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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1)화 (31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1화

선물(2)

으아아!

내가 왜 이걸 까먹고 있었지?

연말에 특별한 날이라고 하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신년을 맞이하는 12월의 마지막 날.

가족끼리 모여 올해도 수고했다는 위로와 새해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제야의 종소리나 새해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별한 날.

착한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모든 커플이 설렌다는 그날!

성탄절!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날이었지만, 그쪽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나였기에 그냥 공휴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 더 친숙했다.

착한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신기한 할아버지.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나의 크리스마스 추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지금은 유치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한때는 어떤 선물을 받을지 두근두근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으음…….

은율이가 갑자기 저런 행동을 보인 이유가 이거였구나.

선물을 받고 싶은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더욱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아이들의 착한 행동을 격려한다.

어떻게 은율이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크리스마스나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 의문을 털어냈다. 이제 은율이가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알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귀여운 여우 소녀의 첫 크리스마스를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하는 건, 은율이가 받고 싶은 선물이 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으으…….

근데 이걸 어떻게 알아내지? 여기서 선물을 뭐 받고 싶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눈치 없는 것 같은데.

나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와중에 서예린이 뭔가를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야. 너 혹시 아직도 준비 안 했어?”

-움찔!

제 발 저리는 도둑처럼 나는 크게 몸을 떨었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콧등을 긁적였다. 서예린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꾸짖었다.

“어휴! 그걸 아직도 준비 안 하면 어떻게 해? 딱 봐도 은율이 엄청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면목 없다. 그냥 공휴일이라고 생각한 지 너무 오래돼서 준비해야 한다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그럼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

“…….”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빛에 한심함이 더욱 진해졌다.

“시현아, 예린아. 식사 준비 다 끝났어.”

“아빠, 언니!”

부엌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일단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 앞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잘 먹을게, 엄마.”

“잘 먹을게요.”

“그래, 많이 먹어. 예린이는 나중에 반찬 좀 받아가고.”

“헤헷!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옆자리에 귀여운 손녀를 챙기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은율이도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잔뜩 부리며 싱글벙글했다.

한편, 나와 서예린은 기계적으로 수저를 움직이면서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쉴 새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지금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초조한 내 마음과는 달리 식사는 별다른 일 없이 끝났다. 어머니가 뒷정리하려고 일어서자 이번에도 은율이가 나섰다.

“할머니, 나도 도와줄게.”

“그럴래? 착하고 이쁜 손녀 덕분에 할머니가 힘이 나네.”

“저도 도와드릴게요.”

“예린이는 피곤하잖아. 거실에 아꿍이랑 작은 친구 좀 돌보고 있어. 나는 은율이만 도와주면 돼.”

어머니는 서예린과 나를 부엌 밖으로 떠밀었다.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직 감도 못 잡은 탓에, 나는 은율이가 있는 부엌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작게 미소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은율이 선물 때문에 그러는 거지?”

“……?!”

“내 방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렴.”

“……?”

나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거실로 떠밀렸다. 함께 거실로 나온 서예린이 초조하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잠시만 기다려봐.”

“야! 어디가?”

서예린의 물음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한편에 화장대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 어머니의 물건들 사이에 금방 눈에 띄는 무언가를 찾아냈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가 말한 물건이라 확신하고 재빨리 집어 들었다.

이건…… 편지?

작고 예쁜 봉투에 담겨 있는 편지. 특별할 게 없는 편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나의 시선을 잡아끈 건 아주 짧고 익숙한 글씨체였다.

-산타 할아버지께…….

글씨체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이건 은율이가 쓴 글씨임이 틀림없었다. 그 말은 곧 이 편지가 은율이가 쓴 편지라는 말이었다.

이 시기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라면…….

나는 조심스럽게 봉투의 입구를 열고 편지를 꺼냈다. 편지에는 딱 봐도 열심히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글씨들이 보였다.

-산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카디스 영지에 살고 있는 은율이에요. 제가 지내는 곳은 엘든 마을 옆, 산 중턱에 야쿰들이 많이 있는 농장이에요.

은율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마계 농장의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농장에는 아빠랑 리아네 언니, 사장님, 안드라스 선생님, 엘린 오빠, 릴리아 언니도 있어요.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모두 착하니까 편지를 안 보내도 꼭 선물을 가져다주세요.

혹시 농장 식구들이 선물을 못 받을까 봐 걱정하는 은율이. 그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지어졌다.

-제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은율이는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놓았다. 그 부분을 확인하고 눈을 반짝였다.

