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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9)화 (29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9화

연말 휴가(4)

박재영이 가리킨 곳에 2층으로 된 카페가 보였다.

아까 말했던 대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위치해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잘 찾아오기 힘들 것 같았다. 대신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아 보였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박재영의 안내를 받으며 카페 입구로 향했다. 출입문을 열자 ‘띠링!’ 하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장사 잘되시죠?”

박재영은 카페 주인과 친분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지금 위에 있나요?”

“네. 30분 전쯤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세요. 2층 그 자리에서요.”

“감사합니다. 자! 따라오시죠.”

박재영은 카페 주인과 주어가 빠진 질문과 대답을 자연스럽게 끝낸 뒤, 우리를 돌아보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박재영의 뒤를 따라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의 턱이 조금 높아서 나는 은율이를 안아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서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것은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었다. 탁 트인 풍경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 아주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남자는 계단 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

우리를 발견한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나도 그 남자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으음. 정말 윤지운이네.

편한 옷차림에 메이크업도 안 한 그의 모습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래도 예전의 모습이 기억에 더 많이 남아 있는 탓에 세월의 흔적도 많이 느껴졌다.

하지만 평범한 모습 속에도 사람의 눈길을 끄는, 그런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이게 연예인의 아우라(aura)인가? 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윤지운은 먼저 손을 내밀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윤지운입니다.”

“안녕하세요, 임시현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잠깐의 시선 교환이 끝난 다음 윤지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향했다. 은율이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동자가 조용히 빛을 냈다.

“안녕?”

“…….”

“네가 아저씨 노래 불렀던 그 아이 맞지? 괜찮으면 이름을 알려줄래?”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물었다. 내 품에 안겨있던 은율이는 머뭇머뭇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은율.”

“은율? 은율이는 이름도 정말 예쁘네.”

윤지운이 환하게 웃자 은율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 반응에 윤지운은 머쓱해진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제가 너무 친한 척을 했나요? 아이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원래 은율이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조금 있으면 익숙해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다는 말에 윤지운은 안심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은율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예린과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우리는 윤지운이 원래 앉아 있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은율이는 의자가 좀 불편할 것 같아서 내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자리에 앉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1층에서 만났던 가게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메뉴판 드리겠습니다. 주문은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저는 아메리카노 연하게 부탁드릴게요.”

“카라멜마끼아또 주세요.”

윤지운과 박재영은 금방 메뉴를 정했다.

“시현아, 너는 뭐 먹을 거야?”

“나는 은율이랑 같이 먹으려고. 남기면 아까우니까.”

그사이 은율이는 내가 들고 있는 메뉴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처음으로 카페 메뉴판을 보게 된 여우 소녀는 굉장히 신난 눈치였다. 덕분에 어색해하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아빠, 아빠. 이건 뭐야? 마…… 카롱? 이름이 이상해.”

은율이의 질문에 옆에 있던 가게 주인이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마카롱은 머랭으로 만든 쿠키 두 개에 사이에 여러 가지 속 재료를 넣어 만든 과자예요. 아주 달고 맛있답니다.”

“와아! 그럼 ‘스콘’은 뭐야?”

“스콘은…….”

계속된 질문에도 가게 주인은 아주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 줬다. 덕분에 은율이의 눈동자는 더욱 반짝반짝해졌다.

“그래서 은율이는 뭐 먹을 거야?”

“으으…….”

서예린의 물음에 은율이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고민을 시작했다. 본인에게는 진지한 상황이겠지만,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모두가 흐뭇하게 지켜봤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은율이가 울상을 짓자, 보다 못한 서예린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냥 다 시켜주면 안 돼?”

“안돼. 은율이는 얼마 먹지도 못하는데 남기게 되잖아. 거기다 조금 있으면 저녁도 먹어야 하고.”

“조금 남기면 어때? 은율이가 먹고 싶다는데.”

“애 버릇 나빠져.”

티격태격하는 우리에게 가게 주인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마실 것만 하나씩 주문해 주실래요? 디저트는 조금씩 맛보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릴게요.”

“예? 아뇨, 그럼 너무 민폐잖아요.”

“여기 윤지운 씨가 매출을 많이 올려주시는 단골이라 괜찮습니다. 평소에도 서비스 자주 드리거든요.”

