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8화
연말 휴가(3)
대뜸 시간을 내줄 수 있겠냐는 박재영.
그와는 지난번에 짧게 통화 한 번 해본 게 전부였다.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는 평소보다 낮아진 목소리로 박재영에게 되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내 목소리가 좋지 않음을 금방 눈치챘는지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변명이 들려왔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실례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윤지운 씨가 워낙 끈질기게 부탁을 해서요.
윤지운?
지난번 통화에 이어 ‘윤지운’이 다시 한번 더 언급됐다.
-지난번에 윤지운 씨가 따님분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뒤로 얼마 동안 잠잠하시더니,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한 번만 다시 부탁해보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하시더라고요.
“음…….”
박재영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 이런 억지를 부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는 워낙 사정사정하셔서……. 제가 염치 불고하고 다시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혹시 잠시라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윤지운 씨가 제 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거죠?”
-네네, 맞습니다. 당연히 아버님도 함께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이나 약속 장소도 편하신 데로 정하시면 됩니다. 윤지운 씨가 스케줄을 전부 조정해서라도 일정을 맞추겠다고 했습니다.
상대 쪽에서 저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부탁을 해오니, 처음에 살짝 언짢았던 기분도 금방 풀어졌다. 오히려 살짝 측은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은율이를 만나려고 하는 건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힐끗 은율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은율이는 서예린과 함께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흐음.
아마 은율이는 윤지운을 만나고 싶어 하겠지? 말하는 걸 쭉 들어보니 거짓말이나 사기는 아닌 것 같고. 한 번 만나보는 게 좋으려나?
내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자 전화 너머로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 끊으신 건 아니죠?
“네, 듣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 좀 하느라요.”
-혹시 바쁘시면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마침 오늘부터 휴가였거든요.”
휴가라는 말에 박재영의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아! 그러십니까?
“마침 지금부터 오늘 일정이 빌 것 같은데. 오늘도 상관없나요?”
-오, 오늘 말씀입니까?
“오늘은 힘들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금방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 뒤에 우당탕!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동안 전화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잠시 후.
박재영의 잔뜩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가능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