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9화
신수를 잡아라!(5)
-뀨우우! 뀨우우!
-무우. 무우.
신수가 억울함이 가득한 울음소리를 내면, 옆에서 아꿍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조그맣고 귀여운 모습이랑 어울리지 않게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나는 굳이 나서지 않고 근처에 앉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치즈도 내 옆에 웅크린 채로 신수와 마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렇게 옆에서 엿듣는 것만으로도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대충 파악됐다.
반면에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두 천족은 답답하다는 얼굴이었다. 참다못한 우르키가 내 뒤쪽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시현 님, 지금 신수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죠?”
“으음…… 진짜 말씀해드려요? 우르키 씨는 모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우르키 옆으로 아슈미르가 나섰다.
“시현 씨.”
아슈미르가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신수와 아꿍이의 대화를 전해주었다.
“지금 신수는 아꿍이에게 천계에서 불만인 점을 털어놓고 있어요.”
“불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예. 특히 우르키 씨에게 굉장히 불만이 많은 모양이던데요?”
“저, 저요?”
우르키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신수가 저러지.
사실 불만이 많다고 말한 것도 순화시킨 표현이었다. 정확히는 신수가 우르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는 말이 좀 더 정확했다.
“시현 씨, 우르키 견습 감시관이 신수에게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잘못이라고 까지 말하기는 힘들어도. 우르키 씨가 잘한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죠.”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아슈미르에게서 시선을 돌려 우르키를 바라봤다.
“우르키 씨는 신수를 맡은 지 얼마 안 됐다고 그랬죠?”
“네…….”
“신수와 천족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저 신수도 천족과 함께 지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맞나요?”
“……!!”
질문을 듣자마자 우르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짐작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제가 추측하기에. 우르키 씨의 보살핌이 신수 입장에서는 답답했나 봐요.”
“저는 지침서에 나와 있는 대로 돌봐줬을 뿐인데…….”
“바로 그게 문제라고요.”
“예?”
“저 신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세요?”
“…….”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요? 또 싫어하거나 꺼리는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뭔가 불편한 점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나라도 알고 계세요?”
“…….”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신수를 돌봤다고 할 수 있어요?”
말을 쏟아내는 중간에 감정이 울컥해서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우르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휴!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한 이유는 신수의 답답함과 괴로움을 내가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천족의 앞뒤 꽉 막힌 사고방식과 독선적인 태도 때문에 나도 답답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오늘도 그랬고!
조금 짜증이 나긴 해도, 그들의 특별한 힘과 지위를 생각해 대충 참고 넘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천족이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사사건건 참견하고, 개인적인 행동까지 통제하려 든다면? 그러면서 내 의견은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이 답답함에 금방 쓰러질 것이다.
지금 신수가 이런 참담한 기분을 아꿍이에게 털어놓는 중이었다.
“시현 씨. 우르키 견습 감시관은 분명 지침서대로 신수를 돌봤습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겁니까?”
“당연히 잘못됐죠! 물론 과거의 경험이 정리된 지침서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무조건 정답일 수는 없어요. 우리는 공장에서 똑같이 생산되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한 어미 밑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형제도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점이 더 많다.
누구는 독립적이면서 굉장히 활발하고, 누구는 수동적이고 얌전하면서, 또 누구는 호기심 많고 의존적일 수 있다.
태어나면서 이렇게 많은 다양성을 가지게 되는데.
하나의 지침서만으로 이 많은 다양성을 통제한다는 건, 아주 오만한 생각일 수밖에 없었다.
“저는 농장에 마수들과 잘 통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항상 녀석들이 어려움이 없을까? 하고 걱정해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랑 다르게 간접적으로밖에 표현 못 하니까요.”
나는 신수 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말을 못 한다고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아마 저 친구도 우르키 씨가 돌봐준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나름대로 불편한 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겠죠.”
“으으……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냥 지침서에 나온 대로 하면 되는 줄 알고…….”
“저도 이런 문제가 있는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두 명의 천족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지?’라는 마음이었지만, 나중에는 천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우르키보다 먼저 생각을 정리한 아슈미르가 입을 열었다.
