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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3)화 (29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3화

이상한 하루(3)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어둑해져 있었다.

나와 발레리안은 천천히 농장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느낌에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발레리안이 내게 물었다.

“시현 씨? 왜 그러세요?”

“아아, 다른 게 아니라. 으음…… 농장이 평소보다 고요한 것 같아서요. 원래는 뭐랄까, 항상 이 시간쯤이면 떠들썩한 분위기거든요.”

오늘따라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빛도 적은 것 같고, 농장 식구들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아침에 외출했던 사장님이랑 안드라스 씨가 아직 안 돌아오셨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확실히 느껴졌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설마 전부 외출이라도 했나…….”

“그럴 리가요? 좀 더 찾아보죠.”

나는 제일 먼저 식당과 부엌 쪽으로 향했다.

혹시 내가 너무 늦어서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 먹나 싶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으로 현관 쪽으로 나와 2층을 확인했다.

하지만 2층을 전부 둘러봐도 은율이는 물론이고, 치즈와 새끼 그리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이상한 기분을 넘어서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발걸음으로 1층에서 내려오는데…….

-삐이이…….

-쉿!

새끼 그리핀의 울음소리가 거실 쪽에서 들려왔다.

“그리? 피니?”

곧바로 소리가 들린 거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금방 도착한 거실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상태였다.

손으로 벽을 더듬거려 스위치를 찾았다.

-스으윽…… 탁!

-파아앗!

거실에 불이 한꺼번에 켜지며 순식간에 눈앞이 환해졌다. 그리고…….

-파파팡! 파팡!

-삐리리릭!!

사방에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해요! 시현 님!”

“축하해요!”

“아빠, 축하해!”

거실 곳곳에 숨어 있던 식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도대체…….”

뒤에 서 있던 발레리안이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잊으셨습니까?”

“내일이요? 내일은…….”

“시현 씨의 생일이잖아요.”

“……아앗?!”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한 다음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내일은 ‘12월 14일’. 바로 내 생일이었다.

“하지만 마계에서는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가 없다고 들었는데…….”

“마족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긴 하지만, 시현 씨는 지구에서 태어나셨잖아요. 그럼 당연히 축하해드려야죠.”

“…….”

“처음 이야기는 제가 꺼냈지만, 모두 다 시현 씨의 생일 파티를 찬성했거든요.”

발레리안의 설명에 나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거실 한가운데 못 보던 커다란 테이블, 그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손에는 폭죽, 입에는 파티용 코끼리 피리. 그리고 농장 식구들은 형형색색의 생일 파티 모자를 썼다.

새끼 그리핀, 치즈,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카네프도 예외 없었다. 은율이는 이런 생일 파티가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했다.

“…….”

기분이 묘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니, 집안 사정이 어려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생일을 기다리거나 축하받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침부터 미역국을 준비해 생일이라 말해주면, 그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뿐이었다.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지구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깜짝 생일 파티를 마계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여기 불 다 붙였어요.”

“시현 님, 얼른 이쪽으로 오시죠.”

엘프리드와 안드라스가 내 양옆을 붙잡더니, 순식간에 테이블의 가장 상석 자리로 데려갔다.

내 자리 앞에는 ‘Happy Birthday’라고 장식된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내 나이에 맞게 촛불이 켜져 있었다.

리아네가 나에게 생일파티 모자를 손수 씌워주며 물었다.

“시현 님의 고향에서는 이렇게 준비한 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축하 의식을 치른다면서요?”

“그게 끝이 아니야. 주인공이 소원을 빌면서 초를 한꺼번에 다 꺼뜨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했어. 시현 오라버니, 내 말 맞지?”

“그것참 흥미로운 의식이군요.”

“한꺼번에 다 못 꺼뜨리면 소원을 못 이루는 건가요? 나이 많은 사람은 불리하겠는데요.”

평소와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나는 조금씩 정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뭔가를 번뜩 생각해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요 며칠 동안 모두 이상하게 행동했던 게…….

내 표정 읽은 발레리안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고민하고 걱정했던 내가 멍청하게 느껴져 허탈함이 몰려왔다.

“아빠.”

“응?”

“나도 같이 촛불 끄면 안 돼?”

“……같이 끌까?”

옆으로 다가온 은율이를 안아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은율이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은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헤헤.”

“그렇게 좋아?”

“응!”

얼른 촛불을 끄고 싶어 몸을 들썩거리는 여우 소녀를 진정시키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농장 식구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지켜봤다.

모두가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고 허탈했던 감정이 사라지면서, 가슴 속에는 점점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들이 가득해졌다.

“소원 정하셨어요?”

가까이에 있던 리아네가 내게 물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 오라버니, 그러면 하나, 둘 셋! 하면 촛불을 끄는 거야.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은율이도 열심히 불어야 해.”

“알았어. 나 열심히 불어볼게.”

은율이는 케이크 위에 촛불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사명감을 불태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농장 식구들은 함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후우우우!

-후우우!

은율이가 몸이 부들거릴 정도로 열심히 입김을 분 덕분에 촛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동시에 식구들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환호했다.

리아네가 케이크 위의 초를 정리하며 은율이를 칭찬했다.

“잘했어 은율아!”

“아빠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 열심히 불었어.”

은율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에 나도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시현 님, 무슨 소원을 비셨습니까?”

안드라스의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으음…… 부끄러우니까 비밀로 할래요.”

“예에? 말 안 해줄 거예요?”

“너무 궁금하잖아. 시현 오라버니 나한테만 말해주면 안 돼?”

소원을 궁금해하는 엘프리드와 릴리아가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두 사람의 성화에도 나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생일 파티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원이 딱 하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돈이나, 성공을 빌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런 소원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내가 기쁘고 즐거운 만큼, 식구들에게도 그런 행복한 일이 가득하기를 빌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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