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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4)화 (31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4화

천족과 신수(1)

“아슈미르 씨? 우르키 씨?”

차원문을 통과한 두 명은 천족 감시관 아슈미르와 우르키였다. 내가 그들을 알아본 것과 동시에 안드라스도 살짝 경계 태세를 풀었다.

“저분은 예전에 농장에 찾아왔던 분이군요. 그럼 옆에 있는 분도?”

“맞아요. 저분도 감시관이세요.”

“흐음…… 그렇군요.”

안드라스는 처음 만난 우르키의 신분을 확인하고 완전히 경계 태세를 풀었다. 두 명의 천족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현 씨.”

“안녕하세요.”

출근길에 만난 이웃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인사.

아직 표정은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반사적으로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네, 좋은 아침이네요.”

-뀨우우!

신수가 자신도 봐달라는 듯 울음소리를 내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으응. 그래. 너도 반가워.”

-뀨우. 뀨우.

자세를 낮춰 신수를 가볍게 쓰다듬어줬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많은 교감을 나눴기에 녀석은 스스럼없이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 사이, 안드라스와 천족들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냈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손님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마계에 오셨어요? 리안 씨에게도 아무 말 못 들었는데.”

“발레리안 씨도 조금 전에 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급하게 결정된 사안이라 미리 소식을 전해드리기 힘들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불쾌한 건 아니고 조금 놀라서요.”

솔직히 말하면 ‘불쾌하다’보다는 ‘불편하다’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천족에 대한 인상이 최근에는 조금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껄끄러운 감정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대놓고 그런 기색을 내보일 수는 없으니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툭. 툭.

-뀨우우.

신수가 앞발로 내 다리를 치며 울음소리를 냈다.

“응? 왜 그래?”

-뀨우. 뀨우.

신수는 내 시선을 끌며 바깥쪽을 힐끗힐끗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눈밭을 뒹굴고 있었다. 아마 녀석도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 눈밭 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신수를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얼른 가봐.”

-뀨우우?

“그럼 당연하지. 은율이도 좋아할 거야.”

-뀨우! 뀨우!

내 허락이 떨어지자 신수는 잔뜩 신나서 날개처럼 생긴 귀를 파닥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우다닷! 달려갔다.

잠시 후.

눈밭 쪽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아이들의 들뜬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아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죄송해요. 두 분에게 말씀도 안 드리고 마음대로 신수를 보내버려서…….”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시현 씨에게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농장의 관계자분들이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농장의 관계자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

아무래도 두 사람은 인사 차원에서 마계를 방문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옆에 있는 안드라스를 바라봤다. 그도 천족들의 행동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나쁜 의도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우리는 말 없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모았다. 결론은 어렵지 않게 정해졌다.

“알겠어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농장에 가서 해주세요.”

아무리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내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시현 씨.”

“그럼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지금 눈 때문에 난리가 나서 차원 도약 마법으로 이동할 계획이었거든요.”

“도와드리겠습니다.”

“뭘 하면 될까요?”

의욕적으로 나선 두 명의 천족 덕분에 금방 이동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농장.

쏟아진 눈 때문에 대부분 하얗게 물들어 있어도 반가운 느낌은 그대로였다.

-부우우우!

-부우우우!

나의 복귀를 눈치챈 야쿰들이 크게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반겨줬다.

그 힘찬 울음소리에 모두 잘 지낸 것 같아 안도하면서, 동시에 진짜 농장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반가워하는 야쿰과 인사도 나누고, 휴가 동안 고생해준 농장 식구들과 회포도 풀고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손님들의 방문으로 그 계획들은 잠시 미뤄지게 되었다.

“……”

“……”

“……”

두 명의 마족, 두 명의 천족.

그리고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 한 명…….

그들이 모두 모인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에 우르키는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살폈고, 아슈미르는 꼿꼿한 자세로 평온함을 유지했다.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삐딱한 태도의 카네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나…… 너는 돌아오자마자 또 이러기냐?”

“제, 제가 뭘요?”

“뭐긴 뭐야! 또 귀찮은 문젯거리를 가져왔잖아.”

나는 잔뜩 억울함을 담아 해명했다.

“제가 데려온 거 아니에요. 그리고 손님한테 문젯거리라고 하는 건 좀…….”

