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8화
두 번째 야유회(7)
“룰은 간단합니다. 여기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린 다음, 제가 하는 질문에 ‘예’, ‘아니오’ 이렇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대답이 진실이라고 확인된다면 이름 1장 추가, 거짓일 경우에는 약간의 벌칙이 있을 겁니다.”
발레리안은 손에 든 진행 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질문은 개개인에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으니, 곤란하시다면 묵비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오늘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 온 걸 보면 저 진행 카드에 적혀 있을 질문들이 굉장히 두려웠다.
“그럼 누구부터 시작해 볼까요?”
“내가 먼저 할게.”
카네프가 먼저 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는 거침없이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리며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진실로만 대답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뭐 어렵다고…….”
“좋습니다. 그럼 카네프 님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와 봐. ‘마지막 숨결’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대답해 줄게.”
발레리안은 거짓말 탐지기의 작동을 확인하고, 진행 카드에 적힌 질문을 읽어나갔다.
“카네프 님의 질문입니다.”
“…….”
“최근에 나는 은율이와 몰래 소꿉놀이를 하는 걸 즐기고 있다.”
“……?!”
소꿉놀이? 사장님이?!
농장 식구들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카네프를 바라봤다. 그는 아까의 여유롭던 모습은 사라지고, 굉장히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질문이 뭐 이따위야?”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건 즐긴 게 아니라. 은율이가 계속하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부연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주세요. 늦으면 대답을 거부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끄으응…….”
카네프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마지막 숨결’과 거짓말 탐지기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맞아.”
-두두두두두둥…….
-띠링!
거짓말 탐지기가 푸른빛을 내며 진실이라 판명했다.
“진실입니다! 카네프 님은 질문에 진실로 대답했으므로 제비뽑기에 이름을 한 장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카네프는 제비뽑기에 이름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지만,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한편, 농장 식구들은…….
“카네프 님이 은율이를 아끼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저도요. 카네프 님이 소꿉놀이라니……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오랫동안 카네프를 지켜봤던 안드라스와 리아네는 그의 다른 면모에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리안 오라버니. 근데 그 소꿉놀이 이야기는 누가 해준 거야?”
“…….”
릴리아의 물음에 카네프도 곧바로 반응했다. 눈에 위험한 기운을 가득 담고 발레리안을 노려봤다.
나도 비밀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발레리안은 농장에서 지낸 시간이 짧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직접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고, 분명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압박에도 발레리안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하하, 질문에 출처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뿌득! 누군지 몰라도 걸리기만 해봐라…….”
“일단 카네프 님은 성공하셨고요. 다음 차례로 넘어가겠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카네프의 옆자리에 있던 엘프리드에게 넘어갔다. 엘프리드는 긴장한 표정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렸다.
“준비되셨죠?”
“으음…… 네.”
“그럼 질문입니다. 나는 얼마 전에 카네프 님의 비밀에 대해서 폭로한 적이 있다.”
“으아아! 발레리안 님?! 그걸 여기서 말씀하시면…….”
“너 이 자식??!”
아…… 엘린이었구나.
질문과 엘프리드의 반응을 보고 모두가 어떻게 된 일이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리안 씨 정말 악마네…….
한 순진한 마족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발레리안을 보며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아…… 그게…….”
“야. 너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손을 올린 거짓말 탐지기가 아니라, 카네프 탐지기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엘프리드를 압박했다.
“……꿀꺽.”
사색이 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는 엘프리드.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두두두두두둥…….
-띠링!
“엘프리드도 진실을 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비뽑기에 이름을 한 장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발레리안은 아주 뻔뻔하게 웃으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미 카네프에게 붙잡힌 엘프리드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카네프는 엘프리드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속삭였다.
“엘린…… 요즘에 대련 상대가 없어서 심심하지? 오랜만에 나랑 대련이나 할까?”
“괘, 괜찮습니다.”
“왜? 아주 진절머리가 날 때까지 상대해 주려고 했는데…… 싫어?”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자비를…….”
“잘못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카네프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 숨결’을 바라봤다. 눈치 빠른 엘프리드는 빠르게 대답했다.
“드,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걸리면 무조건 드리겠습니다.”
“……지켜볼 거야?”
엘프리드는 ‘마지막 숨결’에 당첨되면 무조건 카네프에게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다음 차례는 안드라스.
앞에서 엄청난 소란이 있었음에도,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안드라스 차례입니다. 준비됐나요?”
