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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0)화 (31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0화

선물(1)

“아저씨!”

멀리서 정태호가 나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왔다. 그 뒤로 윤세희와 남진혁, 그리고 발레리안도 한발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를 찾고 있었어요. 신수는 찾으신 거예요?”

“형, 어떻게 된 거야?”

“어. 너희들 덕분에 잘 해결된 것 같아. 고마워 얘들아.”

나는 뒤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곳에는 아꿍이와 노닥거리고 있는 신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아꿍이랑 저렇게 친해졌데.”

“가만히 보니까 엄청 귀엽게 생겼다. 이제는 도망 안 치는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돼, 세희야. 아까처럼 무작정 도망칠 일은 없을 거야.”

가디언즈 길드 세 사람이 귀여운 신수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내 옆으로 슬쩍 발레리안이 다가섰다.

“시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으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전부 설명하려면 조금 복잡해서…….”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찾아내서 다행입니다. 이제 신수를 천족이 데려가기만 하면 끝나는 거겠죠?”

“아…… 그게…….”

내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아슈미르가 끼어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 옆에서 우르키도 쭈뼛쭈뼛 고개를 숙였다.

“시현 씨, 저희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정말 실례 많았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빨리 보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시현 씨에게 신수를 맡기기로 한 일은 제 임의로 정한 일이니까요.”

내가 신수를 맡은 사실을 안 발레리안이 ‘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슈미르는 그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작별인사를 이어나갔다.

“조만간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신수를 잘 부탁합니다, 시현 씨.”

“잘 부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문제없도록 잘 보살필게요.”

작별인사를 끝낸 그들은 마지막으로 신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에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돌아가죠.”

“네.”

아슈미르와 우르키는 차례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 저분들은 신수를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수는 당분간 내가 맡기로 했어.”

“형이 신수를 맡아?”

“아저씨가요?”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피곤한 목소리를 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추운 날 이곳저곳 뛰어다니느라 모두 고생했어. 이 빚은 다음에 꼭 갚을 테니까,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에에? 벌써 해산하자고? 좀 더 놀자!”

“맞아요, 아저씨. 아직도 궁금한 게 너무 많다고요.”

정태호와 윤세희가 나를 붙잡으며 아쉬워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온종일 뛰어다녔으면서 두 사람은 아직도 생기가 넘쳐났다. 이게 젊음의 차이인가?

“으으, 너희들은 안 피곤하냐?”

“이 정도쯤이야! 균열에서 괴수들이랑 뒹구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천족분들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눴잖아요. 조금만 더 놀아요, 네?”

“맞아! 아저씨 나중에 또 바쁘다고 안 놀아줄 거잖아. 더 놀자!”

오랜만에 만나서 어른이 다 됐다고 느꼈는데. 지금 억지 부리는 모습을 보니 속 내용은 아직 어린 그대로 인 것 같았다.

-무우! 무우!

-뀨우? 뀨우우!

두 사람이 나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아꿍이와 신수도 우리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내 모습을 보며 발레리안과 남진혁은 흐뭇한 미소를, 치즈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마계농장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역시나 릴리아였다.

-응! 시현 오라버니는 휴가 잘 보내고 있어?

-오랜만에 푹 쉬고 있어. 농장에는 별문제 없지?

-괜찮아. 근데 시현 오라버니랑 은율이가 없으니까, 농장 분위기가 축 처진 것 같아. 농장 식구들 모두 두 사람이 보고 싶은가 봐.

릴리아의 말에 조금 미안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오랫동안 식구들의 얼굴을 못 봐서 그런지 조금씩 그리워지고 있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시현 님!

안드라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찍어 올렸다. 사진의 배경으로 딸기밭과 엘든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안드라스에 이어 엘프리드도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는 엘프리드와 새끼 그리핀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잘 지내요?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리아네의 메시지도 올라왔다. 익숙지 않은 한글이라 말투는 조금 어색했지만, 리아네의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도 휴가를 보내며 찍었던 사진들을 단톡방에 몇 장 올렸다. 모든 농장 식구들이 부러움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ㅡㅅ는은ㅁㄱ 큿ㅈㅁ띱긔나 내8··

응?

이건 뭐야, 갑자기?

갑자기 단톡방에 올라온 이상한 메시지. 보낸 사람을 확인해 보니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사장님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자세한 소식을 릴리아가 대신 전해주었다.

-신경 쓰지마, 시현 오라버니.

-내가 가서 확인해 봤는데, 우리가 계속 단톡방 메시지를 올리는 바람에 폰 게임에서 졌나 봐.

허허허.

이상한 메시지의 진상을 알게 된 나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장님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곧 농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단톡방 대화를 종료했다.

길었던 휴가가 어느새 끝이 보였다.

진짜 오랜만에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제대로 쉰 느낌이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어머니와의 시간도 충분히 가지고, 이쪽 세계에서 은율이와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마음껏 즐겼다.