“시현 씨,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글쎄요. 제 생각에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본인의 의지라면…….”
“저기 있는 신수의 의지요. 신수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눈빛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나섰으니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수 쪽으로 다가섰다. 내 접근에 신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뀨우웃!!
-무우. 무우.
-뀨우?
-무우우!
옆에서 아꿍이가 신수의 흥분을 진정시켜줬다. 덕분에 생각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안녕? 나는 임시현이라고 해. 옆에 있는 귀여운 녀석은 아꿍이, 저기 뒤쪽에서 하품하는 큰 고양이는 치즈야.”
-…….
“방금 아꿍이랑 하는 이야기 옆에서 들었어. 네가 왜 저 두 사람한테서 도망쳤는지는 알겠는데. 계속 이렇게 도망 다닐 수는 없잖아. 조금 있으면 날도 어두워질 거고.”
내 말을 알아듣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신수는 가만히 눈만 끔뻑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가능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거든? 어떻게 할래?”
-뀨우우…….
“저기 두 사람이랑 같이 돌아가는 건…….”
-뀨우웃!! 뀨우웃!!
아슈미르와 우르키를 언급하자마자 신수는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어찌나 표현이 격렬한지 옆에 있던 아꿍이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끄응. 그건 절대 싫구나.”
반응을 봐서는 지금 당장 천족과 신수의 관계를 회복시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억지로 데려간다고 해도 또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흐음…… 그럼 나랑 같이 갈래?”
-뀨우우?
새로운 제안에 신수가 눈을 반짝였다.
“언젠가는 천계로 돌아가야겠지만, 이쪽 세계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야. 특별한 집은 아니지만 이렇게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뀨우우…….
“원하면 바깥 구경도 자주 시켜줄게. 거기다 같이 놀 친구도 많이 있어서 분명 심심하지 않을 거야.”
-무우우! 무우우!
아꿍이도 옆에 달라붙으며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신수는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든 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굳이 나서서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수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느긋한 자세로 기다렸다.
-뀨우우…… 뀨우우…….
꽤 오랫동안 고민을 이어가던 신수가 네 발로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
-무우.
나와 아꿍이는 살짝 긴장한 눈빛으로 신수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조금씩 다가온 신수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도달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나는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스으윽.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느낌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신수는 한동안 내 손바닥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킁킁, 킁!
신수는 빼꼼 얼굴을 들이밀고 내 손바닥 냄새를 맡더니 자신의 앞발을 살포시 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나랑 같이 가는 거지?”
-뀨우우.
아직 눈동자에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꿍이는 신나서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자! 그럼 신수 쪽은 해결됐고.
남은 건 천족을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문제인 건가?
내가 신수를 데려간다고 하면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 상상이 돼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신난 아꿍이와 신수를 뒤로하고 천족에게 다가섰다.
“신수와 이야기는 끝난 겁니까?”
“네, 아슈미르 씨.”
아슈미르는 어떻게 됐는지 알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신수와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줬다.
“신수는 일단 두 분을 따라가는 건 절대 싫다고 했어요. 신뢰 관계를 회복하려면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하지만 신수를 계속 이렇게 방치해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당분간은 제가 데리고 있는 게 어떨까요? 다행히 신수도 따라오겠다고 했거든요.”
“그렇군요.”
“시, 시현 님이 신수를 데려가신다고요?!”
아주 깜짝 놀란 우르키와는 달리, 아슈미르는 생각보다 훨씬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 급하게 설명을 하려는데.
“일단 관계 회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당분간은 시현 씨가 신수를 맡아주시지요.”
뭐, 뭐지?
이렇게 쿨하게 허락하는 건 천족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옆에 있던 우르키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슈미르 감시관님! 신수를 이렇게 갑자기 외부인에게 맡기다니요! 규칙에 위반되는 행동입니다.”
“억지로 신수를 데려간다고 해도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 있습니다?”
“그건…….”
“규칙에는 위반되는 행동일지 몰라도, 지금의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시현 씨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아슈미르는 우르키의 우려 섞인 말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배려와 존중을 담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발 그건 참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