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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2)화 (31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2화

선물(3)

-그래서 은율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직 못 구하셨다고요?

“정말 면목 없습니다.”

발레리안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사과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무슨 일이든 연락 달라고 한 건 저니까요.

“저도 이런 일로 연락드리게 될 줄은…….”

-뭐 어떻습니까? 저는 시현 씨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나설 수 있습니다.

그는 웃음기를 빼고 살짝 진지해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흐음…… 그런데 이런 때도 있군요. 항상 은율이를 가장 먼저 챙기는 시현 씨라 당연히 선물도 미리 준비하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긴 지가 너무 오래돼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주변에 백화점이나 큰 장난감매장은 다 둘러보셨겠죠?

“네. 대부분 하루, 이틀 전에 매진됐다고 하더라고요. 온라인 쇼핑몰 쪽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은 전부 방문해 봤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재고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그것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확실히 평범한 방법으로는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군요. 흐음…….

핸드폰 너머로 생각이 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나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역시 발레리안 씨도 쉽지 않겠지.

매진된 장난감을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유능함을 자랑하는 발레리안일지라도 뚝딱! 방법을 찾아낼 리가…….

-어쩌면 방법이 있겠군요.

“예? 진짜 방법이 있다고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다시 물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대량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아마 올해도 많은 장난감을 구해놨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

-시현 씨도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이제는 저보다 더 잘 안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제, 제가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서예린을 시작으로 급하게 주변 지인들을 떠올려봤지만, 발레리안이 언급한 것과 관련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자. 발레리안은 킥킥거리고 웃으며 단서를 하나씩 던져줬다.

-크리스마스가 원래 무슨 날입니까?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죠.”

-제가 알기로는 하느님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성모 마리아에게 잉태했음을 알렸다더군요. 그때 누가 그 소식을 전했는지 아십니까?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옆자리에 있던 서예린을 바라봤다.

“예린아. 너 성모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을 알린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술술 대답했다.

“그거? 가브리엘이잖아.”

“가브리엘?”

“대천사 가브리엘이 하느님의 지시로 성모 마리아에게 찾아간 그거 말하는 거 아냐?”

가브리엘…… 대천사…… 천사…….

설마?!

* * *

천사와 천족.

잘 모르던 시절에는 천족을 그런 이미지로 상상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 나에게는 말 안 통하고 앞뒤 꽉 막힌 벽창호 이미지지만…….

반면에 대부분 사람에게는 아직 천사의 이미지가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를 천족과 연관 짓는 건 아주 당연한 순서일지도 몰랐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아슈미르’라는 이름을 찾았다. 갑자기 전화를 거는 건 왠지 부담스러워서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바쁘세요? 잠시 여쭤볼 게 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답장이 왔다.

[어디에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아슈미르는 휴대폰으로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미 비슷한 일을 최근에 겪어봤기 때문에 익숙하게 대응했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휴대폰 메시지로 사람이 많이 없을 만한 적당한 장소를 알려주고. 서예린과 함께 그 장소로 향했다.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피해, 상대적으로 한적한 공원에 도착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서예린이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는 왜? 은율이 장난감은?”

“기다려봐. 조금 있으면 알게 거야.”

“그게 뭐야. 설명을 해줘야…….”

-화아악!!

우리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날개를 가진 사람 세 명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얼마 전에 봤었던 아슈미르, 우르키.

그리고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

“아크 심판관님?”

“허허! 그동안 잘 지냈는가?”

“여기는 어떻게…….”

“이쪽 세계에 일이 있어서 머물고 있었거든. 마침 옆에 있던 아슈미르 감시관이 자네에게 연락을 받았다길래 인사도 할 겸 따라왔지.”

아크 심판관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슈미르를 불렀으니 견습인 우르키가 따라오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 심판관 할아버지는 왜…….

그래도 내가 느끼는 당황은 서예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살짝 패닉이 온 것 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갑자기 천족이 왜 와?”

“네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심판관이면 천족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사람 아냐? 막 대통령이랑 만나고 그러던데.”

대답은 다른 쪽에서 튀어나왔다.