-끄덕.
안드라스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어떤 무서운 질문이 나올지 두려우면서, 동시에 살짝 기대감이 들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
“최근에 나는 누군가를 농장으로 데려와 은밀한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으음…….”
이번에도 쉽지 않은 질문.
리아네와 릴리아는 금방 연애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반면 카네프와 엘프리드는 금방 연합해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안드라스는 질문을 받은 순간에는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침묵을 유지했다.
“…….”
-두두두두두둥…….
-삐이익!!
-찌릿찌릿!
거짓말 탐지기가 붉게 빛나며 거짓 신호가 울렸다. 동시에 안드라스의 손에는 가벼운 전기 충격이 가해졌다.
“크흑…….”
“안드라스는 대답을 거부했습니다. 아쉽군요.”
살짝 실망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안드라스는 고개를 숙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재미로 하는 게임일지라도 장난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오! 안드라스 씨?
굉장히 듬직하고 남자다운 대답에 나는 내심 감탄을 터뜨렸다. 리아네와 릴리아도 의외의 모습에 깜짝 놀란 반응이었다.
“어머! 어머!”
“와아…… 오라버니 멋있다!”
반면에 카네프와 엘프리드는 더욱 못마땅한 얼굴로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
“우우우우∼!”
안드라스가 보여준 의외의 모습을 뒤로하고.
거짓말 탐지기는 계속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다음 차례의 릴리아가 받은 질문은…….
“나는 리아네가 아껴둔 케이크를 몰래 훔쳐먹은 적이 있다.”
“히끅!”
-두두두두두둥…….
-삐이익!!
-찌릿찌릿!
“꺄아악!”
거짓말 탐지기의 전기 충격에 릴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그녀는 눈동자를 촉촉하게 만들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미, 미안해. 리아네 언니. 냉장고에 케이크가 너무 맛있게 보여서…….”
“괜찮으니까 울지 마요. 대신 다음부터는 꼭 미리 말해줘요.”
“으아앙! 꼭 그렇게 할게.”
사과하는 릴라아를 리아네가 꼭 끌어안아 주며 마무리됐다.
이번에 거짓말 탐지기는 리아네 앞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굉장히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탐지기 위에 올렸다.
“리아네의 질문입니다.”
“네.”
“최근에 나는 농장 식구들 중에 굉장히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다.”
“……!!”
질문을 듣자마자 리아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얼마나 빨개졌는지 거짓말 탐지기가 내는 붉은색보다 훨씬 진해 보였다.
-힐끔힐끔.
-힐끔힐끔.
리아네는 귀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내 쪽을 힐끔거렸고, 다른 농장 식구들은 나와 리아네를 번갈아 힐끔거렸다.
나는 가슴이 간질간질하는 느낌을 받으며 괜히 아무것도 없는 먼 풍경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두두두두두둥…….
-띠링!
“결과는 진실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제비뽑기에 이름 한 장을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
“…….”
발레리안 혼자 싱글벙글한 미소로 진행을 이어나갔고, 나머지는 어색한 분위기에 조용히 눈치만 살폈다.
숨 막히는 어색함을 참기 힘들었던 나는 거짓말 탐지기를 내 앞으로 가져오며 말했다.
“리안 씨, 이제 제 차례죠? 질문해 주세요.”
“그럼 마지막으로 시현 씨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발레리안은 마지막 진행 카드를 넘기며 거기에 적힌 질문을 읽어나갔다.
“나는 농장 식구 중에 쓸모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움찔!
-움찔!
이번에는 질문을 들은 내가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이 몸을 움찔하며 떨었다.
뭐…….
누구라고 직접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맨 끝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굉장히 불안한 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스윽 한 번 둘러봤다.
이 질문이 뭐라고 모두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그렇게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두두두두두둥…….
거짓말 탐지기는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겨우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두두두두두둥…….
-띠링!
거짓말 탐지기는 푸른 빛을 내며 내 말을 진실이라 판명했다. 결과가 나오자마자, 농장 식구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현 님…….”
“크흠, 저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시현 님이 저희를 그렇게 생각하실 리 없죠.”
“저도 시현 선배를 믿고 있었어요.”
“시현 오라버니, 그럼 나도 도움이 된다는 거지? 헤헤.”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농장 식구들. 그리고 굉장히 불안해하던 한 사람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합니다. 시현 씨도 제비뽑기에 이름을 한 장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진실게임은 굉장히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