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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3)화 (31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3화

선물(4)

어두운 밤.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인영이 드리워졌다.

-드르르륵!

그 인영은 잠겨 있지 않은 창문을 열더니 자연스럽게 창문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높은 층에 있는 집이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기이한 모습이었다.

창문을 넘어온 정체불명의 존재는 천천히 집 안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내부 구조를 금방 파악한 그는 살금살금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방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스으윽.

-철…… 컥…….

그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안쪽을 살폈다. 방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숨소리와 커다란 숨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방 안에 모두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내디뎠다.

미리 확인해둔 책상 쪽으로 다가가 준비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순간.

“누구야?”

모두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됐던 침대 쪽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움찔 놀라며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귀여운 여우 귀를 가진 소녀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맑고 깨끗한 눈동자였다.

“할머니? 으음…… 할머니 아닌데…….”

소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순수하게 눈앞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소녀는 뒤늦게 뭔가 생각해내고 놀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쉬이잇!”

“……!!”

정체불명의 존재는 재빨리 검지를 들어 입 앞에 가져갔다. 여우 소녀도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었다.

둘은 경직된 자세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다른 숨소리들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존재는 한차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들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와아…….”

빨간색 옷과 털모자.

덥수룩한 흰 수염에 주름진 얼굴.

소녀는 눈앞에 나타난 산타를 알아보고 별빛처럼 눈을 반짝였다. 여우 귀는 쫑긋 세워지고, 이불 아래에 숨겨져 있던 꼬리가 들썩였다.

“산타 할아버지?”

“네가 은율이구나. 그렇지?”

산타 할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소녀는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해 동안 아빠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냈더구나. 그래서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이렇게 선물을 가져왔단다.”

그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로 선물을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환호할 것 같은 모습에 산타 할아버지는 다시 검지를 들어 보였다.

“쉬이잇!”

“…….”

여우 소녀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얼굴은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기특하다는 얼굴로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선물은 저기에 놓고 갈 테니. 나중에 꼭 아빠랑 같이 열어 보렴. 알겠지?”

-끄덕끄덕!

산타 할아버지는 푸근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며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여우 소녀는 살금살금 침대에서 벗어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소녀가 다시 방문을 열었을 땐, 산타 할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아쉬운 마음에 거실까지 나와 보았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꿈을 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녀는 쪼르르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책상 위에 선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으으으…….”

여우 소녀는 책상 위의 선물과 침대를 번갈아 바라보며 갈등에 빠졌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착한 아이구나.

-나중에 꼭 아빠랑 같이 열어 보렴.

“으음!”

고민 끝에 소녀는 꼬리를 바짝 세우며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여우 소녀는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흥분과 빨리 아침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한참 동안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꿈나라 친구들의 부름에 이길 수 없었는지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정적이 찾아온 방 안.

여우 소녀의 뒤척임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났을 때.

-스으윽.

옆자리에 누워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선물을 확인하고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남자는 방을 빠져나와 열려 있던 창문들을 다시 잠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 단속까지 철저히 끝마쳤다. 침대로 돌아온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날아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타 할아버지라니…….”

남자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침대에 누우려던 그의 시선이 여우 소녀에게서 멈췄다.

아직도 얼굴에 남아 있는 행복한 미소.

남자는 그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픽! 웃어버렸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네.”

그는 소녀를 제대로 눕히고 이불을 정리해 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은율아.”

* * *

길었던 휴가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정말 알차게 휴가를 보낸 것 같았다.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며 정말 오랜만에 재충전한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어머니도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해하셨다. 그만큼 아쉬움도 크셨던지, 농장으로 가져갈 짐을 한가득 준비하셨다.

직접 만드신 갖가지 반찬부터 시작해서, 고향에서 받아온 채소와 과일, 은율이 따뜻한 겨울옷, 농장 식구들 선물용으로 사 오신 한과 세트 등등…….

집안의 기둥을 뽑아서 준다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엄청나게 챙겨주셨다. 내 차에 다 실을 수가 없어서 발레리안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쉬운 마음을 채울 수 없는지, 떠나기 전까지 은율이, 아꿍이, 치즈를 계속 쓰다듬고 보듬었다.