“가끔 천족을 대표해서 나서는 것뿐이지, 심판관이 그렇게 대단한 자리는 아니라네.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는 심판관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고, 그냥 안부 인사나 전하러 온 거야.”

“죄, 죄송합니다. 심판관님.”

“그렇게 어렵게 대할 거 없다니까. 편하게 아크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괜찮아. 허허!”

서로 짧은 소개와 인사를 끝낼 때쯤에야 서예린은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슈미르 감시관에게 왜 연락한 건가? 뭔가 부탁할 게 있는 것 같은데.”

“발레리안 씨에게 들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천족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하신다고요?”

“그렇다네. 매년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지.”

오오. 진짜였네?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아크 심판관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래도 자네는 천족에 대한 환상이 다 깨져 버린 것 같구먼.”

“하하하…….”

“자네의 생각대로 천족은 이런 인간들의 행사에는 관심이 없다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많은 인간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행사인 만큼, 우리는 인간들의 기대에 살짝 부응해 주는 것뿐이라네.”

“일종의 이미지 관리 같은 건가요?”

“정확해. 많은 인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수록, 우리도 그만큼 편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정부 쪽에서도 이 일을 지원해 준다네. 천족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게 훨씬 편하거든.”

천족의 선물 준비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이유였다.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겠다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천족다워 보였다.

“이런 ‘어른들의 사정’이 궁금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와 관련해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제 딸이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이 있는데…….”

나의 사정을 아크 심판관에게 설명했다.

“흠. 그 장난감이 어떤 장난감인지 볼 수 있겠나?”

“잠시만요.”

나는 휴대폰으로 장난감의 사진을 화면에 띄워 보여주었다. 아크 옆에 있던 우르키가 화면 안의 장난감을 알아보고 불쑥 나섰다.

“저 장난감 본 적 있습니다.”

“정말요?”

“네, 저희가 준비했던 장난감 중에 분명 저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찾아 헤맸던 장난감의 행방을 드디어 알게 됐다. 나와 서예린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졌다.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그 장난감을 양보해 주실 수 없을까요. 당연히 비용은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비용 같은 건 됐네. 최근에 우리가 신세 졌던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히 내줘야지.”

싱긋 웃던 아크는 오히려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에잉! 뭔가 제대로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겨우 장난감을 부탁하는 거였다니.”

“저는 선물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자네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네. 지금도 우리를 대신해서 신수를 돌봐주고 있지 않나? 이 정도로는 모자라지.”

“진짜 괜찮은데…….”

“조만간 자네에게 진 빚, 제대로 갚을 방법을 찾아보겠네.”

비장한 아크의 태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 데 들어줄 수 있겠는가?”

“……?”

* * *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

집에 온 가족이 오붓하게 모였다.

올해에는 잘 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트리도 꾸며보고, 화려한 케이크와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준비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은율이는 물론이고 아꿍이와 치즈 그리고 신수까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했다.

최근까지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지냈던 어머니도 굉장히 즐거워하셨다.

“호호!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러게.”

나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즐겼다.

점점 저녁이 깊어지고.

-무우우…….

-뀨우…….

배불리 먹었던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꾸벅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곯아떨어진 아꿍이와 신수를 미리 준비된 잠자리로 옮겨줬다.

어머니도 방으로 들어가시고, 치즈 역시 크게 하품을 한 뒤 자신의 잠자리로 향했다.

남은 건 나와 은율이.

“우우웅…….”

평소 같았으면 벌써 잠들었을 시간인데. 은율이는 계속 눈을 비비며 잠을 쫓으려 노력했다.

“은율아. 이제 자야지?”

“우웅…… 산타할아버지 보고 싶은데…….”

반쯤 잠에 취해서 웅얼거리는 여우 소녀.

그 귀여운 모습에 팔을 둘러 꼭 껴안아 줬다. 그리고 편하게 안아 들어 침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은율이는 침대에 눕기 전까지도 굴뚝이 없어서 산타할아버지가 못 올까 봐 걱정했다.

“괜찮아. 산타할아버지는 창문으로도 잘 들어오실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오실 수 있게 창문을 열어놨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은율이는 편안해진 얼굴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춥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침대에 누웠다. 방안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드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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