계속 이런 생황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농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들었다.

시원섭섭한 기분이랄까?

아무튼,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슬슬 농장으로 복귀할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고. 나 없는 동안 고생한 식구들에게 선물 하나씩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선물을 준비하려면 백화점에 가는 게 좋겠지?

좋아! 백화점에 가서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하나씩 생각해 보자.

오늘의 일정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방 밖으로 나섰다. 부엌에서는 한창 어머니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뭐 해?”

“응, 반찬 좀 만들어두려고.”

“이렇게 많이?”

“너 휴가 끝나서 농장으로 돌아갈 때 같이 보내 주려고. 네가 없어서 농장에 계신 분들 고생했을 거 아냐? 이렇게 반찬이라도 좀 보내드려야지.”

부엌에는 잔치를 준비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재료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이, 이렇게 많이 만들려고? 이거 다 못 가져가.”

“못 가져가긴 왜 못 가져가? 농장에 식구도 늘었으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준비해야지.”

“끄응…….”

“너는 잔말 말고 거실에서 쉬고 있어. 나중에 점심 차려줄게.”

떠밀리듯 부엌에서 쫓겨나고 있을 때.

은율이가 쪼르르 이쪽으로 달려왔다. 손에는 청소하는 데 사용하는 걸레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식탁이랑 거실 테이블 다 닦았어.”

“어머! 벌써 다 했니? 우리 은율이 너무 기특하네.”

어머니는 급하게 손을 닦아내고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은율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할머니, 더 도와줄 거 없어?”

“글쎄? 지금은 은율이한테 부탁할 일이 없네. 나중에 필요한 일 있으면 또 불러줄게.”

“필요한 일 있으면 꼭 불러줘야 해 할머니.”

“알았어. 그동안 거실에서 아빠랑 쉬고 있으렴.”

나와 은율이는 부엌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의 소파 위에는 아꿍이와 신수가 사이좋게 TV 화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수는 우리 집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엄청 빠르게 적응한 모습이었다.

치즈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 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히 거리를 구경하는 게 치즈의 주된 일상이었다.

소파에 남아 있는 자리에 앉아 TV를 보려고 하는데, 은율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귀여운 여우 소녀가 나에게 용건이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은율아, 왜?”

“아빠, 내가 도와줄 일 없어?”

“도와줄 일?”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응응!”

그러거나 말거나 은율이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점심이 준비될 때까지 빈둥대려던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아빠랑 같이 여기서 TV 볼래?”

“아니, 그런 거 말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

“어…… 그럼 없는데.”

기대했던 대답을 해주지 않았던 탓인지, 은율이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맴돌았다. 평소와 다른 은율이의 행동에 나도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툭. 툭.

-뀨우우?

옆에 있던 신수가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요 며칠간 가까이 지내온 덕분에 금방 뜻을 알아들었다.

“배고파?”

“뀨우! 뀨우!”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냉장고에서 과일을…….”

“아빠, 내가 가져올게!”

내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기도 전에 은율이가 후다닥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금방 신수가 좋아하는 과일이 담긴 보관 용기를 가져왔다.

“내가 먹여줄게.”

-뀨우우.

-무우.

은율이는 보관 용기에서 과일을 꺼내, 신수와 아꿍이에게 직접 먹여주기까지 했다. 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은율이는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띵동!

-덜컥!

“으어어어…….”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괴성을 내며 등장했다. 편안한 복장에 초췌한 얼굴을 한 서예린이었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예린이 왔니?”

“네…….”

“어제 늦게까지 일한 거야? 아이고, 이러다 예쁜 얼굴 다 상하겠네.”

“우으으…….”

“밥은 아직 안 먹었지?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같이 밥 차려줄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서예린은 감동한 표정으로 절하듯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은율아, 식탁에 수저 놓는 것 좀 도와줄래?”

“응! 알았어.”

은율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여우 소녀가 떠난 빈자리에는 피곤함에 찌든 서예린이 털썩 자리 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부터 이게 무슨 추태냐고 핀잔을 줬겠지만, 너무나도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걱정스러운 말이 먼저 나왔다.

“야, 괜찮아?”

“으으. 죽겠어. 누구는 예쁜 딸이랑, 귀여운 동물들이랑 편하게 노는데. 나는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래도 급한 일은 다 끝난 거 아냐?”

“오늘 하루 쉬고 또 나가봐야 해.”

“…….”

“인생 씨…….”

“어허! 아이들 앞에서 무슨! 고운 말, 고운 말!”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탄식을 터뜨렸다.

“설마 그날에 또 출근하게 될 줄이야…… 이건 저주야. 저주!”

“그날?”

“그래! 연말에 남은 특별한 날이 뭐겠어? 나는 작년에 이어서 또 출근하게 생겼다고.”

연말에 남은 특별한 날?

특별할 게 뭐가…….

“아앗?!”

나는 뭔가를 생각해내고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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