윤지운도 작게 미소지으며 말을 거들었다.

“그렇게 하세요, 시현 씨. 오늘 서비스받은 만큼 제가 열심히 방문해서 메꾸겠습니다.”

“하하! 그럼 저야 이득이죠.”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가게 주인은 나머지 마실 것 주문을 받아적고, 빨리 준비해 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1층으로 내려갔다.

주문이 끝난 테이블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찾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서예린이 먼저 입을 열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따라온 입장이다 보니 조심스럽게 눈치만 살폈다.

아주 의외의 인물이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정말 윤지운 아저씨야?”

은율이가 윤지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지운은 은율이의 관심이 기분 좋은지 얼굴이 환해졌다.

“맞아. 아저씨가 가수 윤지운이야. 요즘은 가수 활동을 거의 안 하고 있지만…….”

그의 대답에 은율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이제 노래 안 불러?”

“노래를 그만둔 건 아냐. 하지만 새로운 노래를 발표한 지 꽤 됐거든. 점점 무대에 서는 일도 줄었고.”

“그럼 노래 부르는 게 싫어진 거야?”

“그럴 리가. 그게 아니라…… 아마도 아저씨 안에 있던 뭔가를 다 써버려서 그럴 거야.”

“……?”

“오랫동안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가수로서 살아가는 건 정말 즐겁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노래 부르는 일이 전혀 즐겁지 않게 돼버렸어.”

윤지운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배터리가 다 돼버린 장난감처럼. 갑자기 노래 부르고, 무대에 서는 일이 더는 설레지 않게 돼버렸어. 정말 이상하지?”

그는 처연하게 웃었다.

처음 질문을 던진 은율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그의 미소를 씁쓸하게 바라봤다.

‘다 써버렸다.’라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는 핑계보다 그 말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에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윤지운은 조금 더 또렷해진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어떤 소녀가 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본 뒤로, 아주 조금이나마 채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은율이에게로 향했다. 정작 그 노래 부르는 소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곧장 작업실로 달려가 노래 작업을 시작해 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너무 오랫동안 쉬었나 봐요.”

윤지운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회사에 부탁해서 시현 씨에게 무리하게 연락드린 것도 그 때문이에요. 혹시 은율이를 직접 만나면 마음속에 비어버린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서예린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조금 채워진 것 같으세요?”

윤지운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 모르겠네요. 뭔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건 너무 욕심이었나 보네요. 그래도 은율이를 이렇게 만나길 잘한 것 같아요. 저도 ‘마계소녀’ 채널 팬이라서요.”

“오오! 역시 그러셨군요. 저도 ‘마계소녀’ 채널 엄청나게 좋아해요.”

“흠흠, 저도…….”

윤지운, 서예린, 박재영까지.

서로 ‘마계소녀’ 채널의 팬임을 밝히며 공감대를 형성하더니, 훨씬 밝아진 분위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기 주문하신 음료랑 서비스…… 혹시 ‘마계소녀’ 이야기 중이세요? 역시 맞죠? 마계 소녀에 출연한 그 소녀!”

나중에는 카페 주인까지 합류하며 순식간에 ‘마계소녀’ 팬 미팅이 열렸다. 테이블은 금방 마계소녀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시현 씨. 그래서 마계소녀 채널에 다음 영상은 언제 올라오나요?”

윤지운의 질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덩달아 반응했다.

“맞아요! 영상 좀 자주자주 올려주시면 안 되나요? 카페가 한산할 때 지난 영상 자주 돌려보는데 너무 감질나요.”

“아직 영상의 퀄리티가 조금 아쉽던데.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 드릴까요? 회사 쪽으로 영상 관련 전문가를 많이 알고 있거든요.”

“시현아, 그러고 보니까 팬카페도 하나둘 생기는 것 같은데. 아예 공식 팬카페 하나 만드는 게 어때? 관리하기 귀찮으면 나한테 맡겨줘도 되는데…….”

“아…… 저, 그게…….”

사람들은 마계소녀에 대한 팬심과 아쉬움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을 드러냈다. 쏟아지는 그들의 높은 관심에 나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냠! 우물우물!”

이 와중에 은율이는 카페 주인이 서비스로 가져온 디저트들을 잔뜩 맛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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