자리에 돌려놨다.

그리고 미련이 남는 눈빛을 한 채 조심스럽게 멀어졌다. 특히 카네프는 뒤로 물러나면서도 ‘마지막 숨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애가 타는 농장 식구들 대신 내가 나서서 발레리안에게 물었다.

“리안 씨, 그냥 선물을 가져가면 안 되는 건가요?”

“물론 그냥 나눠드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

그는 농장 식구들을 둘러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저는 이 선물들을 이번 야유회에 경품으로 걸 생각입니다. 마지막에 제비뽑기로 각 선물의 주인을 정하는 거죠.”

경품…….

제비뽑기…….

사람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근데 제비뽑기로만 정하면 시시하겠죠? 그래서 제가 간단한 게임들을 준비해 왔습니다.”

게임?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고 바빴을 텐데, 이런 것까지 준비해 오다니…… 여러 가지 의미로 발레리안이 대단해 보였다.

“게임에서 이기면 제비뽑기에 자신의 확률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게임에서 지면 원하는 선물을 얻을 확률이 낮아지겠지요.”

“…….”

“…….”

“…….”

설명을 들은 농장 식구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경품으로 걸려 있는 선물들이 워낙 대단한 것들이다 보니 모두 눈빛이 장난 아니었다.

특히 카네프는 목숨을 건 결투라도 앞둔 것처럼 비장해졌다. 지난번 가스트라와 싸울 때보다, 지금이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발레리안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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