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9화
그리핀의 날갯짓(2)
나는 안드라스에게 부탁해 농장 식구들을 급히 불러모았다.
“으응? 식사 시간도 아닌데 왜 모이는 거지? 리아네 언니는 알아?”
“글쎄……?”
가장 먼저 도착한 릴리아와 리아네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거실로 모여들었다.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마찬가지였다.
“흐아아암! 뭐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다 모였어?”
마지막으로 카네프가 하품을 하며 등장하면서 모든 농장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모두 모여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안드라스 씨에게 부탁해서 여러분들에게 모여달라고 전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모은 주동자임을 밝혔다. 당연히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끙차!”
잠시 말을 끊고.
발아래 쪽에 있던 두 녀석을 팔로 감싸 무릎 위에 올렸다.
-삐이?
-삐이익!
새끼 그리핀들이 잠시 버둥거리다가 얌전히 내 무릎 위에 자리 잡았다. 이제 두 녀석은 동시에 품기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커진 상태였다.
“……이 녀석들에 관해 도움을 받고 싶어서 불렀어요.”
“그리, 피니 때문에요? 혹시 저 녀석들이 또 사고라도 쳤나요?”
-삐이익!
-삐이익!
엘프리드의 물음에 두 녀석이 억울하다는 듯 반응했다. 나는 그리, 피니의 목덜미 부분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그리, 피니가 사고를 친 건 아니야. 지금 내가 고민하는 문제가 이 녀석들의 잘못은 아닐 거야.”
“……?”
“시현 님. 좀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안드라스 씨.”
나는 안드라스의 조언에 따라 바르바토스 가주의 부탁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 나도 얼마 전에 오라버니한테 들었어. 조금 있으면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그랬던 것 같아.”
“가주님께서 직접 시현 선배를 초대할 정도면 정말 중요한 자리인가 보네요?”
“시현 님, 그럼 좋은 일 아닌가요?”
“리아네 씨 말대로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았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긴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바르바토스 가주님께서 그리와 피니도 데려오기를 원하시거든요.”
사람들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바르바토스 가주님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리와 피니를 기대하고 계세요.”
“으음.”
“어, 어라?”
“아…….”
뭔가를 깨달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핀인데 왜 못날지?’
자세한 반응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으로 보이는 감정은 모두 똑같았다.
당황!
나와 안드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핀이면 날아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진짜 이상하네. 얘네들은 왜 안 날지?”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죠?”
농장 식구들은 우르르 새끼 그리핀 쪽으로 몰려와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삐이이?
-삐익! 삐익!
그리와 피니는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게 좋은지, 날개를 퍼덕이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반면에 녀석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날개는…… 정상인 것 같죠?”
리아네가 말한 대로 녀석들의 날개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움직이는 데 불편함도 없어 보였고. 깃털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애초에 녀석들이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면 내가 금방 알아챘을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먹이도 신선한 고기로 챙겨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야외 활동도 꾸준히 챙겨줬다.
그 덕분에 두 녀석은 누가 봐도 어엿한 그리핀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날지를 못하는 걸까?
“흐아암! 아직 날 때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니야? 날 때가 되면 다 알아서 날겠지.”
카네프가 하품을 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굉장히 성의 없는 말투였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주장에 동조했다.
“카네프 아저씨 말이 맞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얘네들도 알아서 날지 않을까?”
“맞아요. 원래 아기들도 처음 걸음마를 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잖아요. 우리가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걸 수도 있어요.”
“죄송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릴리아와 리아네의 희망적인 말을 안드라스가 부정하고 나섰다.
“여러분들을 불러 모으기 전. 저와 시현 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서적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리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여러 정보가 담긴 책들을 모았었다. 대부분은 바르바토스 가문에게 도움을 받았고, 일부는 다른 방법을 통해 얻었다.
이상함을 느낀 나와 안드라스는 가지고 있던 책들을 급히 뒤져보았다. 그리고…….
“확인한 결과. 지금 그리, 피니 정도 성장한 그리핀이라면 비행 연습을 일찌감치 끝냈어야 합니다. 안전한 둥지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안전한 영역 내에서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기입니다.”
잠시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던 릴리아와 리아네의 얼굴이 금방 흐려졌다.
“안드라스 선배의 말대로라면. 이 녀석들은 이미 한참 전에 날아다녔어야 한다는 거죠?”