“손님은 개뿔! 저번에도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찾아오는 건 손님이 아닌 침입자라고.”

“음…….”

“네가 계속 오냐오냐해주니까 저러는 거 아니야!”

“카네프 님. 일단 진정하시죠.”

흥분하려는 카네프를 안드라스가 나서서 말렸다. 흥분한 목소리에 우르키가 몸을 움찔 떨었다. 반면에 평온함을 유지하던 아슈미르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실례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시현 씨에게 신세를 졌던 일까지 포함해서 책임을 질 예정입니다.”

“책임? 어떻게 책임질 건데?”

아슈미르는 대답 대신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손에 든 편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아크 심판관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저한테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편지를 받아들었다. 편지는 특별할 게 전혀 없는 평범한 흰 봉투에 담겨 있었다. 조심스럽게 입구 부분을 뜯어 안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순간 ‘천족의 내가 편지를 읽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접혀 있던 편지를 열어보자마자 그 생각이 과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시현, 안녕하신가?

-아마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휴가를 끝내고 마계 농장으로 돌아갔을 테지. 즐거운 휴가가 되었기를 바라네.

한국인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갈한 한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다.

아크 심판관이 직접 이 편지를 썼는지 궁금함이 불쑥 생겼지만, 일단 접어두고 편지를 계속 읽어 나갔다.

-여유가 된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려 했는데. 이 심판관이라는 직책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아서 말이야.

-크리스마스 때 딴짓을 많이 한 덕분에 일이 많이 밀려버렸어. 어쩔 수 없이 편지로 대신에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게.

짧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뒤.

편지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얼마 전 신세를 졌던 일, 그리고 신수 문제에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네.

-예전만 해도 자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많았었는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좀 바뀌어서 긍정적인 의견이 주류가 되었다네.

-앞뒤 꽉꽉 막힌 천족들에게 자네의 칭찬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걸세. 이런 변화에 내 공이 크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구먼.

편지로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는 아크 심판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의 능청스러운 표정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잡설이 조금 길어졌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수는 계속 자네에게 맡기기로 결정됐다네. 드디어 천족들도 자네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한 거지.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천족이 나에게 신수를 맡기겠다는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아직 신수가 천족에게 거부감이 남아 있는 상태라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저번처럼 도망치는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었다.

관계를 회복하기 전까지 신수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지금 당장은 나에게 맡기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였다.

여기까지의 편지 내용은 딱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론 공짜로 부탁할 생각은 아니라네. 우리도 염치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다가 가장 확실한 제안을 하기로 했네. 자네가 신수를 맡아준다면 그 대가로……

“으응?”

나는 눈을 한번 비비적거린 뒤, 다시 편지의 뒷부분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도 편지의 내용은 그대로였다.

“시현 님, 왜 그러십니까?”

“왜 그래? 뭐라고 적혀 있는데?”

내 이상한 반응에 안드라스와 카네프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두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 대신 아슈미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슈미르 씨? 혹시 편지에 적힌 내용을 알고 계세요?”

“직접 편지를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내 염려가 담긴 물음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제안에 대해 본인이 합리적이라고 말해버리니, 자연스럽게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살짝 시선을 옮겨 우르키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느끼자마자 번쩍 손을 들며 대답했다.

“저도 얼마든지 준비됐습니다.”

“끄응…….”

두 천족의 반응을 보니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답답하게! 이리 줘봐!”

성질 급한 카네프는 내 손에 있던 편지를 확 채갔다. 하지만 편지에 적혀 있는 한글을 읽을 수 없기에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시현 님, 무슨 내용이길래 그런 반응인 겁니까?”

“그게…….”

나는 카네프와 안드라스에게 휴가 중에 내가 신수를 잠시 맡게 된 이야기부터, 지금 이 편지를 받게 된 것까지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편지에 적힌 제안은…….”

-자네가 신수를 맡아준다면 그 대가로 편지를 전달한 두 천족을 주겠네. 농장에는 일손이 항상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그 두 사람을 하인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부려먹게나.

-그리고 가능하다면 신수와 가까워지는 방법을 전해주면 더 좋고. 부디 자네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구먼.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추신.

-내 한글 쓰는 솜씨 꽤 괜찮지 않나? 한글 특유의 글씨체가 마음에 들어서 꽤 오랫동안 연습했다네. 멋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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