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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5)화 (29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5화

이상한 하루(5)

선물을 전하지 못한 사람?

남은 사람이 있나?

발레리안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장님, 리아네, 안드라스, 엘프리드, 발레리안, 릴리아…….

농장 식구들의 얼굴을 차례로 확인해 봤지만, 남아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나는 가까운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곳에는 조그만 여우 소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은율아, 나한테 줄 선물 준비했어?”

“……!”

내 물음에 은율이는 화들짝 놀라며 꼬리를 바짝 세웠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지 나와 리아네를 번갈아 쳐다보며 허둥지둥했다.

그 모습을 본 리아네가 포근하게 웃으며 은율이에게 다가섰다.

“괜찮아, 은율아. 시현 님에게 얼른 전해드려.”

그녀는 선물로 보이는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며 등을 살짝 떠밀었다. 덕분에 힘을 얻은 은율이가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양손으로 선물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은율이.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긴장이 돼서, 몇 번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덧, 내 앞에 도착한 은율이가 팔을 쭉 뻗어 선물을 내밀었다.

“아빠. 이거…….”

선물을 떨어뜨릴까 봐 작은 두 손을 감싸듯 선물을 받아들었다. 선물은 작은 종이봉투에 예쁜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열어봐도 돼?”

-끄덕끄덕.

나는 천천히 리본을 풀어내고 종이봉투의 입구를 열었다.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손을 집어넣어 내용물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쿠키?”

평범하게 초코칩이 들어 있는 쿠키였다.

그런데 쿠키의 모습에서 어딘가 어색하고 엉성함이 느껴졌다. 마트나 전문점에서 가져온 것이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은율아, 혹시 이거 직접 만든 거야?”

“응…….”

은율이는 대답을 하면서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깜짝 놀라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이상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럼!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딱 봐도 엄청 맛있어 보이잖아. 그렇죠?”

나는 농장 식구들을 향해 재빨리 눈빛을 보냈다.

“지, 진짜네. 엄청 맛있어 보여.”

“시현 님은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나도 먹어보고 싶다.”

모두가 쿠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자 은율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쿠키에 관해서 물었다.

“그런데 혼자서 이 쿠키를 다 만든 거야?”

은율이는 질문에 고개를 흔들며 리아네 쪽을 가리켰다.

“리아네 언니랑 같이 만들었어.”

“으응? 리아네 씨랑?”

“……?!”

“……?!”

리아네와 함께 쿠키를 만들었다는 말에 나는 어색하게 되물었고, 다른 사람들은 ‘헉!’하는 표정으로 다시 쿠키를 바라봤다. 그러자 리아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모두 무슨 걱정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은율이가 혼자 요리하다가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줬을 뿐이니까요.”

“…….”

“끄응…… 제가 요리를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요리 도구까지 못 다루는 건 아니라고요. 뜨거운 오븐 같은 건 은율이가 다루기 위험하니까 제가 옆에서 조금 도와준 거예요.”

리아네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쿠키의 결백을 주장했다. 의심했던 사람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거나, 시선을 돌렸다.

물론 모두가 의심을 거둔 건 아니었다. 리아네의 요리에 가장 큰 피해를 봤던 카네프는 ‘아직 믿을 수 없어!’라는 표정으로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럼 먹어볼게.”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나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사삭! 하는 소리를 내며 쿠키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음.

확실히 쿠키의 맛은 어색했다. 설탕을 많이 넣었는지 굉장히 달고, 식감이 좀 더 딱딱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아무래도 좋았다. 은율이가 나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나의 만족도는 최고점을 돌파해 버렸다.

“아빠 맛있어?”

은율이는 기대와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여우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은율이를 와락 껴안았다.

“너무 맛있어! 매일매일 먹었으면 좋겠다!”

“꺄하하하! 간지러워!”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비비적거리자 여우 소녀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시현 오라버니, 나도 하나 먹어봐도 돼?”

“그럼 저도 하나만…….”

나는 쿠키를 반으로 갈라서 농장 식구들에게 나눠줬다.

“으음. 정말 맛있네요.”

“은율아, 너 처음 만들었는데 이렇게 잘 만든 거야?”

쿠키를 맛본 모두가 맛있다며 호평했다. 사람들의 반응에 괜히 내가 흐뭇해져서 싱글벙글 웃었다.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카네프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마지막까지 살핀 뒤에야 쿠키를 받아들었다. 그는 쿠키를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아네는 옆에서 돕기만 했나 보네.”

“…….”

카네프는 리아네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넘기면서 쿠키의 맛을 음미했다.

“시현 씨.”

“네, 리안 씨.”

“저기 뒤쪽.”

“……?”

발레리안은 쿠키가 담겨 있던 종이 뒤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Happy Birthday!’라 적힌 생일 축하 카드가 리본 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리본을 풀어내고 카드를 펼쳐 들었다.

그 안에는 또박또박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아빠! 생일축하해요!

-나는 아빠가 내 아빠라서 너무 행복해요. 항상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하는 은율이가.

멍하니 카드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내 품 안에 있던 은율이가 방긋 웃으며 시선을 맞췄다.

“…….”

말 없이 시선을 돌리며 은율이를 꼭 껴안았다.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더 봤다가는 울컥하는 감정을 참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스스로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오히려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넘쳐 흘렀다. 내가 몇 문장 밖에 안되는 짧은 편지로 이렇게 눈물이 터질 줄이야.

정말로 이 뿌듯함과 기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은 아마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 같았다.

“선물 너무 고마워, 은율아. 덕분에 아빠는 지금 너무 행복해.”

“헤헤, 나도 너무 좋아.”

나는 은율이를 다시 한번 더 꼭 껴안으며 행복한 감정을 함께 나눴다.

그렇게 겨우겨우 울컥하는 감정을 참아내고 있는데.

카네프가 스윽 옆으로 다가왔다.

“야. 너 우냐?”

“아, 안 울어요.”

“안 울기는. 두 눈이 새빨개졌는데.”

“카네프 님! 감동적인 순간에 눈치 없이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아까부터 카네프에게 쌓인 게 있었던 리아네가 불쑥 끼어들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발레리안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하! 오늘은 시현 씨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네요.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농장으로 오는 길에 시현 씨가 진지한 얼굴로…….”

나는 기겁하는 얼굴로 발레리안의 이야기를 막았다.

“으아악! 리안 씨!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세요!”

“왜 그러세요? 들으면 농장 식구들이 엄청나게 감동할 만한 이야기인데.”

“괜찮으니까 제발…….”

깜짝 생일 파티가 준비되는 줄도 모르고 나 혼자 오해하고 고민했던 일.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웃긴 일이었다.

어떻게든 발레리안의 이야기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저희가 감동할 만한 이야기라니…… 굉장히 궁금하군요.”

“뭐야? 시현 오라버니, 무슨 일 있었어?”

“궁금하니까 빨리 이야기해 주세요.”

“그게 말이죠…….”

나는 은율이를 옆에 내려두고 황급히 발레리안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재빨리 내 습격을 피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들의 우스꽝스러운 추격전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농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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