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83화
연결된 세상(3)
-……친구들의 정말 멋진 모험이었어요.
-다음 시간에 또 봐요. 안녕∼!
노트북 화면에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손을 흔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보고 있던 은율이도 거기에 맞춰 함께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영상이 끝나자마자 은율이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은율아, 더 보고 싶어?”
-끄덕끄덕.
내 물음에 은율이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그렇게 재미있어?”
“응, 너무 재밌어.”
“알았어. 잠깐만, 다음 편 틀어줄게.”
나는 화면에 표시된 수많은 관련 영상 중에서 다음 편을 찾아 재생해 주었다. 신나는 주제가와 함께 아까 보았던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다시 은율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요즘에 애 키우는 부모님에게 너튜브는 필수라더니…….
직접 경험해 보니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금방 알 것 같았다. 이 드넓은 세상 속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쉽게 끌 만한 컨텐츠가 무궁무진했다.
기운 회복을 위해 침대에 계속 누워 있어야 했던 은율이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게 다 릴리아 덕분인가?
지금 농장 주변에는 통신과 인터넷이 가능하게 됐다.
이것이 가능한 원리에 대해서 릴리아가 설명했었는데. 말이 복잡해서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다. 내가 이해한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지구와 마계가 중첩된 상태인 ‘시현계’에서 차원문 장치를 이용해 통신망을 끌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이 방식이 영구적인 건 아니다.
차원문 장치가 계속 통신망을 끌어오려면 꽤 많은 마력이 있어야 했고, 그 동력이 되는 마석을 계속 투입해 줘야 했다.
한 달 내내 통신망을 유지하기 위한 마석을 릴리아가 계산해 보니, 부담스러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마석이 소모됐다.
지금까지 농장에 통신망, 인터넷 같은 게 없어도 충분히 잘 지냈지만, 한번 직접 사용해 보니 은근히 편하고 좋은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
“어? 할머니한테서 전화 왔다.”
“할머니?!”
은율이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나는 노트북으로 영상 통화를 연결했다. 화면에 할머니의 얼굴이 보이자 은율이는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몸을 크게 움직였다.
“할머니!”
-오구, 우리 귀여운 은율이! 할머니 잘 보여?
“할머니 잘 보여.”
-이제 몸은 괜찮아? 아빠가 은율이 걱정을 엄청 하던데……
“나는 괜찮아. 하나도 안 아픈데 아빠가 침대에서 못 나가게 해.”
은율이가 볼을 빵빵하게 만들며 고자질하듯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그랬니? 계속 침대에 있어야 해서 지루했겠네. 그래도 아빠의 마음을 좀 이해해 주렴. 다 은율이를 아껴서 그렇게 하는 거란다.
“알았어. 조금 지루해도 아빠 말 잘 듣고 있을게.”
-어쩜 우리 은율이는 이렇게 예쁘고 말도 잘 들을까?
“헤헤.”
영상을 통해 바라보고 있지만, 은율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시현아.
“응, 엄마.”
-이렇게 바로 통화가 되니 정말 좋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통화할 수 있는 거니?
“그럴 것 같아.”
-그럼 전화 자주자주 해. 은율이 얼굴 보고, 목소리 들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네.
나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들 얼굴이랑 목소리는 안 좋아?”
-겸사겸사 같이 보면 좋지. 호호!
“쩝…….”
솔직한 어머니의 대답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어머니에게 나는 은율이의 덤 같은 취급을 받게 됐나 보다.
“나는 이제부터 할머니한테 매일 전화할게.”
-약속해 주는 거니?
“응, 약속!”
은율이는 귀엽게 입술을 앙다물며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호호! 고마워, 은율아. 그럼 내일부터 매일 은율이 전화만 기다려야겠네.
어머니는 은율이의 약속에 기분이 좋은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고 시현아. 요즘에도 농장 일이 많이 바쁘니?
“조금 있으면 겨울이라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많네. 내가 맡은 일들이 많다 보니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
-으음… 그렇구나.
바쁘다는 답변에 어머니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요즘 네가 너무 바빠 보이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돼서. 여기에 아이들이랑 쉬러 온 것도 오래됐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최근에 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은 외로우신 모양이었다.
“알았어. 겨울 준비가 다 마무리되고 여유가 생기면, 따로 시간을 내서 휴가 일정을 잡아볼게.”
휴가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끝으로 어머니와 영상 통화는 종료됐다.
“할머니 빨리 보고 싶다.”
은율이는 벌써 할머니 집에 가는 걸 기대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대충 휴가 일정을 계획하며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띠링!
응? 문자가 도착했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시현 오라버니.
-리아네 언니가 간식 가지고 올라갔어.
농장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소유 중인 릴리아의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리아네 씨? 들어오셔도 돼요.”
잠시 후.
리아네가 간식을 담은 쟁반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근처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저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릴리아가 휴대폰으로 미리 말해줬어요. 리아네 씨가 막 간식을 가지고 올라갔다고.”
“아…… 그렇군요.”
나는 리아네가 가져온 간식을 은율이에게 챙겨줬다. 은율이는 나의 관심이 기분 좋은지 행복한 미소로 간식을 받아먹었다.
은율이의 양쪽 볼이 다람쥐처럼 불룩해지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약간 이상함을 느끼고 옆쪽을 바라보았다.
“…….”
리아네가 우물쭈물한 모습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리아네 씨.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녜?! 아…… 그게…….”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슬쩍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아까 문자를 받고 꺼내놓은 휴대폰이 올려져 있었다.
“저걸로 릴리아랑 연락을 주고받으신 거죠?”
“맞아요. 릴리아가 통신망을 끌어오는 데 성공해서, 이제 농장에서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저 휴대폰이라는 게 있으면 시현 님이랑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가요?”
“네.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사진이나 영상을 보낼 수도 있어요.”
그녀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힐끗거리더니.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저도 가질 수 있나요?”
“……네?”
“저 휴대폰? 스마트폰? 이라고 불리는 물건. 저도 가지고 싶어서요.”
“으음…….”
스마트폰을 가지고 싶다?
리아네의 예상치 못한 부탁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는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부분 하나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편하고 좋은 물건이었다.
최근까지는 통신망의 부재로 그 편리함이 굉장히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제한도 사라져 자유롭게 많은 기능을 누리고 있었다.
마족이라고 해서 이런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모를 리 없었다.
“무리한 부탁을 이었나요? 죄송해요. 제가 귀한 물건에 쓸데없이 욕심을…….”
대답이 늦어지자 리아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아, 아뇨! 무리한 부탁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흔한 물건이에요. 저번에 저랑 같이 한국에 가셨을 때 많이 보셨잖아요.”
“그랬던 것 같기도하고…….”
“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리아네 씨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구해드릴 수 있죠.”
“정말요?”
리아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표정의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비용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맞춰서 준비해 놓을게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제가 선물해 드리면 되죠.”
“예? 안 돼요! 그러면 너무 죄송해서…….”
“괜찮아요. 리아네 씨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해드릴 수 있어요.”
그녀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너무 비싸지 않나요?”
“엄청 비싼 것도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최신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긴 했다. 그래도 리아네가 그동안 나를 위해 해준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었다.
이럴 때 쓰라고 모아둔 돈 아니겠는가?
안절부절못하는 리아네를 몇 번이고 안심시키며, 조만간 스마트폰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으음…….
그런데 마족도 스마트폰을 개통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