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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18화 (31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8화

그리핀의 날갯짓(1)

눈보라가 지나간 뒤부터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사이 눈이 몇 번 더 내리긴 했지만, 다행히 복귀 첫날에 경험했던 처절한 상황은 벌어지진 않았다.

한동안 주변에 쌓인 눈 치우느라 고생한 것만 빼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날의 연속이었다.

“눈사람 만들자! 눈사람!”

-삐이익!

-삐이익!

-뀨우! 뀨우!

여우 소녀는 작은 친구들을 이끌고 새하얀 눈밭을 마음껏 뛰놀았다. 그중에는 어느새 이곳에 익숙해진 신수도 함께하고 있었다.

“슈슈야. 우리 같이 눈사람 만들까?”

-뀨우?

-슈슈!

‘신수니까 이름은 슈슈야!’라면서 은율이가 신수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귀여운 이름이라며 동의했다.

여기서 생기는 당연한 의문 하나.

왜 지금까지 신수에게 이름을 안 지어줬냐는 질문에 두 천족은…….

-이름을 지어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지침서에 안 나와 있어서 몰랐어요.

라며 정말 천족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가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줘도 되냐는 질문에는…….

-지침서에 금지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라는 답변이 나와 그냥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결과적으로 신수는 ‘슈슈’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농장에 잘 적응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빠! 같이 눈사람 만들자!”

“잠깐만, 은율아. 여기 눈 치우는 일만 끝내고.”

“시현 선배, 은율이한테 가셔도 괜찮아요. 남은 일은 저랑 우르키가 끝내놓을게요.”

“맞습니다, 시현 선배님. 남은 일은 저희가 해놓겠습니다.”

“됐다. 이 녀석들아. 조금만 더 하면 금방 끝나는데 뭘. 얼른 끝내고 우리도 좀 쉬자.”

나는 엘프리드와 우르키를 독려하며 눈 치우는 일을 함께 마무리했다.

야쿰이 지내는 축사, 창고, 마지막으로 마구간 주변을 정리한 다음 곧게 허리를 폈다.

“으음.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둘 다 고생했어.”

“뒷정리는 저희가 할테니까 쉬고 계세요. 가자, 우르키!”

“넵, 엘린 선배님!”

둘은 내 눈삽까지 챙겨 들고 뒷정리를 나섰다. 특히 우르키는 군기가 바짝 들어 움직임이 빠릿빠릿했다.

하하! 엘린 저 녀석.

밑에 후배가 들어왔다고 아주 신났네.

원래 릴리아가 농장의 막내 포지션이긴 하지만, 그녀는 주로 안드라스를 돕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농장일의 뒤치다꺼리는 항상 엘프리드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르키가 농장에 합류하면서 엘프리드도 후배가 생기게 되었다.

엘프리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위계질서를 잡았고, 우르키는 곧바로 농장일의 막내를 담당하게 됐다.

그렇다고 엘프리드가 우르키를 괴롭히거나, 함부로 대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

나를 대신해서 농장일을 자세히 가르쳐주고, 숨겨두었던 맛있는 간식도 몰래 챙겨주면서 예뻐했다.

최근에는 검술 수련도 함께하는 것 같던데…… 아슈미르보다 우르키를 더 아끼는 듯 보일 정도였다.

그 덕분에 우르키는 빠르게 농장 일에 적응했다. 나도 일이 편해져서 그의 합류를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눈밭에서 은율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내가 다가가자 은율이와 작은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눈사람 만들고 있었어?”

“응. 그런데 눈이 크게 잘 안 만들어지고 계속 부서져 버려.”

“처음에는 눈이 잘 뭉칠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이렇게…….”

주변의 눈을 잔뜩 끌어모아 힘을 줬다. 굴려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뭉친 다음, 작은 눈덩이를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알아서 커지지?”

“와아! 내가 해볼래!”

신난 은율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덩이를 굴려 나갔다. 그 뒤를 그리, 피니, 슈슈가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힘만으로는 굴리기 힘들 정도로 눈덩이가 커졌다.

“은율아. 이 정도면 되지않을까?”

“좀 더 크게 만들면 안 돼? TV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크게 만들던데…….”

“그, 그럼 더 크게 만들까?”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못 이겨 눈덩이를 더 굴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뒷정리 다 끝냈습니다.”

“시현 선배, 뭐 하세요?”

뒷정리를 끝내고 온 엘프리드와 우르키.

나는 끙끙대며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끄응…… 너희들도 와서 좀 같이 밀어줘.”

“아, 알겠어요.”

“그냥 밀면 되나요?”

세 사람의 힘이 합쳐진 뒤에야 은율이가 만족할 만한 크기의 눈덩이가 완성됐다.

“헉! 은율아. 이 정도면 됐지?”

“응. 이제 머리 만들어야 해.”

“…….”

눈사람의 몸 부분이 큰 만큼, 머리 부분도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머리를 올릴 때는 우르키가 날개를 꺼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몇십 분 동안 세 사람이 끙끙댄 끝에.