잠시 우리와 함께했던 신수는 휴가가 끝나기 전날 천족이 다시 데리고 갔다. 약간의 거부반응이 있긴 했지만, 순순히 천족을 따라갔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모두 아쉬워했는데. 특히 아꿍이가 많이 외로워해서 달래주느라 힘들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끝내고.

우리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발레리안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짐이 워낙 많아 사무실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었다.

“마계 쪽에는 제가 미리 연락해뒀습니다. 짐이 많으니 안드라스가 차원 도약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예? 차원 도약 마법까지요? 짐이 많긴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차원 도약 마법은 준비하는 건 꽤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겨우 짐을 옮기는 일, 그것도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차원 도약 마법이라니.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발레리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휴가를 복귀하는 날에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농장에 돌아가시면 한동안 고생을 좀 하실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으음, 심각한 일은 아니지만……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는 발레리안의 염려를 받으며 마계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그 씁쓸한 미소의 의미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와아아!”

-무우! 무우우!

「크릉. 크릉.」

아연실색한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신나서 뛰쳐나갔다. 특히 웬만한 일에는 반응하지 않는 치즈도 흥분한 모습이었다.

“오셨습니까, 시현 님.”

“예, 안드라스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오늘 새벽부터 갑자기 쏟아지더니. 농장 식구들이 이상함을 느꼈을 때쯤에는 이미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허어…….”

넓게 펼쳐진 초원, 푸른 숲과 바위.

마계의 풍경은 마치 물감을 잘못 쏟은 것처럼, 완전 새하얗게 물들어있었다.

“이게 눈이 많이 오다니…… 농장은 괜찮은 건가요?! 딸기밭은?!”

“일단 모두 괜찮습니다. 농장은 저와 엘린 군, 릴리아까지 나서서 급한 일은 해결했고, 딸기밭은 지금 엘든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수습하는 중입니다.”

“휴우우. 다행이네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농장뿐만 아니라 딸기밭과 영지 쪽도 큰 사고는 생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래서 차원 도약 마법을 준비하신 거군요?”

안드라스는 발레리안처럼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맨몸으로도 농장에서 이곳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여기서 차원 도약 마법을 사용하는 게 더 편하고 안전합니다.”

그는 먼저 도착해서 차원 도약 마법의 준비를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고마워요, 안드라스 씨.”

“하하, 뭘 이 정도로 그러십니까? 당연히 제가 마중을 나와야지요.”

안드라스의 편안한 웃음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그리고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면서 뒤늦게 반가운 마음이 불쑥 차올랐다.

“안드라스 씨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시현 님은 휴가 어떠셨습니까?”

“괜찮았어요. 오랜만에 재충전할 수 있어서 좋았고, 재밌는 일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농장에 도착하면 전부 말씀드릴게요. 아…… 오늘은 일부터 해야겠네요.”

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만나는 농장 식구들과 회포를 풀 생각으로 설렜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이 눈 폭탄 수습으로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할 것 같았다.

“꺄하하! 차가워!”

-무우! 무우!

「그르릉!」

은율이, 아꿍이. 그리고 치즈.

녀석들은 심란한 내 마음도 몰라주고 신나게 눈밭을 뛰어다녔다. 치즈도 용마족 마을의 설산이 기억나는지 굉장히 즐거운 모양이었다.

“저렇게 좋을까요?”

“아이들은 원래 저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엘든 마을도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눈이 많이 오면 저렇게 신나게 뛰어다녔었다. 지금은 그 옆에서 부모님들이 한숨을 푹푹 쉬던 게 떠올라 기분이 묘해졌다.

뛰노는 아이들은 잠시 내버려 두고, 나와 안드라스는 가져온 짐들을 옮겨 차원 도약 마법을 준비했다.

준비된 마법진 위에 짐들을 거의 다 옮겼을 때쯤.

우리가 지나왔던 차원문이 다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으응?”

“시현 님? 혹시 리안이 따라오기로 했었습니까?”

“아뇨.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차원문의 빛을 뚫고 두 개의 인간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라스는 내 앞을 가로막으며 경계 태세를 취했고, 나는 바깥쪽에 있는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여차하면 아이들 먼저 챙길 생각이었다.

잠시 후.

흐릿했던 형상이 또렷해지며 차원문 앞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두 명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뀨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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