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1)화 (30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1화

연말 휴가(6)

은율이의 맑은 목소리가 녹음실에 울려 퍼졌다.

앞서 불렀던 윤지운에 비해 약간 어설픈 느낌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은율이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느낌을 줬다.

“똑같은 노래를 불러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서예린의 중얼거림에 나와 박재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만큼 윤지운과 은율이가 전해주는 느낌이 달랐다.

은율이는 알려준 부분까지 노래를 부르고, 눈을 반짝이며 윤지운을 바라봤다.

“아저씨, 이렇게 부르면 돼?”

“…….”

“아저씨?”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윤지운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어? 으…… 응. 잘했어.”

“헤헤.”

칭찬에 은율이가 부끄러워하며 미소 지었다. 윤지운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은율아, 잘 불렀는데. 이 부분만 조금 신경 써서 불러볼까?”

“어디?”

“여기 ‘흘러가는’ 이 부분에서…….”

윤지운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어색한 부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은율이도 그의 조언을 열심히 귀담아들으며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한번 불러볼까?”

그의 손짓에 맞춰 다시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로 부르는 은율이의 노래는 이전보다 확실히 안정돼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윤지운도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정말 좋았어, 은율아. 이제 다음 부분에는…….”

윤지운은 곧바로 노래의 다음 구절의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열의가 엿보이는 것 같았다.

“시현아. 역시 윤지운 씨는 대단하다. 저렇게 잠시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은율이의 노래가 확확 좋아지잖아.”

“그러게.”

서예린의 중얼거림에 내가 동의하던 그때.

“제 생각에 지운 형보다는 저 은율이라는 아이가 더 대단한 것 같아요.”

녹음실 기계 앞에 앉아 있던 서준호가 우리를 돌아보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론 지운 형이 잘 가르치는 것도 맞지만. 단순히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노래 실력을 확 올리기 힘들거든요. 저렇게 알려주는 걸 금방 따라 하는 건 정말 아무나 못 하는 일이에요.”

그의 설명에 서예린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그럼 엔지니어분께서 봤을 땐 은율이가 재능이 있는 것 같으세요?”

“어휴! 그냥 재능이 있는 수준이 아니죠. 제가 이 업계에 있는 동안에 많은 가수를 만났는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인 것 같아요.”

“정말 그 정도예요?”

“처음에는 지운 형이 너튜브 영상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 떠나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형이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서준호는 살짝 머쓱한 표정으로 은율이의 재능을 극찬했다. 서예린은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내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시현아, 시현아! 방금 엔지니어분이 하시는 말씀 들었어?”

“아, 알았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 다른 분들이 쳐다보잖아.”

흥분한 서예린을 말리는 나 역시 입꼬리가 씰룩 위로 솟구쳤다. 딸의 칭찬에 뿌듯해하는 마음을 숨기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했다.

서준호가 내 쪽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시현 씨가 은율이 아버님이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혹시 은율이가 전문적으로 보컬 레슨을 받은 적이 있나요?”

“예?”

“보통 어린 친구들은 처음에 노래를 배울 때 당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은율이는 배우는 모습이 꽤 익숙한 것 같아서요.”

전문가의 예리한 관찰력에 내심 놀랐다.

이곳에서 말하는 레슨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계에서 뮤레인에게 노래를 배운 건 사실이었다.

“아…… 은율이가 유명하신 분한테 몇 번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지운 형한테 배우는 모습을 보니 딱 알겠더라고요. 혹시 너튜브 영상에 쓰였던 노래를 편곡하신 분인가요? 편곡 실력이 범상치 않아 보였거든요.”

“노래를 가르쳐준 분이랑 편곡을 해주신 분은 다른 분이에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큰 감명을 받아서요.”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대로 이름을 밝히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워서…….”

“아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서준호는 굉장히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마계의 뮤레인과 자이나를 언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로서는 이게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럼 은율이는 지운 형 기획사랑 계약하신 거예요?”

“아뇨. 계약 때문에 만난 건 아니라서요. 애초에 다른 기획사의 제안도 다 거절하는 중이고요”

“흐음…….”

아직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서준호는 슬쩍 박재영 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아직 계약 제안도 안 했다니?!’라는 한심함이 담겨 있었다.

당황한 박재영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슬쩍 물러나 어디론가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열심히 가르침을 받은 은율이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윤지운은 마이크 앞에 선 은율이를 보며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 물러서려 했다. 그런데 은율이가 재빨리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아저씨도 같이 부르자.”

“……?”

뜻밖의 제안에 윤지운은 잠시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은율이가 주변이 밝아지는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짓자 그의 입가에도 은은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아저씨랑 같이 부를까?”

“응!”

윤지운도 은율이 옆 마이크에 나란히 섰다. 신호에 맞춰 녹음실에는 다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시작은 굉장히 어색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목소리가 따로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윤지운은 은율이에게 맞춰 능숙하게 화음을 맞춰나갔고. 금방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와아…….”

지금껏 담담하게 노래를 듣던 서준호의 입에서 처음으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엔지니어 일을 완전히 까먹은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노래를 감상했다.

분명 허전함이 느껴지는 미완성 곡이었는데.

은율이와 윤지운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자 그 비어 있던 부분이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본인도 이걸 느끼고 있는 것일까?

노래를 부르는 윤지운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노래가 끝을 향해갈수록 그의 눈동자에서는 성취감이 가득해졌다.

어느새 노래의 마지막 부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맞추며 끝까지 완벽한 하모니를 완성해냈다.

노래가 끝난 녹음실에는.

홀린 듯한 네 사람의 박수 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