다시 봉투에 편지를 담아 주머니 깊숙이 보관했다.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진 표정으로 어머니의 방을 빠져나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서예린이 나를 보자마자 말을 걸어왔다.

“거기서 뭐 한 거야?”

“알아냈어.”

“정말? 어떻게 알아냈어?”

“나중에 말해줄게. 일단 바로 외출해야 할 것 같아.”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시간이 좀 있지만, 은율이가 원하는 선물을 알아낸 김에 곧바로 나가 사놓을 생각이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너도 가려고? 오늘은 쉬어야 하지 않아? 내일도 또 출근해야 한다며?”

“내일은 그렇게 빡센 일 아니라서 괜찮아. 그리고 왠지 불안해서 나도 같이 가야겠어.”

“너만 괜찮다면야 뭐…….”

나와 서예린은 곧바로 외출을 준비했다.

* * *

편지에 적힌 선물은 은율이가 좋아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장난감이었다.

은율이는 몇 번이고 정주행할 만큼 이 애니메이션에 아주 푹 빠져 있는데, 배경이 되는 집 모형과 주인공들이 모두 포함된 장난감이 최근에 새로 출시됐다고 했다.

추측하기로는 아마도 은율이는 TV 광고에서 이 장난감을 본 것 같았다. 나도 몇 번 지나가는 광고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처음 이 선물을 받고 싶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굉장히 쉽게 생각했다. 돈만 있으면 백화점이나 가까운 장난감 판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예? 품절이라고요?”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은 남아 있는 재고가 없습니다.”

“아, 아니. 새로 나온 제품이라고 들었는데, 재고가 벌써 다 떨어졌나요?”

“이게 워낙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시리즈 제품이기도 하고.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라서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재고가 소진됐습니다.”

“허어…….”

여자 점원의 자세한 설명에 나는 탄식을 터뜨렸다.

당연히 큰 백화점이라 쉽게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를 대신해서 옆에 있던 서예린이 나섰다.

“그럼 다음 재고는 언제 들어오나요?”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크리스마스 때까지 재고를 확보할 수 있을지 지금은 저희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으음……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으로써는 다른 매장을 방문하시거나, 인터넷으로 주문이 가능하신 곳을 찾는 것밖에는…….”

매장 점원은 그 방법마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친절하게 안내해 준 점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였다.

아쉬워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장난감 매장 주변에는 선물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어른들이 가득했다.

괜히 동질감이 생기면서 씁쓸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끄응…… 내가 좀 더 빨리 크리스마스를 준비했어야 했어.”

자조적인 발언을 하자 서예린이 내 팔을 퍽! 소리 나게 때렸다.

“으윽!”

“언제까지 그렇게 축 처져 있을 거야? 아직 다른 매장은 안 둘러봤잖아. 빨리 다른 곳을 찾아보자. 어딘가에 물건이 남아 있을 거야.”

서예린은 피곤함도 잊었는지 일부러 표정을 밝게 하며 나를 격려했다. 귀중한 휴일에 따라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모습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미안하다. 빡빡한 길드 일 때문에 많이 피곤할 텐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아.”

“그래도…….”

“그렇게 미안하면 은율이 내 딸로 주던가.”

그녀는 장난스러운 대답에 나도 가볍게 웃어버렸다. 다시 기운을 차린 우리는 빨리 주변 장난감 매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매장으로 직접 전화도 걸어보고, 연락이 닿지 않는 곳은 직접 찾아가 재고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꽤 많은 곳에 연락을 돌려보고, 직접 방문까지 해봤음에도 은율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구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에 서예린이 인터넷 쇼핑몰도 뒤져보았지만, 대부분 품절이거나 기약 없는 예약만 받고 있을 뿐이었다.

“으으. 쉽지 않네. 이렇게 물건을 구하기 힘들 줄이야.”

서예린의 살짝 투덜거리는듯한 말에 나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 너 혹시 어디 연락할 곳 없어?”

“연락할 곳?”

“왜 너 이상하게 굉장한 인맥 많잖아. 그 발레리안 씨? 그분도 있고, 정부 쪽에 높은 사람도 알고 있고.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 없어?”

그녀의 말대로 꽤 영향력을 가진 사람 몇 명과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근데 겨우 은율이 크리스마스 선물 구하는 문제로 연락을 하기에는…….”

“지금 그게 문제야! 은율이가 중요해 네 체면이 중요해?”

“……당연히 은율이지.”

“뭐 해 그럼?”

나는 홀린 듯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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