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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4)화 (30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4화

휴가 중에(3)

“아저씨가 다닌다는 농장이…… 마계에 있는 거였어?”

“그럼 은율이랑 아꿍이, 규리도……?”

“그래서 형이 농장에 출근하면 연락이 안 된다고 한 거구나.”

내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각자 놀라움과 허탈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야기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거든. 그렇다고 나쁜 일을 하는 건 아니야. 정말로 마계에 넘어가서 농장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야.”

지금은 일이 커져서 영주가 되긴 했지만…….

굳이 카디스 영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들에겐 농장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놀라고 있었으니까.

지난 일을 곰곰이 되짚던 남진혁이 뭔가를 생각해낸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럼 예린 누나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응. 알고 있어. 내가 길드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

“둘이서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네.”

남진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윤세희와 정태호가 양쪽으로 달라붙었다.

“아저씨! 더 숨기고 있는 이야기 없어요?”

“마계는 어때? 마족들 무섭지 않아?”

“더 숨기고 있는 거 없어. 그리고 마족들도 우리랑 비슷해. 무서운 마족은 무섭고, 상냥하고 착한 마족들도 많아.”

“농장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도 마계에 데려가 주면 안 돼?”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열심히 질문을 쏟아내는 두 사람. 살짝 난처해지려는 순간 적절하게 발레리안이 끼어들었다.

“자, 자∼! 궁금하신 게 많은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단 급한 일부터 끝내야 할 것 같으니 조금만 진정해 주실래요?”

발레리안은 부드러운 미소와 말투로 윤세희와 정태호를 진정시켰다. 그들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와 발레리안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발레리안의 정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발레리안은 의구심 가득한 눈빛을 눈치채고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그리고…….

-스으윽!

그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보라색으로 물들며, 숨겨졌던 뿔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아앗! 저건?!”

“뿔?!”

“하하하. 이건 또 예상 못 했네…….”

정태호와 윤세희는 깜짝 놀라며 비명 같은 목소리를 냈고, 남진혁은 다시 한번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발레리안은 그들의 반응을 즐기듯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가 대며 매력적인 윙크를 날렸다.

세 사람이 충격에 멍해져 있는 사이.

나와 발레리안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아슈미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슈미르 씨? 시현 씨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시현 씨도 아직 어떤 부탁인지 못 들은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발레리안의 요청에 아슈미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는 지금 중요한 뭔가를 찾고 있습니다. 아마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거로 추측하는데. 그걸 찾는 일을 시현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

아슈미르와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녀가 더는 설명할 기색이 보이지 않자,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끝이에요?”

“네.”

“이 도시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데. 저 보고 그걸 도와달라고요?”

“네, 맞습니다.”

뭐지?

나는 당연히 까다로운 부탁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정말 쉽고 간단한 부탁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실망한 건 아닌데, 조금 허탈한 건 사실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부탁을 굳이 나한테 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경찰서로 찾아가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슈미르의 부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이, 발레리안이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슈미르 씨. 단순히 뭔가를 찾는 일이라면 굳이 시현 씨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그도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의문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으음…… 마침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도착했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그 사람과 같이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착했다고?

누가 도착을…….

나와 발레리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사무실 입구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누군가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며 뛰어 들어왔다. 아슈미르와 비슷한 제복 차림, 정태호나 윤세희보다 어려 보이는 소년 천족이었다.

“견습 감시관 우르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아슈미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년 천족을 바라봤다.

“늦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길이 너무 헷갈려서…….”

“지금의 실수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십시오.”

“넵!”

소년 천족은 재빨리 아슈미르의 옆에 섰다. 뻣뻣한 자세와 움직임에서 굉장히 긴장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크 심판관을 제외하고 항상 감정이 없는 기계 같은 천족만 봐서 그런지 소년 천족의 약간 어수룩한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쪽은 견습 감시관 ‘우르키’라고 합니다. 저희가 찾으려고 하는 ‘신수(神獸)’의 책임자입니다.”

“신수?”

“천계에 존재하는 아주 신령스러운 동물입니다. 저희는 신의 힘을 이어받은 동물이라고 해서 ‘신수’라고 부릅니다.”

나는 발레리안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속삭였다.

