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84화
연결된 세상(4)
치료사 제록의 말대로 은율이는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좀 더 침대에 붙잡아 놓을까 고민도 됐지만, 은율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농장 식구들을 안심시켰다.
여우 소녀가 침대에서 얌전히 회복하는 사이.
우리는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도 간단히 의견을 나눴다.
그 일이 일어나던 당시 유일한 목격자는 나였다.
그때 내가 보았던 것은 아주 단순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공터.
그곳에 도착한 은율이가 무지갯빛 광채가 쏟아내더니, 공터는 순식간에 꽃밭으로 변했다.
그리고 모든 기운을 쏟아낸 은율이가 쓰러졌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안드라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터에 꽃밭을 만들었다 정도의 단편적인 상황으로 확신할 순 없지만…… 이건 혹시 천족이 말한 창조의 힘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조의 힘…….
안드라스의 추측에 농장을 방문했던 천족들을 떠올렸다.
“잠깐만요. 꽃밭을 만들어냈다는 건 은율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천족의 말대로라면 은율이가 아니라 시현 선배가 그 힘을 사용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네요.”
“앞뒤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쪽이 더 자연스럽긴 하지.”
엘프리드가 의문을 제기했고, 뒤이어 리아네와 카네프도 동감을 표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엘린 군의 말대로 시현 님이 그 힘을 사용했다는 게 앞뒤 상황이 맞아떨어지는데…….”
모두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
릴리아가 슬쩍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혹시 은월족 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으음?”
“……?”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예전에 책에서 본 적 있는데. 몇몇 은월족 사람들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대.”
“신비한 능력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봤습니다. 은월족은 그 능력을 섬기는 신의 축복이라고 여긴다더군요.”
“은율이도 그런 능력을 타고났을 수도 있잖아?”
릴리아와 안드라스가 은월족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리아네는 뭔가 생각해낸 듯 손뼉을 짝 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은월족 분들이 농장에 찾아오셨잖아요?”
“아∼ 기억난다. 그 녀석들 겁도 없이 남의 농장에 침입해서 은율이를 데려가려고 했었지.”
“그분들이 그렇게 은율이를 데려가려고 했던 게, 어쩌면 이번 일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요?”
리아네의 새로운 추측에 다시 한번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추측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해답에 도달하기에는 모두 부족해 보였다.
카네프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침묵을 깨뜨렸다.
“아으! 머리에 쥐 나겠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제한적인 정보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안드라스의 말대로 이 문제는 보류하는 데 모두 동의했다. 동시에 은율이는 당분간 시현계의 진입을 금지하는 것으로 정했다.
시현계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궁금한 점은 많지만, 은율이의 안위를 담보로 할 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은율이의 안전이 모두에게 가장 최우선이었으니까.
복잡한 이야기가 끝난 덕분인지 카네프는 조금 후련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시현, 너 우리한테 뭐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아요. 잠시 부탁드릴 게 있어서……! 잠시만요.”
나는 가방에서 준비한 서류를 꺼내 한 장씩 나눠주었다. 농장 식구들은 서류에 적힌 처음 보는 문자에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시현 님, 여기에 적힌 건 하나도 못 읽겠는데요?”
“저도…….”
“이건 시현 님 고향에서 사용하는 문자군요. ‘한글’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한글?”
그 와중에 한국에서 몇 개월 동안 생활했던 릴리아가 서류의 윗부분을 읽어나갔다.
“신규 폰…… 가입 신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