“가지고 있는 자료를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으음…….”
엘프리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를 대신해서 그리핀들을 많이 돌봐줬던 만큼 걱정이 많은 모양이었다.
-삐이?
-삐이이!
그리와 피니는 심각한 분위기도 모르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쳤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엘프리드는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다.
침울해진 분위기를 깨며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두 녀석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조금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리핀들의 비행 연습을 도와줄 생각이에요.”
단순히 바르바토스 가문의 행사 때문이 아니라.
두 녀석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열심히 비행 연습을 도와주고 싶었다.
“여러분! 그리, 피니가 마음껏 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 부탁에 농장 식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쏟아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시현 님!”
“시현 오라버니, 걱정하지마! 내가 어떻게든 그리, 피니를 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저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현 님이 정성껏 돌봐준 만큼, 새끼 그리핀들은 금방 날 수 있을 겁니다.”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돕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모두의 응원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가슴 한편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 * *
농장 식구들은 곧바로 그리핀들을 날 수 있게 만들 방법을 주제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아이디어는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첫 번째는 엘프리드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그리, 피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높은 곳에 묶어다 두면 어떨까요? 그럼 자연스럽게 날아오르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말 단순하면서 효과적일 것 같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부엌에서 그리핀들이 좋아하는 육포 간식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삐이익!
-삐이익!
귀신같이 육포 냄새를 맡은 녀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잠깐만 얘들아.”
내가 두 녀석을 진정시키는 사이, 엘프리드가 날렵하게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얇은 끈으로 육포를 매달았다.
새끼 그리핀들이 점프하는 것만으로는 닿기 힘든, 딱! 알맞게 높은 곳이었다.
나는 육포가 매달린 나뭇가지 쪽을 가리키며 그리와 피니에게 말했다.
“자! 저기 너희들이 좋아하는 육포야. 가서 먹어!”
-……삐이?
처음에 두 녀석은 물끄러미 육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저기 다 왜 육포를 매달아 놨지?’라는 반응이었다.
-삐이이.
-삐익!
그래도 육포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었는지, 두 녀석은 본격적으로 맛있는 간식을 쟁취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육포 바로 아래쪽에서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뒷발로 몸을 일으켜 허공에 앞발을 쭉 내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날지 않고서 닿기에 육포는 한참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삐이이…….
방법을 찾는 데 실패한 녀석들이 나에게 다가와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으음…….”
평소 같았으면 그 애교에 홀딱 넘어가 육포를 내어줬겠지만, 오늘만큼은 독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미안해, 얘들아.
하지만 다 너희들을 위해 그러는 거야!
-삐이이…… 삐이이…….
주변에 있던 다른 농장 식구에게도 애교 작전을 펼쳤지만, 모두 모른 척하며 시선을 돌렸다. 냉담한 반응에 새끼 그리핀들은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육포를 바라보는 두 녀석.
-……삐이? 삐이!
-삐이익!
조금 더 덩치가 큰 그리가 뭔가를 알아챈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그러자 피니도 함께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에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둘을 지켜봤다.
그리가 먼저 힘차게 뒷발을 내디뎠다.
날개까지 활짝 펼친 녀석은 곧장 날아올…… 으응?
-폴짝!
높게 점프한 그리는 매미처럼 나무 기둥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나무를 빠르게 타고 올랐다.
-타다다다닷!!
그리는 엘프리드만큼 신속하게 나무 위쪽으로 향했다. 육포가 매달린 나뭇가지까지 금방 도착했다. 뒤이어 피니도 똑같은 방법으로 움직였다.
-휘익∼ 덥썩!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린 녀석들은 매달린 육포를 정확하게 낚아챘다. 그리고 두 녀석은 입에 육포를 물고 위풍당당하게 내 앞에 섰다.
빠르게 움직이는 꼬리
높게 치켜든 부리.
그 모습이 마치 ‘나 엄청나게 잘했지?’라며 칭찬을 요구하는 듯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으…… 응. 잘했어. 그리, 피니!”
-삐이익!
-삐이익!
두 녀석은 신난 울음소리와 함께 입에 든 육포를 마음껏 즐겼다.
“끄응…… 그리핀들이 이렇게 나무를 잘 탔었나?”
엘프리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전혀 몰랐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릴리아가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시현 오라버니! 나! 나! 내가 방법을 생각해놨어.”