아무것도 없는 눈밭 한가운데에 사람보다도 큰 커다란 눈사람이 완성됐다.

아이들은 그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기뻐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 * *

아이들과 함께 농장 건물로 돌아왔다.

현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메이드 복장의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와 함께 수건을 꺼내 나누어주고, 직접 아이들 몸에 붙은 눈을 닦아주었다. 메이드의 시중드는 모습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주체가 달라져 굉장히 기이하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아슈미르 씨.”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우르키 견습 감시관을 부르듯, 저도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그건 좀 생각해 볼게요.”

우르키가 엘프리드의 후배가 되어 농장 일을 맡은 것처럼. 아슈미르는 리아네의 후배가 되어 메이드 일을 맡게 되었다.

계속 식구가 늘어나면서 리아네도 조금씩 힘이 부치던 상황이었다.

혹시 메이드 일을 맡기는걸 아슈미르가 불쾌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녀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담담하게 일을 받아들였다.

-시현 씨에게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녀는 철철 넘치는 책임감으로 나를 놀라게 했고.

그 뒤에 메이드 복을 입자마자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내뱉어 나를 기겁하게 했다.

단정한 메이드 복장에 차분한 분위기.

겉모습만 보아서는 그 누구도 천족 감시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완벽하게 적응했다.

리아네가 알려주는 업무를 꼼꼼하게 수행해냈고, 이제는 따로 지시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슈미르가 메이드 일을 맡으면서 정말 좋은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녀가 요리를 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농장의 식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혼자서 식사 준비하는 게 꽤 버겁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요리가 가능한 아슈미르 덕분에 일이 정말 수월해졌다.

전문 요리사 정도의 실력은 아닐지라도.

옆에서 재료를 돕고, 간단한 요리 과정만 대신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도움이었다.

그 때문에 요리 콤플렉스를 가진 리아네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가끔 부엌문에 숨어서 나와 아슈미르가 요리하는 걸 몰래 훔쳐보는데, 너무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아 짠하게 느껴졌다.

“시현 님. 저녁 식사 준비는 언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으음…… 조금 있다 시작하죠? 그때까지 아슈미르 씨도 좀 쉬고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몸을 돌리려던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안드라스 님께서 시현 님을 찾았었습니다.”

“안드라스 씨가요?”

“네. 지금은 아마 거실에 계실 겁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슈미르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거실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슬쩍 살펴보니 정말로 안드라스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드라스 씨?”

“아! 시현 님 오셨군요.”

“아슈미르 씨가 저 찾으셨다고 그러더라고요.”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시현 님께 연락을 보내와서요. 괜찮으시다면 잠시 앉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드라스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품속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잠시 후.

수정구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허공에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는 오래전 통신 마법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바르바토스 가주였다.

-카디스 영주! 잘 지냈는가? 그 동안 연락이 뜸해서 날 잊지는 않았는지 걱정이구먼.

영상 속 바르바토스 가주는 여전히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내가 소원했다고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게나. 가주라는 자리가 개인적인 시간을 여유롭게 누릴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말이야. 가끔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라네. 하하하!

그는 다이애나 대부인이 들었으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껄껄 웃었다.

-통신 마법으로 자네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요즘 가문의 행사 준비로 굉장히 바빠서 말이야. 이렇게 수정구로 대신하는 것으로 참아주게.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된 이유는 조금 있으면 치러질 가문의 행사에 자네를 초대하기 위함이야. 정확히 말하면 자네와 그리핀들을 초대하는 것이지.

-그리핀에 대한 일은 자네에게 전적으로 위임했지만, 이번 행사만큼은 자네가 그리핀을 꼭 데려와 줬으면 좋겠네. 꽤 중요한 행사라서 말이야.

그의 말대로 그리핀에 대해서 뭔가 요청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문의 상징이었던 그리핀을 잃어버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아직도 그 상징을 되찾지 못했다고 알고 있지. 나는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가 다시 그 영광의 상징을 되찾았다고 알리고 싶어.

영상 속 바르바토스 가주에게서 뜨거운 의지와 간절함이 전해졌다. 나와 안드라스가 동시에 몸을 움찔거릴 정도였다.

-그 자리에 자네가 꼭 함께해 줬으면 좋겠어. 행사의 자세한 일정과 내용은 따로 전해주겠네. 다음에는 영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다리겠네.

남은 영상이 얼마 없는지 바르바토스 가주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완전히 흐려지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새끼 그리핀들이 비행 연습을 끝내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겠지? 가문의 행사에서 멋지게 날아 등장할 그리핀의 모습이 벌써 기대가 되는…….

마지막 말은 약간 짤린 상태로 영상이 종료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뒷말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기…… 안드라스 씨?”

“네, 시현 님.”

“그리핀이 원래 날아다니는 마수죠?”

“그렇습니다.”

“…….”

“…….”

잠시 거실에 흐르는 침묵.

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혹시 그리, 피니가 나는 모습 본 적 있으세요?”

“……없는 것 같습니다.”

“…….”

“…….”

어어…….

이거 혹시 큰일 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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