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87화
너튜브 진출?(3)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나와 발레리안은 일단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천족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이군.”
아크 심판관이 대표로 우리의 인사를 받았고, 뒤에 서 있던 아슈미르와 클라우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약간 어색한 분위기 속에 발레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흠, 흠. 저번부터 계속 불쑥불쑥 찾아오게 되는구먼. 정말 미안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다네.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는가?”
“저는 괜찮습니다.”
발레리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크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 눈빛이 ‘너는 어떠냐?’라고 묻는 듯했다.
“아…… 저도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그렇게 많은 시간은 뺏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럼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발레리안은 천족들을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아크가 테이블에 앉자 나머지 두 천족이 그를 호위하듯 뒤에 자리 잡았다.
“죄송합니다.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모자라서.”
“저희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슈미르와 클라우는 자리에 서 있는 게 임무라도 되는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시현, 자네에 대한 천족의 논의가 끝났음을 알려주고, 또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야.”
“저에 대한 천족의 결정이라면…….”
“자네가 위험한 인물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인지 판단하는 논의를 말하는 걸세. 그리고 얼마 전에 그 논의가 끝났다네.”
“……?”
저번에도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최대한 절제하려고 해보았으나, 나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감정이 얼굴로 드러났다. 아크는 내 표정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천족이 원래 그런 종족인 걸 어쩌겠나? 거기다 자네에 관한 일들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시간이 걸린 거라네.”
“으음…… 그렇군요.”
“아크 심판관님, 그래서 천족은 시현 씨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린 겁니까?”
“지난번에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현에 관한 결정은 잠시 보류해두기로 했네.”
보류.
농장에 찾아왔을 때도 아크 심판관은 천족들이 결정을 보류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당장 천족이 나를 잡으러 오지 않는다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돌려서 말하면 언제든 결정이 뒤봐뀔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보류라는 소식에 내가 애매한 표정을 짓자, 아크는 나를 위로하듯 말을 덧붙였다.
“보류라는 결정에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나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네. 자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면 자연스레 천족의 생각도 바뀌게 될 테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내 말을 믿어보게.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덕분에 불편했던 감정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 소식을 전해주러 여기까지 찾아오신 건가요? 편하게 전화로 연락해 주셔도 됐을 것 같은데.”
“이 소식을 전하는 것 말고,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말이야.”
“……?”
“혹시 ‘마계소녀’라는 너튜브 채널 알고 있나?”
“……?!”
“최근에 그 ‘마계소녀’라는 채널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올려 큰 화제가 된 거로 알고 있는데.”
‘마계소녀’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나와 발레리안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아크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 반응을 보니 역시 자네와 연관이 있었군.”
“…….”
“영상에서 노래를 부른 어린 소녀가 자네의 딸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
거기까지 알고 찾아오다니…….
발레리안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발레리안도 이렇게 빠르게 천족이 나설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혹시 은율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대답을 잠시 망설였지만, 어설픈 거짓말로 넘어갈 수는 없어 보였다.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제 딸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얼마 전에 올렸었죠. 하지만 금방 영상을 내렸습니다. 채널도 비공개로 전환했고요.”
“그것도 알고 있다네.”
그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면서 불편한 기색을 팍팍 드러냈다. 아크 심판관을 만나 본 이후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시현, 이번 일은 아주 실망스러웠다네. 도대체 왜 그런 건가?”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 쓰지 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아크 심판관님! 그 영상을 많은 사람이 본 건 사실이지만, 천족이 관여할 만큼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거기다 영상도 빠르게 내려갔고요.”
발레리안은 자리에 반쯤 일어날 정도로 격하게 나를 변호했다. 하지만 아크는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
“그게 문제라네.”
“…….”
“…….”
“도대체 왜 영상을 내린 건가?”
“……예?”
“……?”
“채널 구독하고 ‘좋아요’도 눌러주고 앞으로 어떤 영상을 올려줄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왜 채널을 비공개로 돌린 건가?”
아크의 말에 ‘내가 혹시 잘 못 들었나?’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발레리안의 얼빠진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잘못 들은 건 아닌듯했다.
“저…… 아크 심판관님께서 그…… 구독을 하셨다고요?”
“아∼암! 물론이지. 노래 너무 잘 들었다고 댓글도 달아줬다네.”
“…….”
“그리고 영상이 어설픈 건 초보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음질 상태는 왜 그래? 이렇게 좋은 노래를 겨우 그 정도로밖에 전달하지 못하다니! 이게 죄가 아니면 뭐가 죄란 말인가?”
아크는 얼굴이 살짝 붉어질 정도로 화를 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준비한 영상이라 미흡한 부분이…….”
“흠흠, 나도 조금 과하게 흥분했군. 아무튼, 다음번에 영상을 만들 때는 그 부분을 잘 신경 써줬으면 좋겠네.”
“자, 잠시만요. 마계에서 영상 올리는 건 괜찮으세요?”
“왜 그런 표정인가? 내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줄 알았나?”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크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오히려 영상이 사라지는 바람에 아쉬워하고 있었거든.”
“그런가요? 저는 영상을 올린 일을 지적하려고 찾아오신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아마 다른 천족들도 나랑 마찬가지일걸세.”
그는 평소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천족이 자네를 주시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눈치를 보며 부담가질 필요는 없네. 그때도 말했던 대로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그러면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그럼 영상을 계속 올려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물론이지.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다음 영상이 올라오길 기대하고 있었다고. 아! 그리고 클라우 집행관도 그 영상을 엄청 좋아했다네. 그렇지 않나?”
나와 발레리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클라우 쪽을 바라봤다. 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천족이?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던 클라우는 우리의 시선을 받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우리가 그 영상을 마음에 들어 해서 놀랐나?”
“아…… 예, 솔직히 천족분들이 그 영상을 좋아 해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대부분의 천족이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딱딱한 생활을 하지만,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음악이라네. 꽤 많은 천족들이 악기 다루는 것을 취미로 가질 정도지.”
“오오…….”
나는 천족이 가진 의외의 모습에 감탄을 터뜨렸다. 평소에 감정이 적고, 딱딱한 모습만 봐서 그런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혹시 우리를 걱정해서 채널을 닫은 거라면, 전혀 그럴 필요 없다네.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아크 심판관님.”
“허허!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그런 아름다운 노래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봤어.”
이야기를 마친 천족들은 사무실을 떠나갔다. 아크는 떠나기 직전까지도 다음 영상을 꼭 올려달라며 부탁했다.
“허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놀랐습니다.”
“저도요. 당연히 마계의 영상을 올리는 데 부정적일 줄 알았거든요.”
발레리안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은율이, 릴리아한테 좀 미안해지네요. 괜히 제가 과하게 반응한 것 때문에 열심히 만든 영상과 채널이 사라져 버렸으니…….”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다 저희를 걱정해서 그러신 거잖아요.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해 줄 거예요.”
그로서는 할 일은 한 것뿐이었다. 나는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며 발레리안을 위로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천족도 영상을 계속 올려도 상관없다고 하는데.”
“으음…… 일단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봐야겠죠?”
처음 시작한 것도 은율이와 릴리아였으니,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두 아이의 반응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