“리안 씨는 저 ‘신수’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

“저도 직접 본 적은 없고, 이야기만 들어봤습니다. 천족이 굉장히 애지중지하는 존재라고 하더군요.”

“으음…….”

잠시 말을 멈췄던 아슈미르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그 신수가 지금 이 도시에 있습니다. 천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신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원래는 천계에 있는 동물이라면서요?”

“그건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혹시 최근에 불안정한 균열이 자주 발생한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어?

나는 깜짝 놀라며 세 사람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마침 이곳으로 오기 전 가게에서 그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네, 들어봤어요. 안 그래도 저쪽에 앉아 있는 길드 사람들이랑 그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저희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곧바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응 중 하나가 바로 그 신수입니다.”

“신수가 대응 방법의 하나라고요?”

“그렇습니다. 신수는 여러 가지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차원의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겁니다. 불안정한 균열 역시 신수의 힘으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불안정한 균열을 억제? 엄청난 능력이잖아?

속으로 감탄하던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 잠깐만요? 그런 대단한 능력의 신수를 설마 잃어버리신 거예요?”

-움찔!

내 물음과 동시에 견습 감시관 우르키가 크게 몸을 떨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 설마 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발레리안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저는 여전히 시현 씨에게 일을 맡기려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군요.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은 천족의 감시관을 뛰어넘을 존재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직접 그 신수를 찾는 편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차원의 규율을 어긴 죄인만 쫓습니다. 그리고 천족은 신수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신수를 찾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는 것 역시 규칙에 어긋납니다.”

“쩝…….”

천족 특유의 앞뒤 꽉꽉 막힌 사고방식에 나와 발레리안의 표정이 동시에 떨떠름해졌다.

예전에 나였다면 그들의 융통성 없는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생각하며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건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래서 저에게 그 신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시는 거군요.”

“예. 시현 씨가 이쪽 분야에서는 꽤 전문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으음…… 제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마수라면 몰라도 신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슈미르는 낮은 자세로 거듭 도움을 요청했다.

가게에서 막무가내로 나를 데려가려 했을 때는 굉장히 기분 나빴지만, 사정을 자세히 듣고 나니 그녀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불안정한 균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수를 데려온 거라고 하니…… 금방 도와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시현 씨.”

도와주겠다는 말에 아슈미르의 표정이 처음으로 살짝 밝아졌다. 더는 여유를 부릴 수 없으니 나는 곧바로 사라진 신수에 관해 물었다.

“그 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어디였죠?”

“거기에 대해서는 우르키 견습 감시관이 설명해 줄 겁니다.”

“넵! 저에게 물어주십시오.”

우르키는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했다.

“아. 우르키 견습 관시관님?”

“우르키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우르키 씨라고 부를게요. 신수를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어딘지 알려주실래요?”

“어디냐면…….”

설명에 조금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어찌어찌 신수가 사라졌던 장소를 알 수 있었다.

발레리안의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 근처는 당연히 찾아보셨겠죠?”

“네. 사라진 걸 알고 바로 샅샅이 찾았는데 못 찾았습니다.”

“혹시 그 신수가 어떤 모습인지 설명해 주실래요? 아니면 사진 같은 거라도?”

“사진은 없고…… 잠시 펜이랑 종이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발레리안이 자신의 책상에서 빠르게 펜과 종이를 찾아 우르키에게 전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우르키는 받은 펜과 종이를 가지고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거침없이 펜을 움직였고, 비어 있던 종이에는 금방 신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게 신수…….”

종이에 그려진 신수는 전체적으로 소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동통한 몸매에 짧은 팔다리, 동그란 눈동자가 굉장히 귀여웠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머리 양쪽에 자라난 커다란 날개였다. 이게 정확히 귀인지 날개인지 알 수 없지만, 꽤 눈에 띄는 모습인 건 확실했다.

이렇게 독특한 모습이라면 금방 눈에 띌 것 같은데…….

“저기…… 아저씨?”

“응?”

뒤쪽에서 윤세희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윤세희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지금 그 신수? 그걸 찾고 계시는 거 맞죠?”

“응. 맞아.”

“혹시 이거 아니에요?”

윤세희가 스마트폰의 화면이 잘 보이도록 내 쪽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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